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4일 목요일

애정

 



고양이와 함께 살면 하루에 몇 번씩 신비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가 얼마나 영리한지에 대하여 자주 말한다. 그게 중요한 이유가 뭔지 나는 모르겠다.

혹시 자기들이 영리하지 못하여서 개나 고양이가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는 것을 보고 똑똑하다고 감탄해주며 위안을 얻는 걸까. 다른 종의 동물과 주거를 함께 하며 고작 기뻐하는 일이 동물의 지능이라니, 지능에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건가.

내가 고양이들과 살면서 경험하는 신비로운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종의 동물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정을 표현할 때다.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굳이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다가와 떠나지 않는다.

일찍 죽어서 떠나버린 고양이 순이와 나는 특별한 관계였다. 그 고양이는 나에게, 나는 고양이에게 매일 애정을 표현했다. 고양이와 나만 기억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순이가 죽은지 벌써 오 년이 지났는데도, 자주 그 고양이의 갸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한다.

고양이 순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나의 청승만은 아니다. 지금 함께 살고있는 고양이들이 발산하는 애정 덕분에 나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순이와 꼼이를 가슴 안에서 떠올려 또 한번씩 느껴볼 수 있다.

지금 곁에 다가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보다가, 내가 잠깐 품에 안고 어루만져줬더니 무릎 가까이에 몸을 말고 누워 잠든 검은 고양이. 고양이 깜이는 옛날에 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다. 동물과 함께 살면 매 순간 사랑을 빚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