이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는 이제 이십년이 되었다. 나는 이십년 전 가을을 기억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즈음의 기억들이 어디론가 휘발된 것처럼 부분부분 지워져 버린 것을 알게 됐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가득한 그 가을에 대한 기억이 어찌된 일인지 더듬어보아도 서로 연결되지 않고 순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괴로움, 외로움, 상실감, 배신감, 분노, 슬픔, 불안 같은 것이 내 속에 단단하게 뭉쳐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한동안은 그 시절 그 감정의 흔적이 흉터처럼 만져지곤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노란 단풍잎의 빛을 쬐던 가을날 오후의 세상만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았다. 감정이 무뎌지니까 계절을 다시 만나도 전과 같지 않고 서로 서먹하다.
여전히 가을이면 외롭고 멀리 떠난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뵐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긴 하지만, 우울했던 세상 가운데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알 수 없는 감정, 이유없이 안심하던 낙천적인 기분은 없어졌다. 내 부모는 많이 늙었고 나도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은 오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드나드는 바람소리에 지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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