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3일 월요일

팔월


 팔월이다. 하루,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간다. 벌써 월말이야, 라고 말하며 달리는 자동차 뒷자리에서 한숨처럼 후, 소리를 내던 엄마가 생각난다. 낮에는 잠깐 외출했다가 뜨거운 기온과 높은 습도 때문에 나도 후, 소리를 내었다.

책상 위에 줄지어 누워있는 만년필들이 너무 많아서 한 개씩 세척하여 보관하기로 했다. 잉크를 다 쓰게 되는 순서대로 하나씩 파우치에 담아 서랍 안에 넣어두고 있다. 다섯 개짜리 펜트레이 한 개가 치워지자 책상 위에 공간이 생겼다. 새 로이텀 공책도 펼쳤다. 앞의 것은 반 년 넘게 썼다. 값이 비싸지만 한 해에 두 권 정도라면 괜찮은 가격이다. 쓰기 편하고 언제나 안정적이어서 제일 좋아하는 공책이 됐다. 새 공책을 다 쓸 즈음이 되면 벌써 연말인가, 하고 있겠지.

2026년 7월 30일 목요일

화보 촬영

 

이 달 4일에 밴드 멤버들은 잡지 화보 사진을 찍었다. 이제 그 사진과 인터뷰 기사가 실린 잡지가 발행되어서 그날의 얘기를 지금 쓰고 있다.

오후에 시작한 촬영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좋은 스탭들로 구성된 팀들이 훌륭했다. 옷을 갈아입고 분장 수준으로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던 작업에 비하면 오래 걸린 것이 아니었는데 모두 그곳에 모였던 스탭들 덕분이었다. 나를 비롯한 멤버들은 여전히 어딘가 어색한 표정에 엉거주춤 서있었지만 리더님은 역시 어떤 동작을 하여도 자연스러웠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은 못하였지만 그날 하루 종일 굶고 있었다. 촬영을 다 마치고 돌아와 신 김치에 라면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몇 주가 지났는데도 기억이 날 만큼.

2026년 7월 29일 수요일

고양이 깜이


 고양이 깜이는 여름날을 좋아한다. 추운 것을 못 견뎌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십 년 전 그 겨울에 길바닥에서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자주 그 생각을 한다. 에어컨을 켜놓았는데 깜이는 굳이 햇볕 드는 베란다 창유리 앞 캣타워에 올라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쿨쿨 자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가끔 다가가 살피면 잠을 방해하지 말으라고 낮게 소리를 냈다. 일몰 시간이 되어서야 캣타워에서 내려온 깜이는 기지개를 켜더니 비어있는 밥 그릇 앞에 앉아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2026년 7월 24일 금요일

사진미술관

 

창동역 앞에 있는 시립사진미술관에 가보았다. 층마다 천장이 높고 재미있게 설계하여 지은 건물이었다. 전시 중인 영국인 사진가의 사진들은 대충 보았다. 맨 먼저 들른 제일 윗층 도서관에서 사진집들을 구경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전시는 시월까지라고 들었다. 조만간 다시 가서 볼 생각이다.

경계에서


 나는 소설을 읽지 않은지 오래 됐다. 그대신 인물의 전기, 평전은 자주 읽는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가 살았던 몇 십 년의 역사가 그 무대가 된다. 모두의 일생은 그 시대가 지나가며 흘린 부스러기다.

잘 쓰여진 전기는 사람의 차이를 교묘하게 드러낸다. 작가가 경계에서 치우치지 않고 인물을 관찰하고 학습해 준 덕분일 것이다. 타인은 내 선생이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 생각으로 현실 세계에서도 남을 보려고 노력한다. 큰 차이에서 시작하여 작고 사소한 다른 점들을 구별하기 시작할 때 이해가 생긴다.

2026년 7월 23일 목요일

습기

 

베란다 창유리를 열어 바깥을 내다보니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뿌옇게 되어있었다. 습도가 너무 높아서 숨을 들이키면 물기가 들어왔다. 오늘 혼자 사진미술관에 가보려고 했었다. 너무 덥고 습한데 소나기까지 내리고 있어서 외출하기 싫어졌다. 기왕에 외출 준비를 하였으니까 그대신 아내의 볼일을 위해 멀지 않은 동네까지 운전을 해주기로 했다. 개 율리는 거의 열흘 만에 우리집에 왔는데 영문도 모르면서 차를 타고 간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비빔국수를 포장 주문하고 강변을 보며 서있었다. 멀찍이 앉아 있는 그 동네 고양이 두 마리와 어린 야구선수들이 구보하는 것을 보았다. 가는 비가 끝도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 이 기온과 습도는 참 익숙하다. 어제는 고양이 순이의 십주기였다. 십 년 전 그날 밤에도 정말 습기가 가득했었지.


2026년 7월 21일 화요일

금계국

 

토요일에는 엄마를 시골집에 모셔다 드렸다. 오늘은 다시 가서 서울로 모시고 왔다. 시골집에 잠시 있는 동안을 빼고, 가고 오는 길 내내 큰 비를 맞으며 운전했다.

꽃을 보며 사진을 한 장 찍느라 잠깐 쪼그려 앉았다가 그 김에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민주당 예비경선 투표를 했다. 일어나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숲 향기를 맡았다. 물기 가득한 더운 공기가 들어왔다.

2026년 7월 16일 목요일

정약용 유적지... 앞 고양이들


 밴드 일정이 없는 몇 주 동안에 궁금했던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정약용 생가, 유적지에 가보았다. 오래 전 자전거를 탈 때에 그 앞을 지나다녀 보긴 했지만 들어가보진 않았었다. 그가 부인 홍씨와 합장되어 있는 여유당 뒤 언덕에도 올라가보았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맞은편 실학박물관에도 가보았다. 계절이 바뀌면 또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

실학박물관 앞에 살고 있는 고양이를 만났다. 기둥 옆에 길게 드러누워 자고 있던 고양이는 내가 곁에 서있을 때엔 깨어날 생각도 안 하더니, 아내가 가방에서 고양이 간식을 꺼내자 금세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다가왔다.

마실 것을 사러 근처 커피집에 들렀더니 이번엔 그곳에 사는 고양이들이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며 맞이해줬다. 얘들은 먹을 것을 줄 사람과 주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 박물관 앞 고양이와 이 커피집 고양이들에게는 깨끗한 밥그릇, 물그릇이 준비되어 있었다. 큼직한 집도 갖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고양이도 뛰어와 함께 간식을 먹었는데 배부르게 먹고 나서는 느릿느릿 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콧노래도 부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보았던 즐거운 장면이었다.



2026년 7월 14일 화요일

이제 막 여름

습도 높은 날씨가 계속되고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의정부 음악도서관에 가보았다. 오래 머물진 않았지만 고요한 실내에서 책과 음반을 뒤적이는 시간이 좋았다. 동네에 이런 장소가 있으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그곳을 떠나 운전을 시작하자 더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이제 막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2026년 7월 11일 토요일

덥고 습하다


 이른 아침에 아내와 고양이 깜이, 나 셋이서 베란다 창가에 모여 앉아 있었다. 사람 둘은 커피를 손에 들고 고양이는 비스듬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내가 일부러 높은 곳에 놓아둔 캣그라스를 발견한 깜이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다가가 노려보고 있었다. 무모하게 뛰어보기라도 할까 봐 고양이를 달래어 내려오게 했다.

오후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강공원에 들러 산책을 했다. 덥고 습한데 바람도 불지 않았다. 강변 길이 한가하고 조용했다.



2026년 7월 8일 수요일

동물병원


낮 동안 집에 데려와 돌보고 있는 개 율리의 한쪽 눈 밑이 부어올라 있는 것을 아내가 발견했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개의 표정이 불편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대어보니 열감도 느껴졌다. 지켜볼 것 없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왼쪽 윗 어금니 뿌리가 상하여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수의사에게서 들었다. 항생제 일주일 분을 사왔지만 약을 먹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치료를 서둘러야겠다고 판단했다. 아내가 알아본 치과전문 동물병원을 예약하고 그곳으로 개를 데려갔다.

진료실에 들어가 수술 전 검사를 받고 앞다리에 수액 주사바늘을 꽂은 채로 잠시 밖에 나온 개 율리는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마취를 하기 전까지 개가 안심할 수 있도록 아내가 안고 있었는데 표정은 웃고 있었으면서 개의 코 끝에는 콧물이 맺혀 있었다. 발바닥이 축축했던 것으로 보아 불안하고 긴장했던 것 같았다.

율리는 이빨을 한 개 뽑고 한 개는 신경치료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취가 덜 풀려서 졸고 있으면서도 이름을 부르면 꼬리를 흔들어보이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치료는 잘 되었다. 율리는 스케일링을 하여 매끈해진 이빨이 낯설었는지 가끔씩 혀를 말아 제 잇몸을 살펴보고 있었다. 저녁에 개가 제 집으로 돌아간 후 아내와 나는 피로가 몰려와 곧장 잠이 들었다.


2026년 6월 28일 일요일

세종시에서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하다보니 세종시에 다녀오는 것은 가까운 거리로 여겨졌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공연하는 장소에 다녀왔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올려다본 하늘빛이 고왔다.

공연 전까지 시간이 생겨서 너른 공원을 잠시 걸었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너무 더워서 땀이 많이 났다. 아내는 혼자서 먼 곳까지 더 걸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오늘은 Moollon 재즈 베이스를 가지고 갔다. 강가에 있는 내 집은 여름엔 습도가 높아서 악기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게 하기가 어렵다. 공연 사나흘 전에 가장 상태가 좋은 악기를 골라 들고 나가곤 하는데 오늘은 Moollon 베이스가 가장 좋았다. 칠십여 분 공연을 즐겁게 잘 했다.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분위기도 좋았다. 유월 공연을 좋은 기분으로 마무리했다.


2026년 6월 26일 금요일

고양이 깜이

 

사람 둘이 외출이라도 하면 이제는 혼자 집에 남아있게 되어버린 깜이가 늘 안스럽다. 고양이는 집에 혼자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늘 고양이에게 마음이 쓰여 새 간식도 사줘보고 사료도 다르게 섞어 내줘보고 있다. 처음 한두 번은 맛있게 먹어보더니 깜이는 이내 새 간식에는 잘 입을 대지 않고 있다. 고양이는 배가 고프면 알아서 먹을테니 너무 과잉보호 하지 말으라고 아내가 핀잔을 주곤 하지만, 나는 신경이 쓰여 곁에 앉아서 고양이의 기분을 살피곤 한다. 

2026년 6월 24일 수요일

엄마 팔순

 

엄마의 여든 살 생신, 동생네 가족들과 함께 모여 점심을 먹었다. 강이 보이는 넓은 창유리 앞에서 딸의 자녀들을 양쪽에 앉히고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노인이 웃고 있는 얼굴로 맛있게 음식을 잡숫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시중들며 먹을 것을 일일이 챙겨줘야 했던 아버지가 없는 두 번째 생일을 엄마가 만족하며 보냈다면 좋겠다.

보름 전에는 시골집에서 엄마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예정에 없이 아버지를 모셔둔 추모공원에 들렀었다. 잠시 그 앞에 머물다가 느릿느릿 걸어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노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뒤를 따라 걷는 좁고 긴 사잇길이 전보다 짧게 느껴졌다.


2026년 6월 22일 월요일

그림, 광화문, 종로

 


밴드 리더님의 그림 전시가 수요일까지였다. 오후에 그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보고 왔다. 고즈넉한 사직동 골목을 오랜만에 걸었다. 갤러리 앞 테이블에 호접란 한 송이가 있었다. 그림들은 내가 전에 보았던 것과 처음 보는 것들이 어울려 걸려있었다. 몇 달 동안 외국 출장 중이었던 친구를 갤러리 앞에서 만나 함께 그림을 본 후 광화문까지 걸었다.


교보문고에서 책 두 권을 사고 종로 거리를 걷다가 다시 역사박물관 앞으로 돌아와 찬 커피를 마시고 친구와 헤어졌다. 나는 십대 후반부터 십여 년 동안 종로, 퇴계로, 을지로 거리를 무척 많이 쏘다녔었다. 바쁜 일 없이 오랜만에 시내를 걸었더니 그 시절 기억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지금 여기에 있는 서울의 냄새는 어쩐지 옛 것처럼 친숙했다.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김해에서

 

김해로 가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음질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에 비를 맞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출발하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1985년 솔로 앨범 <Mr. Bad Guy> 를 틀어놓았다. 열 여섯 살 봄에 막 새로 나온 그 앨범을 LP 로 사서 스테레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듣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커텐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던 햇빛과 품질 나쁜 턴테이블의 노이즈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난 후 한 시간 쯤은 음악을 듣지 않고 운전만 했다. 문득 프레디 머큐리의 나이가 내 엄마의 나이와 같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다가오는 수요일은 엄마의 팔순이다. 조금 전 듣고 있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처럼 내 엄마도 그 무렵 참 젊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2년 만에 다시 가본 김해 문화의전당.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하여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바람을 좀 쐬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하늘이 밝았다. 사흘 전 대구에서보다 좀 더 긴 공연이었다. 극장도 좋았고 모니터 사운드도 좋았다. 즐겁게 연주를 했다. 잘 마쳤으니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삼랑진교를 달려 낙동강을 건널 때에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의 구름과 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참고 그냥 달렸다. 대신에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의 경계를 눈에 담으며 운전했다. 이번에도 칠곡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본 다음엔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려 돌아왔다.


2026년 6월 18일 목요일

대구에서

 


꼭 24시간 전에 나는 대구에서 돌아와 이곳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짐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에 공연하여 한낮에 일을 마치니까 집에 돌아와 주차할 자리가 있어서 좋았다. 어제처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온 날에 주차 공간이 없어서 또 아파트 안을 빙빙 돌고 있어야 했다면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다.

어제에도 내가 힘들었던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잠을 잘 수만 있었다면 거뜬히 일정을 마치고 대구 시내를 걸으며 산책이라도 했을 것이다. 새벽 네 시에 출발할 때부터 이미 졸음을 견디느라 애쓰며 운전해야 했다. 돌아올 때엔 두 군에 휴게소에 들러 방전된 배터리를 급하게 충전하는 것처럼 짧게 잠을 자고 깨어나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난 달 광주에 갔던 날에도 새벽 네 시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극심한 피로에 힘들어 했다. 이런 짓은 삼가자고 지난 달 블로그 글에도 써놓았었다. 같은 짓을 또 했던 이유는 이번엔 오전 공연이었으니 일을 마치고 얼른 돌아와 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모레엔 김해에서 연주한다. 공연은 오후 다섯 시라고 했다. 이번엔 반드시 잠을 충분히 자고 좋은 상태로 다녀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26년 6월 4일 목요일

선거

 

어제 아침에 투표를 한 후에 아직은 선선한 바람이 일렁이는 동네 길을 산책했다. 밤까지 개표 중계를 보고 있다가 잠들었다. 괜히 또 이른 시간에 혼자 깨어 선거 결과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뉴스와 트위터, 게시판 같은 데를 보고 있다가 일곱 시가 됐다.

뉴스공장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렸다. 어떤 결과는 어처구니 없고 받아들이기 괴롭지만 어디 역사라는 것이 시원하게 달려가는 적이 있었나, 라고 생각했다. 뒤로 물러나거나 거꾸로 굽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너른 바다로 향하는 물줄기라는 표현은 정말 통찰력 있는 말이다.


2026년 6월 3일 수요일

부재 不在

 

아침 일찍 일어나 강을 바라보다가 주인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오래된 캣타워 곁에 다가가 서있었다. 여기 층층마다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올라가 놀던 때가 있었다. 제일 높은 곳에서 털을 고르고 있던,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편안히 낮잠을 자고 있던 내 고양이들이 사이 좋게 공유하고 있었던 가구가 이제는 덩그라니 혼자 나무처럼 서있다. 고양이들이 주둥이를 문지르고 몸을 부비곤 했던 캣타워 기둥을 어루만져보다가 먼지도 없는데 괜히 걸레를 적셔 가져와 닦았다.

고양이 깜이도 저 캣타워에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었다. 지금도 가끔 캣타워에 올라가 드러누워 쉬기도 하지만 언니 고양이들이 멀리 떠나고 난 후에는 전처럼 자주 쓰지 않는다. 한밤중에 모처럼 저 위에 올라 혼자 먼 곳을 보고 있는 깜이를 보았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내려와 맨바닥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없는 캣타워에 혼자 있던 깜이가 내 눈에는 쓸쓸하게 보였다.
주렁주렁 열매처럼 캣타워에 고양이들이 열려 있었던 때가 있었고, 이제는 없다. 비어있는 캣타워는 내 고양이들의 무게를 기억한 채로 매일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때에도 고양이들 덕분에 행복했고, 지금도 그들과의 기억 덕분에 마음 한 쪽이 따스하다. 지금 곁에서 자고있는 깜이도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


2026년 6월 1일 월요일

이지, 안녕.


 이지가 28일 목요일에 죽었다. 일주일 동안 펜을 쥐고 무엇을 쓰지 못했다. 블로그에 글을 적을 수도 없었다. 대개는 나중에라도 그 날짜에 맞추어 공연하러 다녀온 이야기 등을 써두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하겠다. 올해 오월은 그대로 비워 둘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질까 봐 다이어리 공책에는 그날의 일들을 기록해 놓았다. 건조하게 한 줄 두 줄 적혀 있는 문장이 한 주 동안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3월에 짤이가 죽고 두 달만에 이지가 떠났다. 혼자 남은 고양이 깜이는 토요일까지 종일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이지는 2009년 4월에 태어났다. 그해 7월 말에 우리와 만나서, 그 후로 17년을 함께 살았다.

이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