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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0일 일요일

피곤했다

 


아내가 깨워줘서 겨우 일어났다. 나는 알람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계획했던 시각에 밥을 먹고 제 때에 출발할 수 있었다. 날씨 좋은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원효대교를 넘어 여의도 그 동네에 도착했다. 정확히 이십년 전에 나는 그 동네의 지하 술집에 매일 밤 연주를 하러 다녔었다.

지어진지 42년이 된 방송사 건물. 어딘가 어수선하고 불안해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건물이 낡은 것과는 관계 없었다. 이 장소에 나는 여러 번 왔었다. 그것도 이제 이십년 전, 십오년 전의 일이 되었다.

약속 시간 삼십분 전에 모두 모였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로 대기실에 앉아서 네 시간을 보냈다. 작은 일도 망설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몰라서 당황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방송사에는 항상 있다는 것이다. 오래 기다리는 것 쯤이야 방송사에서 일이 생기면 늘 겪는 일이다. 그것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원래는 Moollon 베이스를 사용하려고 수요일부터 그 악기를 꺼내어 연습하고 들고 다녔다. 새벽에 문득 어떤 생각이 나서 낮에 펜더 재즈로 바꿔 가지고 갔었다. 오늘 입은 셔츠의 색깔과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당황했다. 악기의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네크가 많이 휘어 있어서 연주하는데 힘들었다. 그동안 귀찮아서 악기를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주는 단번에 마쳤다. 나는 갑자기 취재를 위해 급히 달려가야 하는 기자처럼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내일은 악기들을 닦고, 손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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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일 금요일

커피


 

지금까지 내가 커피를 마신 후에도 잘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알고보면 커피로 인한 각성 같은 것에 내 몸이 잘 버티기 때문에 잠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카페인에 내성이 생기고도 남았던 것이었고, 부족한 수면을 한꺼번에 보상하기 위해 그냥 쓰러져서 잠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잠들지 못하였던 요인 중에 확실히 커피의 영향이 있었다.

새 커피 콩을 살 때가 되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디카페인 원두를 사보았다.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낯선 것이어서 공부가 필요했다.

밤중에는 저지방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셨다. 찬 음료를 마시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2022년 3월 29일 화요일

겸손해질 수 밖에

 


컴퓨터를 아예 끄고, 책상 위에 아이패드를 가로로 놓아 음악을 틀었다. 몇 주 동안 듣고있는 Romain Pilon의 앨범이다.

어제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30년 전 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Joshua Redman이 막 데뷔하여 무서운 젊은이로 등장했을 무렵의 실황이었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브라이언 블레이드, 브래드 멜다우 들이 풋풋한 어린 모습으로 엄청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는 플렛이 있는 네 줄 베이스를 치고 있었다. 잊고 지내던 베이스의 기본을 새로 구경했다. 어떻게 리듬을 연주하고 그것을 유지하는지, 화음과 리듬과 곡의 패턴을 훼손하지 않으며 음악적인 유희를 즐기는지,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낮에 밴드 합주를 했다. 밴드의 리더님은 조금 더 늙었고, 몇 곡의 키가 조금 변경되었다. 자기의 변한 목소리에 맞도록 바꾼 것일 게다. 키가 바뀌면 베이스의 선율이 다르게 들린다. 원래 하던대로 해버리면 음악이 너무 무거워지거나 밋밋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 밤중에 네 줄 베이스를 꺼내어 스무 곡 전체를 쳐보았다. 새로운 베이스 라인으로 연주하면 좋을 곡들을 골랐다. 합주를 할 때 노래와 악기 소리가 잘 섞이는지 확인하고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원래대로 할 것을 결정했다.

얼마 전에 John Scofield 가 앰프 두 개를 놓고 혼자 연주하는 영상을 봤었다. 노인이 된 그가 보여주는 연주는 완전히 농익어서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말년의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종류의 슬픔이 있었다. 인간이 수십년 동안 매만져 완성해낸 최고의 기량과 정신. 그러나 완성에 가까와질수록 이제는 육체와 마음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데에 남은 힘을 써서 버텨낼 뿐. 끝이 가까이에 다가온 늙은 인간의 무르익은 연주는 슬프고 아름답다. 겸손해질 수 밖에.


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애정

 



고양이와 함께 살면 하루에 몇 번씩 신비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얼마나 영리한지에 대하여 자주 말한다. 그게 중요한 이유가 뭔지 나는 모르겠다.

혹시 자기들이 영리하지 못하여서 개나 고양이가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는 것을 보고 똑똑하다고 감탄해주며 위안을 얻는 걸까. 다른 종의 동물과 주거를 함께 하며 고작 기뻐하는 일이 동물의 지능이라니, 지능에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내가 고양이들과 살면서 경험하는 신비로운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종의 동물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정을 표현할 때다.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굳이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다가와 떠나지 않는다.

일찍 죽어서 떠나버린 고양이 순이와 나는 특별한 관계였다. 그 고양이는 나에게, 나는 고양이에게 매일 애정을 표현했다. 고양이와 나만 기억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순이가 죽은지 벌써 오 년이 지났는데도, 자주 그 고양이의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한다.

고양이 순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나의 청승만은 아니다. 지금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이 발산하는 애정 덕분에 나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순이와 꼼이를 가슴 안에서 떠올려 또 한번씩 느껴볼 수 있다.

지금 곁에 다가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보다가, 내가 잠깐 품에 안고 어루만져줬더니 무릎 가까이에 몸을 말고 누워 잠든 검은 고양이. 고양이 깜이는 옛날에 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다. 동물과 함께 살면 매 순간 사랑을 빚진다.



2022년 3월 20일 일요일

의미있는 것

 


예전의 나는 작은 기쁨과 고통에 혼자 예민해하여 한 줌도 안되는 감정을 이만큼 과장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심하다. 원래 세상이란 우리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인간이라는 쪽의 입장에서는 자꾸 이치를 따지고 싶어하고 원칙이니 정의 따위를 내세워 떼라도 써보려 하는 것이지만, 자연・세상・우주는 그런 것에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는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어떤 가치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을 논리인 것처럼 우겨보려고 해봤자, 우리는 점점 더 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그것을 부조리하다며 계속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 하는 일이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되어지지 않는 것을 해결해달라고 드러누워 소란을 피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 곁을 지키며 밤새 의자에서 몸을 접고 자고있는 고양이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뭐 몇 개나 될까.



2022년 3월 18일 금요일

버릇

 


안경을 쓰지 않고 글씨를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안경은 돋보기인데, 적당한 거리를 맞추기 어려워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지럽다. 내 시력의 문제는 단순한 노안 증상이기 때문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면 안경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요즘 읽고 있는 대부분의 책은 모두 전자책이다. 눈이 나빠진 뒤로는 종이책을 읽는 것을 더 어려워하고 있다. 종이의 색에 따라, 인쇄된 글자의 폰트, 서체에 따라 어떤 종이책은 눈을 더 피로하게 만든다. 아이패드로 책을 읽으면 밝기를 잘 맞추고 배경색과 서체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편하다. 다만 옛날처럼 옆으로 누워 좌우로 뒤척이며 책 한권을 다 읽어버리는 일은 이제 어렵다.

그동안 계속 안경을 쓰고 글씨를 썼더니 더 잘 보이게 하고싶어서 몸을 자꾸 낮춰 웅크리고 있었다. 허리의 통증도 줄여야 하고 손목도 자주 주물러 펴줘야 한다. 더 잘 읽고 보고 싶어서 눈을 찡그리는 것도 하지 않으려고 자주 의식해야 한다.

나이가 들었고, 몸은 변했다. 좋은 자세를 생각하며 스스로 버릇을 만드는 방법 밖에 없다.

2022년 3월 5일 토요일

선거

 



읍사무소 (명칭은 주민자치센터로 바뀌었지만, 읍사무소가 낫다)에 가서 아내와 함께 사전투표를 했다.

투표소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었다. 내 앞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든 육십대 쯤 되어보이는 여자가 너무 뻔뻔했지만,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잠자코 있었다. 내 뒤에 서있던 아내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나왔는데, 이것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아직 모른다. 불안감과 함께 희망도 버리지 않는 수 밖에 없다.

투표를 마치고 걷던 중에 빨간 옷을 입은 나이 어린 남자애들이 빨간색 기호를 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가까운 옆에 두 명의 중년 여성들이 파란 옷을 걸치고 홍보하며 서있었다.

아내와 첫 끼 식사를 위해 동네를 걷다가 새로 생긴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저녁에 뉴스에서는 이번 사전투표율이 역대 가장 높았다고 했다.

동해 해안을 따라 산불이 아주 크게 났고 여전히 불을 끄지 못하고 있다. 삼척, 동해, 울진, 묵호항까지. 바람이 세게 불어 남동쪽으로 확산하고 있단다. 강를 옥계에서 일어난 불은 방화였다고도 하고.

빨간 옷을 입은 갓 스무살 정도 되어 보이던 사내아이들의 모습이 기억 나면서, TV 화면 속에서 시뻘겋게 타고 있는 불길을 보고 있었다.



2022년 3월 2일 수요일

살아가는 일


 

어느 노인이 별세를 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십대시절부터 계속 들어왔다. 글과 책도 읽어봤었다. 한 마디로 그는 본래의 가치보다 너무 과하게 포장되었다. 내 견해로 그는 '먹물 엔터테이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나본 적도 없지만 황현산 선생을 떠올리면 이번에 별세한 그 사람과 비교할 것이 많았다. 황현산 선생도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트위터 계정을 나는 여전히 팔로우하고 있다. 그가 남겼던 트윗들을 모아놓은 책도 나와있다고 하는데 나는 생각이 나면 트위터 계정을 찾아가 다시 읽는다.

황현산 선생은 돌아가시기 불과 한 해 전에 갑자기 무언가에 그리움이 올라와 나무로 된 장기알을 수소문 끝에 구입하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라고 썼다. 그 분이 그 장기알을 몇 번이나 장기판 위에 올릴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잘 하셨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두 해 전에는 원고와 오래된 책을 스캔하여 새로 제본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스캐너와 제본기계를 구입하셨던 내용도 있었다. 그 트윗 글들을 나를 비롯한 몇 백명이 실시간으로 읽고 있었다.

그는 조동진 씨가 돌아가셨을 때 조동진의 노랫말을 '단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하며 고인을 애도했었다. 그 이듬해에 선생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본인도 독자들도 그때는 몰랐었다. '내 신변에 변화가 생겼다'며 잠깐 트위터에 글을 쓰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올린 짧은 글에는, 열심히 치료를 받고 병을 이겨내겠다고 했던 내용도 있었다. 삶과 죽음이 허무하다.

새벽에 뉴스가 업데이트 되면서 감염병 확진자 수가 이십만 명이 넘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죽거나 살아남는 일이 매일 가까이에 있다.



2022년 2월 4일 금요일

겨울 아침

 


설 연휴가 지나가고 겨울날 아침. 난방을 충분히 하여 따뜻한 바닥 위에 고양이들과 사람이 뒹굴고 있었다. 창문으로 햇볕도 쏟아졌다. 하도 조용하여 나는 커피를 한 잔 따라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갈 때에 뒷꿈치를 바닥에서 떼고 걸었다.

아내는 곁에 함께 누워있던 고양이 깜이가 깨어나자 천천히 사진을 한 장 찍고 있었다. 푹 자고 일어난 고양이의 털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손으로 쓰기


 사용하던 일기장 앱은 이제 없어졌고, (관련내용) 제 날짜에 배송받았던 공책에 일기를 쓰고 있다. 오랜만에 손으로 글씨를 많이 쓰고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하루 이틀은 손으로 쓰는 것보다 타이핑을 하는 것이 더 편하다며 불평도 했었다. 지금은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며 뭔가 더 쓰고싶어지기도 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펜을 쥐어잡고 쓰고 그리는 행위가 만족감을 준다. 가지고 다니던 메모장에 적는 글씨의 모양도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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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8일 화요일

손끝이 약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손끝이 약했다. 쥐는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손가락 끝부분이 약하다는 의미이다. 쉽게 손톱이 들려버리거나 손가락 끝을 다칠 때가 많다. 왼손은 수십년 연주를 하였기 때문에 굳은살이 있는데도 가끔 잘못하여 손톱 아래로 줄이 잘못들어가거나 하면 반드시 다친다. 건조한 겨울에는 그런 일들이 자주 생긴다. 나는 음료가 담긴 캔도 동전이나 기타 피크가 없으면 잘 열지 못한다.


오른쪽 손가락에도 굳은살이 있다. 그런데 물이 묻은 후에는 너무 오래 손끝이 물러져있어서 바로 연습을 시작할 수 없다. 원래부터 튼튼한 손가락을 지닌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악기의 네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내 방에는 언제나 난방을 하지 않는다. 올겨울에는 가습기도 방안에 두지 않아서 수건 따위를 적셔 악기 곁에 걸어두고 있다. 추운 방에 앉아있으면 금세 손이 시렵다. 손가락이 차가울 때에도 손가락을 잘 다친다. 이런 저런 환경이 영 좋지 않다. 언제나 손끝을 매일 단련하고 연습을 쉬지 않고 악기를 관리하고는 있는데, 판데믹으로 연주도 공연도 없는 지금과 같은 세월에 그것들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도 하루에 한번씩은 든다. 약한 손끝처럼 마음도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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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7일 월요일

커피와 차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 것을 즐기기 시작하면 쉽게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 커피는 수십년 동안 조금 지나치게 많이 마셔왔다. 일년 전부터는 커피를 줄이기 위해 하루에 한 번만 (한 잔만이 아니다) 마시려고 하고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즐기려면 양 정도는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밤중에 커피 그라인더를 노려보다가 역시 오늘은 그만 마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대신에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붓고 보리차 티백을 넣어뒀다. 운전할 때에도 커피 대신 보리차나 우롱차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침에 마시는 한 번의 (한 잔이 아니다) 커피가 조금 더 맛있어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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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2일 수요일

새해, 고양이들


 2022년이 되었다. 고양이 이지는 낮에 잠깐 아내가 입혀본 옷을 입고 있었다. 잘 어울리긴 했지만 어디에 외출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벗겨줬다. 옷에 익숙하지 않은 이지는 몇 걸음 걷는데에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항상 잘 먹고 언제나 먹을 것을 보채는 뚱보 고양이 짤이는 오늘도 배가 부른채 구석자리를 찾아가 졸고 있었다. 저 자리의 바닥이 아주 따뜻하다. 다음 간식 시간까지 계속 자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막내 고양이 깜이는 오늘도 심심해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자주 많이 더 놀아주지 못하여 미안해하고 있다. 아내가 고양이 털을 모아 작은 공을 만들어줬다. 그것을 가지고 신나게 놀다가, 그만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시무룩해진 깜이를 위해 아내는 공 한 개를 더 만들어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공을 또 잃어버렸다. 찾아달라고 나를 올려다보길래 시선을 피하고 사진만 한 장 찍은 후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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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일기장


나는 이 일기장 프로그램의 오래된 버젼을 쓰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새로운 앱을 팔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용하는 버젼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지 오래 되었었다. 나는 그들의 새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맨처음 구입했던 오래된 버젼을 고집했다. 내가 사용할 기능은 이 버젼의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컴퓨터와 모바일의 오에스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잔고생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뿐 아니라 아예 새해의 캘린더를 볼 수 없게 해둔 것이었다. 이럴줄은 몰랐다. 최신 버젼의 것을 다운로드 할 것인지 고민해봤지만, 제작사는 이제 이 앱을 '구독 형식'으로 바꿔버렸다. 잡다한 많은 기능이 담겨있어 훌륭해보이긴 했는데 그것을 구입하여 새로운 호구가 되고싶지는 않았다.
아직 이 앱만큼 기기간의 동기화나 사용하는데에 편리한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 더 쓰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다. 그대신 거의 이십여년 만에 종이 일기장을 구입했다. 다시 손으로 적는 일기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새해부터는 공책 일기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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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귀여운 개들, 성격검사


시골에 갔다가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아내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조용히 챙겨둔 고기 몇 점을 문 밖에 있던 개들에게 주고 있었다. 우리에겐 늘 있는 일이다. 둘 중에 더 똑똑해 보이는 개는 아내에게 빨리 달라고 재촉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아내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MBTI 검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결과를 알려주며 내것도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웬만하면 해볼 수 있을 일인데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것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여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어쩐지 그것이 새로운 혈액형 종교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별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요즘처럼 그 검사가 인기있기 전에 어떤 계기로 이미 해본 적이 있었다. 네 개의 알파벳 전부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대신 처음 몇 줄에 적혀있던 나에 대한 설명은 기억한다. 그것에 의하면 나는 '동물을 싫어하고 사업과 이윤에 밝은 사람'이라는데, 어딘가 평행우주 속의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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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매트릭스: 부활을 보았다.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서둘러 가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할 즈음 다른 손님들이 몇 분 들어오긴 했지만 적어도 광고를 하고 있는 동안까지는 상영관 안에 나와 나 때문에 함께 따라와버린 아내 두 사람 뿐이었다. 이십년 전에 처음 나왔던 영화의 뜬금없는 새 시리즈를 관객들은 그다지 흥미있어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두 시간 동안 혼자 킬킬 웃으며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래리 워쵸스키 (모두 워쇼스키라고 하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인터뷰에서 '워쳐우스키'라고 하길래 나도...) 로 시리즈의 처음을 시작했던 감독은 이제 라나 워쵸스키가 되어서 마지막 시리즈를 내놓았다. 당시에는 형제였던 앤디 워쵸스키와 함께 세 편의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자매가 된 그 릴리 워쵸스키 없이 이번엔 라나 워쵸스키 혼자 감독하였다. 나는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갈 생각으로 그 사이에 앞의 세 시리즈를 다시 보아뒀었다.



이십여년 전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이 영화에 빠져들었던 나는 2003년에 마무리했던 세번째 시리즈 레볼루션의 결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본 다음에야 그 이야기의 흐름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뭔가 끝내지 못한 결말을 보충해주는 마지막 회가 세상에 나와주기를 기다렸었다. 드디어 세상에 나온 네번째 시리즈를 나는 사용설명서를 미리 읽어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쉽게 따라가며 볼 수 있었다. 많이 웃고 아주 재미있었지만,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아이구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까지 못 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너무 관객이 없으니 계속 의자에 붙어서 마지막까지 앉아있겠다고 떼를 쓰기엔 심야에 고생하는 직원들의 눈치가 보였다. 나중에 크레딧 뒤에 쿠키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꺼지지 않은 스크린을 지나쳐 나온 것을 후회했다. 주차장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더니 이십대로 보이는 친구들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사기를 당한 기분인 듯 불평을 하고 있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다'라고 끼어들었다가는 나쁜 경험을 할 것이 틀림없어서 나는 얌전히 볼일을 마치고 나왔다.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지나가버린 가을.


 그동안 멈춰야했던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바쁘게 시월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학교의 일과 집안의 허드렛일들에 시간을 쓰다보니 그만 가을이 지나가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데 고양이 깜이가 내 곁에 뛰어올라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내가 만들어주고 사다준 장난감이며 쿠션들은 본체만체하고 고양이들은 저렇게 빈 종이상자를 오가며 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슬슬 사람 곁에 붙어서 잠을 자려고 한다. 올 가을은 단풍이 물들었는지 낙엽이 떨어졌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없어져버린 것 같다.

올 겨우살이도 고단할 것이고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공해에 가까운 것들도 자주 보게 되겠지. 오래도록 그랬던 것처럼,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식구가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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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금요일

그냥 견뎠다.


 사람들로 붐볐던 종합병원. 자정이 지나자 텅 비어있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입원할 때에는 주차장이 혼잡하여 제대로 주차를 하지 못했었다. 한밤중에 좋은 자리로 자동차를 옮겨 놓을 수 있었다. 소독제를 듬뿍 손에 담아 문지르며 서둘러 병실로 돌아갔다.

노인 곁에서 이틀 밤을 새우는 것,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환자의 옆에서 선 채로 편의점 도시락을 먹거나 끼니를 거르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병원에서의 보호자 생활은 눈 감고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일어나는 노인의 난동, 폭언, 행패와 의료사고에 가까운 행동들을 견디는 일은 힘들었다. 항상 힘들었지만 거듭 할 수록 더 힘들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대처하느라 애를 썼지만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결국 환자는 또 다시 사고를 일으켰다. 젖은 시트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병실 바닥에 뿌려진 피와 주사액들을 닦으면서는 오히려 화가 누그러뜨려졌다. 별 수 없이 그냥 견뎠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가능한 버티고, 그 이상이 되면 적어도 내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더하지는 않도록 하려 했다. 마스크 안에서 입을 다물고 그냥 견뎠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나는 화장실에서 기절하여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각성상태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이후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내 나이 때문에 이종 백신을 교차접종할 수 없었다. 지난번 접종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백신을 맞은 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심지어 주사 맞은 자리에 약한 통증조차 남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후에 오히려 한 시간 정도 산책삼아 걸었다. 잠이 모자라서 여전히 피로했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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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여름을 다 보냈다.

 


아주 더웠던 여름을 다 지나보냈다.

내 기억 속의 제일 더웠던 여름은 아니었지만, 올 여름은 무덥고 뜨거웠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아내의 부친이 다치셨고, 우리는 다시 응급실, 병원 입원, 수술로 이어지는 일들을 겪었다. 그렇게 두어달을 다 보내고 장인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환자의 곁에서 긴 병원생활을 했던 아내는 계속 먼 거리를 다니며 부친을 돌봤다. 아내는 그렇게 계절 하나를 다 보냈다.

그리고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내 아버지가 다시 병원에서 진료,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또 한 번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내가 내 부친의 곁에서 병원에 며칠 있게 되었다. 올 여름 아내와 나는 병원에서 환자보호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번갈아 받았다. 예약되어있던 날짜가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러 서둘러 잔여백신을 찾아 1차 접종을 했다. 그 사이 밴드의 리더님과 매니저님은 감염병에 확진되어 보름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했다. 나는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코로나19 검사를 한 번 더 받은 뒤 다음주 월요일부터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서 사흘을 보낼 예정이다.

사람 두 명이 가족들의 일로 자주 집을 비우는 동안 고양이 가족들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디고 보내줘서 고마왔다. 이 블로그를 만든 후에 글을 가장 조금 남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화기에 자주 적어두는 메모는 온통 할 일, 해야할 것, 하지 못한 것들로 범벅이 된 짧은 기록들 뿐이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짧고 아쉬울 가을이 좋은 계절로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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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5일 금요일

평가

 


음악을 배우고 악기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것도 어쩌다 보니 십오년째가 되었다. 그 이전에 입시생들을 가르쳤던 것을 더하면 어린 학생들을 마주하며 지내온지 이십여년. 무슨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벌 수도 없는 일인데 왜 나는 계속 하고 있었을까. 아마 나는 연주를 하는 것만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

자신이 즐겁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으면 더 이상 즐겁거나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도 있어서, 매 학기를 마칠 때마다 항상 괴로운 업무를 피하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채점하여 등급을 정하는 일이다.

물론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악기연주라는 것도 평가할 수 있고 각자의 성과를 숫자로 매길 수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과제와 시험답안지들을 눈 앞에 두고 깊은 밤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은 무겁고 힘들다. 그들만의 목소리가 있듯이 그들만의 음악도 있는 것이고, 그 개성을 기록과 수치로만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학생들의 테크닉과 실력의 차이를 점수로 줄 세운다는 것이 과연 음악적인 일인지 나는 의심한다.

그러나 이곳은 학교이고, 어떤 학생이 한 학기 동안의 학업을 해온 과정과 결과를 평가해야 하는 것 또한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평가의 결과가 충분히 공정하려면, 우선 가르쳤던 사람이 성실하였어야만 한다. 나는 학생들의 점수를 합산하기 위하여 내가 만들어 놓은 스프레드 시트의 수식을 보완하면서 수업시간마다 기록해 둔 학생 개개인에 대한 문서들을 열 번 스무 번 읽는다. 내가 항목별로 작은 숫자들을 입력해나가면 맨 끝에 그 학생의 총점이 계산되도록 해두는 이유는 어쩌면, 내 손으로 직접 그 합산된 점수를 입력하지 않아도 좋도록 하여 괴로운 업무의 마지막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학생들이 완성한 과제물들, 때로는 레포트들을 반복하여 듣고 읽다보면 수업시간의 내가 보인다. 과연 내가 그 수업들을 매 시간 성실하게 준비했는지, 학생들에게 바르게 길을 알려주고 필요한 순간에 해줄 수 있는 말을 전할 수 있었는지, 그보다 앞서 어린 학생들 앞에서 나의 태도는 바르고 진실했는지를 스스로 비판해보고 반성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점수 매기는 그 시간은 나 자신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기도 했다.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타인에 대하여 너그러운 자세를 가지게 해준다. 나는 학생들이 터무니 없는 이유로 결석을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 내가 힘주어 여러 번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무라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 그들로부터 기대했던 수준의 과제물을 받지 못하여도 그것은 학생들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절반은 나의 탓일 테니까. 그리고 대학에서의 한 가지 과목 정도는 그들의 인생에서 그다지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지금 모자란 배움은 언젠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니까, 다 괜찮다. 나의 '일'이기 때문에 점수는 매기고 있지만, 겨우 학점이란 것으로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가치를 주제 이상 높게 여기거나 낮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심지어 일찌감치 공부하기를 포기하고, 수업은 제껴버리고, 임기응변으로 변명을 늘어놓고, 때로는 거짓말로 선생을 기만하는 것도 괜찮다. 약속을 어기거나 모든 일에 핑계를 만드는 것도 좋다. 거기에서부터는 자유의 영역이다. 아직 어릴 때에는 그럴 수도 있는 법이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이 곧 그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을 납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생일 때에 자신의 일을 그런 수준으로 밖에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음악을 잘 할 수는 없다. 음악을 잘 할 수 없을 사람에게 나는 가혹하게 점수를 매긴다. 그것도 지금 내가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