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1일 목요일

화분과 고양이.


벽쪽의 선반에 화분과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그곳에 햇볕이 비쳐서 조명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과 십여년 넘게 살았다.
나는 매일 고양이들에게 여러 번 인사를 하고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이 집 안에는 어쩐지 먼저 떠난 고양이들도 여전히 볕이 드는 곳을 찾아 걸어다니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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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8일 월요일

단양에서 연주했다.


미리 공연하는 장소를 지도에서 찾아보았을 때에 어딘가 낯설었다.
어릴 적에 친구와 여행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아무 일도 없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일을 위해 들렀다가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었다.

산바람을 쐬며 연주하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오히려 공연시간이 짧아서 아쉬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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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7일 목요일

오만과 습관.


몇 주 전에 나는 페이스북에 잘난 체를 했다.
윈도우즈 컴퓨터를 쓰다가 맥을 구입한 많은 분들이 맥 오에스 컴퓨터의 속도가 느렸져다던가 하는 이유로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고 오에스를 새로 설치하고 있다는 글들을 여러 번 읽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뭐라고 글을 올렸느냐면, '맥 오에스는 밀고 다시 깐다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었다.

지난 일요일, 성남에서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깜박 잠들었다가 심야에 깨었다.
할 일이 많았다. 세수를 하고, 커피물을 불 위에 올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이후 스무 시간 동안, 내 아이맥은 두 번 다시 로그인 윈도우를 보여주지 않았다.
7년 전에 구입했었으니 쓸만큼 쓴 것인가, 결국 새 컴퓨터를 사야하는 것인가, 생각이 복잡해졌다. 밤을 꼬박 새워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컴퓨터를 살려보려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간신히 내장 하드디스크에 있었던 폴더들을 임시로 백업하고, 한쪽에서는 맥북으로 부팅 가능한 외장하드 디스크를 만들어 오에스 하이시에라 설치파일을 담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이맥을 포맷하고 맥 오에스를 깨끗하게 설치했다.

컴퓨터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한 번도 맥 오에스의 타임머신 기능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내가 습관처럼 하고 있던 나의 평소 백업 방법을 너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랜 동안 거의 매일 직접 파일과 폴더를 정리하고 백업해두는 일을 규칙적으로 하며 지냈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에는 바빴어서 제 때에 백업해두지 못했었다.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보지도 못하고 자고 일어나 아침에 나가야 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되살아난 컴퓨터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다시 설치하는 동안 타임머신 용으로 사용할 외장하드를 마련하고, 이제서야 그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매킨토시만 사용해온지 20년이 넘었다고 말하며, 그동안 내가 너무 교만스럽게 시건방을 떨었던 것이었다.
혼자 창피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컴퓨터와 내 자료들을 모두 잃어버릴까봐 만 하루 동안 전전긍긍했다. 겸손하지 않으면 언제나 댓가를 치르는 것이 내 인생인가보다, 했다.

가장 최근의 것을 제외한 나의 파일들은 모두 완벽하게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여러 개의 미디어에 분별없이 습관적으로 백업을 해두었던 바람에 중복된 압축파일과 폴더들과 이미지 파일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있었다. 그것을 모두 정리하여 내가 사용하던 모습으로 컴퓨터를 다시 정리하는데에 닷새가 걸렸다.

이제 아이맥과 맥북 모두 타임머신 기능을 켜놓았다. 이 기능만 작동되었더라도 최소한 시간 낭비는 덜 했을 것이다. 아주 많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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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일은 나중에 알고보니 결국 사용하던 아이맥이 그 수명을 다해버렸던 것이었다.

https://choiwonsik.blogspot.com/2018/08/컴퓨터를 바꿨다


2018년 5월 16일 수요일

대전 공연.


대전에서 공연을 했다.
연주시간은 짧았지만 집에서 일찍 출발하여 리허설을 마치고 긴 대기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나는 맥북을 챙겨가서 대기실 테이블 앞에 앉아 대기하는 시간 동안 강의자료를 썼다. 준비해둔 것과 생각나는 모든 것을 다 쓰고, 다시 읽으며 불필요한 것을 빼거나 더 필요한 내용을 덧붙이는 방법으로 한 학기 내내 강의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사용했던 것들을 고쳐서 쓰느니 이렇게 다시 쓰는 것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사실 조금은 고생스럽다.

리허설을 할 때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연음향 일을 하고 계시는 엔지니어분들에게 이런 말 정도는 하고 싶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과신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타인의 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어느 쪽이거나 그 이유는 아직 당신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 때에 바로잡으며 자신의 실력과 경험을 더 좋은 쪽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남의 말을 잘 들어보는 것이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통 자신보다 권력이 없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뭔가 만만해보이는 대상에게 고압적으로 군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까다롭게 음향문제를 주문했던 이유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였다.
그저 각자의 일을 똑바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경기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로에 물이 고여 더 속도를 내지 못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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