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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자코 부트렉


 애플뮤직에 웬 Jaco Pastorius 앨범이 새로 나왔다며 추천음반으로 보여졌다. 또 이곡 저곡 붙여둔 엉터리인건가 보다 하고 듣지 않고 있었다. 사실, 며칠이 지나도록 음악을 집중하고 들을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수상한 앨범의 곡명을 보다가 내가 모르는 타이틀이 있어서 들어보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특이한 녹음이었다. 음질도 나쁘지 않고 악기 소리 외에 잡음도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믹싱을 거치지 않은 듯 밸런스가 좋지 않은 곡도 있었다. 이건 부트렉 같은 것일까.

자코의 연주도 특이했다. 솔로의 구성이 엉성하고 간혹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분도 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 편곡, 자코의 솔로 등은 클래스가 높았다. (당연하잖아) 두 곡을 이어붙인 트랙은 라이브 연주이거나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식으로 발매했던 앨범에서 들었던 자코의 완성도 높은 연주가 아니라고는 해도 무시무시한 테크닉은 분명했다. 이런 녹음은 누가 어떻게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 플렛리스 베이스의 슬러를 사용한 인토네이션은 자코의 지문처럼 그 사람만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사운드 그대로였다. 말끔한 구성은 아니고 반복되는 프레이즈를 계속 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녹음이나 공연을 앞두고 꼭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솔로인데도 어느 부분도 화성적으로 틀리거나 이상한 음이 없다. 망설이는 것처럼 들릴 때에도 음악적인 손버릇으로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음색이 대단하다. 



2022년 1월 18일 화요일

손끝이 약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손끝이 약했다. 쥐는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손가락 끝부분이 약하다는 의미이다. 쉽게 손톱이 들려버리거나 손가락 끝을 다칠 때가 많다. 왼손은 수십년 연주를 하였기 때문에 굳은살이 있는데도 가끔 잘못하여 손톱 아래로 줄이 잘못들어가거나 하면 반드시 다친다. 건조한 겨울에는 그런 일들이 자주 생긴다. 나는 음료가 담긴 캔도 동전이나 기타 피크가 없으면 잘 열지 못한다.


오른쪽 손가락에도 굳은살이 있다. 그런데 물이 묻은 후에는 너무 오래 손끝이 물러져있어서 바로 연습을 시작할 수 없다. 원래부터 튼튼한 손가락을 지닌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악기의 네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내 방에는 언제나 난방을 하지 않는다. 올겨울에는 가습기도 방안에 두지 않아서 수건 따위를 적셔 악기 곁에 걸어두고 있다. 추운 방에 앉아있으면 금세 손이 시렵다. 손가락이 차가울 때에도 손가락을 잘 다친다. 이런 저런 환경이 영 좋지 않다. 언제나 손끝을 매일 단련하고 연습을 쉬지 않고 악기를 관리하고는 있는데, 판데믹으로 연주도 공연도 없는 지금과 같은 세월에 그것들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도 하루에 한번씩은 든다. 약한 손끝처럼 마음도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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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부산에 다녀왔다.


 길고 긴 열 네 시간이었다. 나는 두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하여 햄버거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내비게이션 앱이 평소와 다르게 한강을 건너 돌아가는 길을 안내했을 때에,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가끔 아이폰 앱은 불필요한 경로를 안내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내 판단이 틀린 것을 알았다.

끔찍한 도로정체를 겪었다. 내비게이션 앱은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었고 꽉 막힌 도로는 뚫리지 않았다. 한 시간 십여분 동안 길 위에 갇혀 있었다.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말랐다. 겨우 정체구간을 벗어난 뒤에는 정신없이 차를 달렸다. 몇 년 만에 과속도 했고 차선을 위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 시간에 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기에는 무리였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빠르게 판단하여 다음 기차를 예약해줬다. 매니저님에게 급히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아내가 기차표를 예약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대로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까지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급하게 예약해준 기차는 몇 군데 들르지 않는 급행이었다. 나는 앞서 출발했던 일행과 큰 차이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하루의 첫끼를 먹었다. 굶고 있다가 먹었기 때문에 맛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은 이제 높은 수준으로 평준화가 되어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국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부산의 따뜻한 기온과 굶다가 먹은 뜨거운 국밥의 온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다.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악기를 걸쳐메고 괜히 선채로 서성거리다가 의상을 갈아입은 염민열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일정을 마치고 부산역에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으니 몸이 의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Fourplay와 Chuck Loeb의 음악을 들었다. Mendelssohn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도 들었다. 다시 서울역에 도착하니 한 시 반. 낮과 달리 텅 비어있는 강변북로를 달리며 큰 음량으로 멘델스존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여러번 세수를 하고, 내일 학교에서 수업할 자료를 완성했다. 지난 주에 만들어두긴 했었으나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알람을 서너 개 설정한 다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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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밤중에 옥상 위에서.

 


부평에 있는 어느 극장의 옥상에서 연주했다. 부평 뮤직플로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음악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촬영했다. 우리는 지난 해에 이정선 형님과 그분의 노래를 다시 녹음했었다. 오늘은 그분을 가운데에 모시고 두 곡을 연주했다.

금요일 저녁에 도로 정체가 심할 것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 막혀도 너무 많이 막혔었다. 한참 동안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부평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약속장소까지 가는 데에 다시 한 시간이나 걸렸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하여 겨우 부평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무대를 마련하고 촬영과 녹음을 맡은 스탭들이 어두운 옥상 위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낮부터 계속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옥상 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당연히 외투를 벗고 연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웃옷을 벗었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벌벌 떨며 연주했다. 며칠 전 전주에서 야외공연을 했던 것보다 더 추웠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춥고 손이 시려워 고생스러웠지만 연주하며 밤하늘에 떠있는 고운 달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달무리 주변에 별도 빛나던데, 하늘이 맑았던 모양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어둡고 고요한 옥상 위에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자들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강변북로를 따라 쾌적하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작은 사고들이 많아서 다시 도로 정체를 경험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에도 다시 두 시간 가까이 운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악기를 싣고 운전하고 연주하러 다닐 수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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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전주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전주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장은 4년 전에 공연했던 야외무대였다. 건물도 풍경도 낯이 익은데 다만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백신접종을 마쳤다는 증명을 확인받아야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악기를 한 번 살펴봐야했다. 부쩍 기온이 낮아졌기 때문에 짧은 시간 무대 위에서 연주했을 뿐인데도 악기의 튜닝이 심하게 달라져있었다.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했을 때에는 손이 차가와져서 내가 힘을 조절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근육을 다친 손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했다.

관객들도 함께 추위를 견디며 야외공연장에 모여 앉아있었다. 아직은 예전처럼 일어나 호응을 하거나 마음껏 즐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판데믹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몸을 따뜻하게 하느라 가지고 온 옷을 모두 입었다. 공연 전에 도시락을 먹으러 대기실에 갔더니 아무도 없는 방에 리더님의 기타가 놓여져 있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고 다시 세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영하의 기온도 아니었는데 몸이 얼어 덜덜 떨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의 히터를 세게 틀었다. 지난 주에 울산에 다녀올 때에는 기차를 탔는데도 피로했었는데, 오늘은 야간에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더 힘이 들었다. 안경의 돗수를 다시 맞춰야할지도 모르겠다. 눈이 흐릿하여 피로감이 더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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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울산에 다녀왔다.


 오전에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기차역에 내려 다시 사십여분 걸려 공연장에 도착했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리허설을 했다. 오랜만의 첫 공연을 우리는 잘 하고 싶었고,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모든 곡을 전부 연주해봤다.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오래 쉬었지만 몸이 음악을 기억하는 기분이 들었다. 듬성듬성 앉은 관객을 보며 다시 연주를 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다시 기차역으로. 예전엔 일상처럼 했던 공연하는 하루의 일정이 부쩍 힘들게 여겨졌다. 악기도 무겁게 느껴졌고,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로감이 심했다. 체력의 문제일까.

새벽에 서울역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강변북로를 따라 집까지 오면서는 음악도 틀어두지 않았다. 가끔 차창을 열면 서늘한 공기가 마스크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사는 곳도 심야가 되면 주차하기가 어려워진지 오래됐다. 집에 도착했더니 지하 주차장에 좋은 자리가 한 군데 비어있었다.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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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6일 수요일

공연을 위한 합주.


거의 두 해 만에 밴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사전 연습을 했었지만 공연을 며칠 앞두고 준비하는 기분은 새로왔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악기를 튜닝하며 집에서 체크해뒀던 메모들을 다시 살폈다. 첫째날에는 여섯 줄 베이스를 가져갔다. 이 악기의 소리는 이번 공연에 적합하지 않겠지만 다른 악기들과 이 베이스의 사운드가 어떻게 섞이는지, 큰 음량으로 듣고 싶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프리앰프의 노브들을 모두 플랫하게 해두고 테스트 했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날 합주에는 펜더 다섯줄 베이스를 사용했다. 역시 이 형태의 베이스가 우리 밴드의 사운드에 잘 맞았다. 패시브 모드에서도 배음이 잘 나와줬다. 액티브 상태에서는 기본 음량이 너무 세어서 오히려 볼륨 노브를 줄여야 했다. 이 달의 공연들은 이 악기와 원래의 재즈베이스로 해볼 생각이다. 울산과 전주와 부산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고 그 사이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팀의 일정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의 일상인지, 모든 약속들이 귀하다.


합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애플워치에 표시된 알림을 보았다. 워낙 큰 음량으로 연주하다보니 소음 레벨이 109까지 올라갔었다. 아이폰에는 '일시적인 청각장애가 있을 수 있다' 라고 설명이 나왔다.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던 나는 이미 이십대에 귀의 성능을 일부 잃었을 것이다. 섬세한 음악을 틀어놓으면 내가 듣지 못하는 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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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일 수요일

합주.

 


거의 이태 만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합주를 했다. 약속이 정해진 후 나는 긴 목록의 셋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매일 다시 연습을 해보았다. 그동안 수백번 연주했던 곡들이었을텐데 전부 새롭게 느껴졌다. 휴업상태와 같았던 밴드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서는 고마왔다. 마지막 공연과 합주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여겨졌다. 오랜만에 하는 합주를 나는 잘 하고 싶었다.

연주를 하지 못하며 지냈던 동안 내 연주에 나빠진 것이 있었다. 작년부터 허리통증으로 한참을 고생했고, 최근에는 왼손 검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겨서 한동안 악기를 잡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합주를 위해 혼자 연습하며 내가 박자와 비트감을 잃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모든 곡을 녹음하여 들어보았다. 두어 번 그 일을 반복하며 어느 부분에서 내가 부정확하게 손가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왼쪽 검지손가락의 통증은 엄지손가락의 위치를 적절히 바꿔주는 것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합주약속은 밤시간이었는데, 나는 일찍 가서 미리 연습을 더 하고 싶었다. 약속 한 시간 전에 내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자동차 세 대가 내 앞에 이미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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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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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옐로우재킷과 빅밴드

 


몇 년 전 펠릭스 파스토리우스의 후임으로 옐로우재킷 멤버가 된 Dane Alderson은 훌륭한 베이시스트이다. 그의 연주가 좋아서 여전히 나는 앨범으로, 동영상으로 옐로우재킷의 음악을 꾸준히 보고 들었다. 올해 연말이 다 되어, 지난 달 첫째 주에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유튜브에서 녹음과 연주 장면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아왔는데 드디어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앨범이어서 반가왔다.

앨범의 제목인 Jackets XL의 XL은 로마숫자 표기로 40이라는 의미이다. 이 밴드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일 Cologne을 기반으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WDR Big Band와 협연했다. 옐로우재킷의 리듬섹션에 빅밴드 브라스 섹션이 더해졌다. 그리고 열 곡 중 일곱 곡은 바로 멤버인 Bob Mintzer가 편곡하였다. 한 곡은 창단멤버인 Russell Ferrante가, 나머지 두 곡은 Vince Mendoza가 맡았다.

Bob Mintzers는 2016년부터 이 WDR Big Band의 지휘를 맡고 있다. 그리고 이 빅밴드는 작년에 피아니스트 Fred Hersch의 앨범에 참여했는데, 당시 빅밴드의 편곡과 지휘를 맡은 사람은 Vince Mendoza였다. Fred Hersch와 WDR Big Band의 앨범 Begin Again도 아주 좋은 앨범이었다.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은 두 곡을 제외하고 모두 지나온 그들의 앨범 수록곡들을 다시 편곡, 연주한 것이다. 러셀 퍼렌티는 그 중 아홉번째 곡 Coherence를 편곡했다. 이 곡은 옐로우재킷의 2016년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빅밴드 편성으로 다시 연주한 음악 중 가장 정갈하고 숨막히는 편곡이었다. 아름답고 담백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정말 어려운 변박이 군데 군데 나타나고 있었다. 러셀 퍼렌티는 빅밴드 작곡/편곡/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Maria Schneider 의 편곡을 가져와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웹사이트에서 'Hang Gliding'의 악보 패키지를 구입했고, 그것으로 공부하고 연주 동영상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이 곡에서는 밥 민처가 실제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고, 러셀 역시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교하게 편곡한 이 음악을 들으며 아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밥 민처는 대학을 졸업한 뒤 Buddy Rich 빅 밴드와 공연하는 것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었다. 80년대에 그는 브렉커 형제와 윌 리, 피터 어스킨, 로저 로젠버그 등과 함께 당시 젊은 재즈 올스타로 구성된 빅 밴드 활동을 했다. 이후 Thad Jones / Mel Lewis Orchestra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Word of Mouth 빅 밴드 멤버로도 활동했다. 빅 밴드 편성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재킷의 앨범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밥 민처는 수십년 동안 EWI도 연주해왔다. 신디사이저 관악기인 이 전자악기(사실은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어떤 재즈팬들은 '그것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말도 해왔다. 전자악기를 사용하는데에 적극적이었던 옐로우재킷의 음악도 '재즈가 아닌' 어떤 것으로 분류하기 좋아했던 그 재즈팬들에게도 이 앨범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앨범의 두번째 곡 Dewey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름 Miles Dewey Davi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뮤트 트럼펫 멜로디는 바로 밥 민처가 EWI로 연주한 것이고, 곡의 중간에 나오는 플룻 연주는 그가 EWI의 플룻음색으로 연주한 것을 빅 밴드 멤버들의 실제 플룻 사운드와 섞은 것이다. 러셀 퍼렌티의 신디사이저 솔로가 아주 좋고, 리듬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도 좋다. 2020년의 빅 밴드 사운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인 앨더슨의 베이스 솔로가 빛나는 곡은 첫번째 수록곡 Downtown이다. 알토 색소폰 솔로는 빅밴드 멤버인 Johan Hörlen의 연주이다. 윌 케네디의 드럼 브레이크가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부분도 아주 좋았다. 윌 케네디는 빅 밴드와의 연주를 위해 22인치 베이스드럼을 사용했다고 했었다. 최근 팝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라우드 마스터링 - 음량을 크게 하여 음원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다. 나는 아마도 그 덕분에 드럼의 공간감이 더 좋게 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난 40년 동안 스물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재즈, 팝, 퓨젼, OST, 가스펠 등을 연주해온 옐로우재킷은 맨 처음 기타리스트 로벤 포드의 밴드로 시작했었다. 여전히 그들을 재즈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이제 옐로우재킷은 역사 속의 어떤 재즈 쿼텟보다도 오랜 기간 활동해온 재즈 밴드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음악활동을 통하여 업적을 이루어 온 이 4인조 그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앨범을 들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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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8일 일요일

대구 클럽 연주

대구 클럽에서 연주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고속도로를 달렸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길이 많이 막혔다. 거의 다섯 시간 동안 운전을 하여 대구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고 뒷자리에 누워 한 시간 쯤 잠을 잤다.

처음 가보는 대구의 라이브 카페 '시카고'에서 연주를 했다. 약속했던 시간에 친구들이 모두 모였고 잠깐 리허설을 해보았다. 계속 잠이 부족했던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다시 자동차에 가서 사십여분 동안 잠을 더 보충했다.

밤 아홉시에 시작하여 약 두어 시간 동안 공연했다. 잠깐 잠을 잤던 것 때문이었는지 피곤하지 않았고 집중이 잘 되었다. 무대 앞에 자리를 메워주신 관객들이 호응을 잘 해줬던 덕분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올해에는 김창완밴드의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 언제나 연말에 가까와지면 밴드 일정으로 분주했었던 것이 아주 오래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대신 친구들과의 공연을 하나라도 더 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다음 주 토요일, 그 다음 주 토요일에도 작은 클럽에서 계속 연주를 할 예정이다.

대구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휴게소가 나타날 때 마다 차를 멈추고 잠시 시트를 눕히고 졸거나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했다. 아침 여덟 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주 푹 잠을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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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여덟 달.

펜더 베이스 건전지를 교환했다.

 


지난 주 밤중에 오랜만에 합주를 했는데, 도중에 악기의 소리가 사라졌다. 급히 패시브로 바꾸고 연주를 계속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다시 소리가 나고 있었고,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칠 무렵 액티브 소리가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건전지를 다 쓴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밤, 공연에서는 다른 악기로 연주했다. 연주를 시작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무대 위에 서있는 것이 덜 낯설어졌다.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적이 먼 옛날의 일 처럼 여겨졌다.

오늘 아침, 열흘만에 여섯 시간 이상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했다. 악기를 뒤집어 건전지를 새 것으로 교환했다. 액티브 악기에 건전지를 넣을 때에는 날짜를 써두는데, 적어둔 날짜를 보니 지난 번에 건전지를 넣은 이후 여덟 달이 지났다. 지난 2월에 건전지를 교환하고 악기를 정비해 둘 때에는 약속되어 있었던 모든 공연들이 취소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전염병이 세상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버린 것이 여덟 달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 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지난 것만 같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악기의 전기 부분이 특별히 건전지 소모를 덜 하는 것이어서 여덟 달 만에 건전지를 교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올해 내내 그만큼 공연할 일, 연주할 일이 없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언제 다시 연주를 하러 다니는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이제는 알 수가 없다.

다음 건전지를 교환할 날짜가 금세 다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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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연주.


지난 주 금요일, 서교동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에는 전날 밤에 합주를 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합주라고 해봤자... 대충 한 번 맞춰보는 것이었지만.

감염병에 대한 소식은 넘쳐나고 한국의 언론은 여전히 마스크 타령인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연을 보러 와준 분들이 많아서 뜻밖이었다. 사실은 무관중 공연이라고 해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하루 전 합주할 때에는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스트랩이 조금 늘어난 것인지 내 체중이 조금 줄어버린 것인지 서있을 때에 악기의 위치가 약간 낮게 느껴졌다.
다음 주에 남아있는 한 곡이 마저 발표되면 또 공연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짧았던 공연 시간이 근래 석 달 중 제일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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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해를 마무리 하는 공연.


한 해를 끝내는 공연을 했다. 같은 장소에서 세 번째, 송년(送年) 공연.
이제 이 장소에서 공연을 마치면 또 해가 바뀐다는 기분이 든다.
이 날의 공연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서 준비를 많이 했다. 작은 공간이므로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펙터 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앰프의 소리가 잘 들리기를 원했다.
연주할 곡들의 순서가 바뀌고 조(調)가 많이 달라졌다. 어떤 곡은 더 낮은 음역대에서 연주했다. 공연의 중간 부분에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를 할 때에는 평소에 연주하던 베이스 라인 그대로 하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편곡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 의도했던 대로 잘 연주할 수 있었고,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올해는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단하고 힘들었다.
불평을 하거나 투덜대는 짓은 그럴 수 있는 여력이라도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해 동안 나는 한숨을 쉴 생각도 할 여유가 없었다. 미워하고 싶은 한 해였다. 어서 지나가라고 떠밀고 싶었다.

공연을 마치고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테이블에 마련된 감자튀김을 먹다가 동료가 따라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말았다. 조금만 맛을 볼 작정이었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그만 몇 잔을 거듭 마셔버렸다. 마른 진흙처럼 몸에 붙어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맥주 몇 잔을 마시며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당진 공연.


당진에서의 공연을 마쳤다.
낮에 서해대교를 건너다가 9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공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안에는 어떤 연고가 있어 가끔 다녔다. 당진도 그랬다. 공연을 하러 갔던 적은 아직 없었다.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감기 몸살을 앓았다. 두 시간 운전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만 버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허설을 마칠 즈음부터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십 년 전 12월에는 밴드의 두번째 음반을 낸 후 연말 공연을 했었다. 열 번의 해가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극장에서 요청한 포스터에 서명을 하고 어쩐지 기록을 해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스물 두 곡을 연주한 공연도 지난 십 년 세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공연을 마치고 악기를 정리하다가 무대 바닥에 붙여둔 셋리스트를 한 번 더 보았다. 십 년 동안 어떤 곡은 모양이 달라졌고 어떤 곡은 조가 바뀌었다. 어떤 곡은 내가 녹음하고 연주한 지 십 년이 넘었고 어떤 곡은 내가 마음에 담아 들어온 지 삼십년이 넘었다.

이제 다음 주에 남은 공연을 하면 힘든 일만 많았던 한 해를 얼른 보내줄 수 있다.
오늘은 우선 오래 자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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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8일 금요일

실수


악기를 넘어뜨렸다. 그만 오래된 악기의 네크에 큰 흠집이 났다. 부러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본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십여 년 사용해온 기타 스탠드가 모두 고장이 났다. 두꺼운 나사를 찾아 겨우 고정시켜 놓았었다. 어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 허리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일찍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내일 공연에 쓰일 악기들을 점검했다. 작은 렌치로 브릿지를 조정하는데 눈이 침침했다. 안경을 꺼내어 쓰고 방 안에 불을 밝혀야 했다. 아무리 자세를 고쳐 앉아도 허리가 아팠다. 여전히 어깨와 팔은 저리고 손가락 서너 개는 감각이 무뎠다.
나는 두 개의 악기를 모두 손 본 후에 스탠드에 악기를 세우려다가 그만 허리가 아파 악, 소리를 냈다. 그 때문에 몸을 움츠리다가 들고 있던 악기를 기타 스탠드에 제대로 걸지 못했고, 임시방편으로 고정시켜뒀던 나사가 스탠드에서 빠지면서 베이스가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낡은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것을 사뒀거나, 내 눈이 여전히 좋고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쓸모가 없다.
악기의 네크에 깊이 파인 상처를 나는 아무 소용 없을 줄 알면서도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 새로 생겼다.
이제 지금까지 습관 들여 살았던 것 보다 더 조심해야 하겠구나. 무심코 하던 행동들을 더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하거나 서운한 일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일 공연으로 분주했던 두어 달의 일정이 끝나간다. 내가 신경을 쓰며 악기를 점검하는 유난을 떨고 있는 이유는 지난 주의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공연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콘서트는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사소한 것에 몰두하여 쓸데 없는 강박 같은 것은 가지지 말아야겠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은 고요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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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4일 월요일

기운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지난 주 수요일에 경주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 나는 그날의 공연이 모두 순조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무대는 잘 준비되어 있었다. 친숙한 음향 팀은 완벽하게 소리를 만들어줬다. 전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첫 곡을 시작할 때 부터 내 악기에서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나왔다. 아주 거칠고 메마른 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악기의 탓인지 앰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모니터 스피커는 리허설을 할 때 보다 음량이 커져있었는데, 그것 역시 정말로 음량이 세어진 것인지 아니면 리허설 때에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악기의 줄을 건드릴 때 마다 신경이 쓰였다. 나는 위축되어서 악기의 볼륨 노브를 돌려보기도 하고 모든 이펙터를 꺼보기도 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순서에 따라 악기를 바꿨을 때에도 몹시 당황했다. 갑자기 소리가 작아졌고 원하는 음색을 낼 수 없었다. 여전히 무엇이 원인인지도 나는 파악할 수 없었다. 가능한 연주 도중에 앰프나 이펙터의 노브에 손을 대는 것을 삼가려 했는데, 그 날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연주하는데에 편안한 소리를 내보려고 애썼지만 하나도 제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그럭 저럭 공연을 마치고, 나는 대기실로 돌아가는 대신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나,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인가, 공연 직전에 손톱을 한 번 더 다듬었어야 좋았을까, 아니면 멤버들과 저녁을 먹을 때에 나 혼자 끼니를 거르지 않았어야 옳았나.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난 뒤에, 나는 힘이 빠진 채로 느릿 느릿 악기를 챙겨 차에 싣고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뭔가 일을 바르게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졸립지도 않았다.

그 다음 날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나는 계속 전날의 공연을 떠올리며 기초적인 연습을 다시 해봤다. 여전히 기분이 가라앉고 있지만 어쩌다 잘 되어지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하여 일을 망쳤다고 여겨질 때에, 나는 심하게 자책을 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뛰어나지도 완벽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긴 습관일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 들어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악기들을 검색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나를 탓하기 싫으니 악기 탓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지나고 보면, 내가 나를 책망하는 것이 나중의 일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주말 동안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연습을 했다. 연습이 지나간 일을 보상해주지는 않지만, 비슷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줄여주기는 할 것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다른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공연을 아주 잘 해내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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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밤중에 경주에.


낮에 고민하다가, 공연 하루 전에 미리 경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공연을 마치고, 그 다음 날에는 여주에 가서 수업을 해야 한다. 지난 주 대구에 다녀왔을 때에도 무척 피곤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장거리 운전을 하고 밤 열 시를 넘길 공연을 마친 후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보다는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 도착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 내용을 말하고, 해가 저문 후에 느긋하게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매니저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내가 머물 숙소를 예약해 주셨다고 했다. 나는 내가 편할 때에 출발하여 내가 머물 곳을 알아서 잡아 하루 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사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운전을 시작했다.

밤 열한 시 직전에 한옥집의 외양을 흉내 낸 이상한 여관에 도착하였다. 어떻게 말해도 호텔이라고 해줄 수는 없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요를 깔고 바닥에 누워본다. 집에서 하던 일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어폰을 잘 못 가져오는 바람에 에어팟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역시 의자가 아니어서 몸 여기 저기가 무척 아팠다. 나는 아직도 양손이 저리고 허리와 목과 어깨에 통증이 있다.

내일 공연으로 바빴던 한 달이 지나간다.
오늘은 여유를 부리며 깊이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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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4일 목요일

대구에서.


대구에서 공연했다.
보통의 공연에 비하면 절반 정도 분량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렸다. 내 차에는 멤버 분들의 악기가 실려있었다. 그들은 KTX를 타고 가기로 했고, 나는 직접 운전을 하여 가고 있었다. 중부내륙 고속도로에서 큰 정체를 겪었다. 약 한 시간 남짓 손해를 보았다. 알고 보니 큰 사고가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구급차가 막 떠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조바심이 났지만,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악기가 내 차에 실려 있으니 사고라도 나면 오늘 공연은 망치는 것 아닐까 하였다. 올해 들어 나는 자주 과속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여 짧은 리허설을 하고, 공연을 마쳤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엔 느긋한 마음으로 밤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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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인천에서 공연.


이번 주는 아길라 앰프를 크기 순서로 사용했다.
연주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던 한 주일이었다.


오늘 공연의 절반은 플렛리스로 연주했다.
플렛이 없는 재즈 베이스를 다시 한 개 가지고 싶어졌다.

긴 리허설 덕분에 공연할 때엔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었다.
스물 한 곡이 순간 지나가버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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