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상상마당에서 공연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크라잉넛 30주년 기념공연에 참여하여 공연했다. 삼십 년 동안 크라잉넛이 활동했고 여전히 계속 진행 중인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내가 (정말 농담으로) 한경록에게, "너희들 중에 아무도 병원에 안 가고, 감옥에 안 갔고, 아무도 안 죽고 여기까지 해온 것 자체가 훌륭하고 대단하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진지하게 "그 뿐 아니라 신문 사회면에도 안 나왔으니 참 운도 좋았다"라고 받았다. 나는 웃자고 했던 말이었는데...

사실 올해엔 나도 음악을 본업으로 삼은지 삼십 년이 되는 해였다. 몇 년 만에 서교동 그 길을 악기를 메고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상상마당 그 장소가 개관했을 때 우리 밴드가 첫 공연을 했었다. 그게 벌써 18년 전 일이다. 세월은 많이 흘러서 나는 물러지고 닳아졌는데 나아지고 그윽해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Jack DeJohnette 을 추모

 

Jack DeJohnette 이 여든 셋 나이로 돌아가셨다. 지난 주에 나는 Keith Jarrett Trio 의 방대한 블루 노트 세션 앨범들을 며칠 이어서 듣고 있었다. 그것이 이어져 Michael Brecker 앨범과 Bill Evans의 Montreux 재즈 페스티벌 녹음을 들었다. 고속도로에서 Song X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도 했다. 일부러 그가 연주한 음악들을 모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Harold Mabern, Eliane Elias, Steve Swallow, Hank Jones, Steve Khan 등의 앨범을 사고 보면 그의 이름이 크레딧에 적혀 있었다. 내가 재즈를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연주를 의도와 상관없이 아주 많이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그의 드럼 연주가 특별하다고 사람들은 말했었다. 고인도 인터뷰에서 피아노와 드럼 연주의 상관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가 피아니스트로 시작했다는 것과 상관없이 그는 창의적이고 훌륭한 드러머였다.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몰랐다고 해도 그의 드럼 연주는 그대로 특별했을 것이다. 그는 음색과 잔향을 연구하여 심벌즈들을 개발하는 데 역할을 했다. 그의 드럼은 배음과 서스테인만을 위해 소리내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음악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그 순간의 공기를 바꾸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Gary Peacock이 5년 전에 죽고 Keith Jarrett은 더 이상 연주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 되었는데 이제 그의 드러머가 세상을 떠났다. 다시 재현될 수 없는 음악의 한 시대가 지나가버리고 있다. 그들이 함께 많은 녹음을 남긴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파주에서


 파주 출판단지 야외무대에서 공연했다. '북앤컬쳐' 뭐뭐... 라고 한글로 적어놓은 것이 무대 위에 큼직하게 걸려있었다. 백년 전이었다면 일본 말을, 그보다 앞이었다면 한자를 써놓았겠지. 사람은 자기가 밟고 있는 땅의 것을 천시한다고 황현필 선생이 말했었다. 하긴, '책과 문화'라고 해놓았어도 한자어이긴 하다.

주차공간으로 제공해준 곳에 차를 세우고 예쁜 건물들을 구경했다. 고요한 동네에 낮게 드리워진 구름들이 아늑했다. 조용한 장소에 제일 먼저 악기를 설치한 바람에 내 베이스 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비가 내렸고 종일 구름이 가득했는데 누군가 소리를 질러도 금세 습기를 먹고 바닥에 떨어져버릴 것 같은 날씨와 장소였다. PA에서 퍼진 소리가 건물들에 부딛혀 맴도는 바람에 큰 짐승이 울고 있는 것처럼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 잔향이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서 더 오래 손을 푸는 것은 멈추어야 했다.


지난주 광주와 영종도에서 생각한 대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서 그 공연들의 기억이 개운하지 않게 남았었다. 그 후에 매일 연습을 했다. 오늘 공연은 한 시간 동안 손가락만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손이 얼고 내가 너무 추워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지난번보다 손이 잘 돌아가주고 있었다.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수원에서

 

토요일 도로정체야 뭐, 늘 그러하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이날에도 일찍 출발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두 시간 내내 정체가 심했던 것은 너무했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몸이 조금 지쳐버려서 자동차 뒷자리에 다리를 접고 누워 스트레칭을 해보았다. stretch 는 뻗고 쭉쭉 늘린다는 말인데 차안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결국 잠시 누워있는 것으로 몸을 쉬게 했다.

이 행사에서는 리허설 없이 분주하게 무대위에 악기를 설치하고 시간에 맞춰 연주를 시작해야 했다. 함께 다니는 믿을 수 있는 음향팀 스탭분들 덕분에 아무 문제 없이 공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 추워하고 있었어서 입고 갔던 후드티셔츠를 그대로 입은채 연주했다. 한겨울도 아닌데 손이 시리고 몸은 춥고... 공연을 마칠 때까지 손에 땀도 안 나고.
갈 때엔 두 시간 십 분 걸렸는데, 밤중에 집에 돌아올 때엔 오십 분 걸렸다. 다음 주에 화성으로 다시 연주하러 가는데 또 길이 얼마나 막힐 것인지.


2025년 10월 23일 목요일

스트랩 잠금


 올해 내내 공연장에서 쓰고 있는 울트라 II 재즈 베이스에 걸어 놓은 스트랩의 구멍에 Strap Lock을 끼워 달았다. 일 년 동안 쓰다 보니 스트랩의 가죽이 늘어나 구멍이 넓어져서 공연을 하는 중에 그만 스트랩 버튼에서 풀려 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광주에서 그 일을 한 번 겪었는데 그 후 영종도 무대에서는 글쎄, 첫 곡을 시작하기 위해 무대 앞으로 걸어가 스탠드에서 베이스를 집어드는 순간에 스트랩이 벗겨져 버렸던 것이다.

스트랩 양 끝의 가죽 구멍이 베이스의 무게 탓에 늘어나고 헐거워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악기의 스트랩 버튼은 전통적인 방식이어서 버튼 대가리가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죽이 늘어난다고 해도 스트랩이 쉽게 벗겨지는 일은 없다. 울트라 II 베이스는 처음부터 스트랩 록 부품이 제공되고 있어서 스트랩 버튼이 작고 매끄럽다. 이만큼 썼으니 이제 느슨해진 스트랩 구멍에 스트랩 록 부품을 조여 달고 무대 위에서 마음 편히 연주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삼십 년 동안 한 번쯤 쓰다가 말았던 스트랩 록을 이제 이 악기에서는 앞으로 계속 쓰게 되었다.


2025년 10월 20일 월요일

Anthony Jackson을 추모.

베이스 연주자 앤소니 잭슨이 돌아가셨다. 일흔 셋 나이로 별세. 사망 원인은 나와 있지 않지만 그는 9년 전부터 뇌졸증을 몇 차례 겪었고 파킨슨 병 진단을 받았었다고 들었다. 위 사진은 올해 2월에 뉴욕 ShapeShifter Lab에서 열렸던 그를 위한 Benefit Concert에 그가 참석했을 때의 장면이다. 사진은 Thread 에서 가져왔다.

그 모금 공연의 내용은 모른다. 글로 전해진 것을 읽기만 했다. 많은 베이스 연주자들과 드러머들이 참여했다고 했다. 앤소니 잭슨이 직접 자기의 음악 인생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들었다. 한 시대의 거장에게 음악 동료들과 팬들이 보내는 존경, 사랑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였을 것이다. ShapeShifter Lab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은 베이시스트 매튜 개리슨이다. 아마 그 공간은 베이스 연주자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망이 안타깝다. 편히 쉬시길 빈다.

나는 그런 benefit concert 라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6월이 되어서야 인터넷에서 짧은 기사를 읽고 알았다. 그것은 앤소니 잭슨의 건강을 염원하고 생활 비용 등을 모금하기 위한 자선 공연이었다. 그 행사는 물론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였던 것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보기 불편한 현실을 드러내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주와 음악이 수십 년간 전 세계에 울려 퍼졌어도 병상에 누우면 지속적인 수입이 끊어지고 마는 것이 프리랜서 연주자의 형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미합중국의 의료 시스템이나 건강 보험, 사회보장제도 시스템이 작동은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시장 논리 말고 미국 사회 체계를 움직이는 다른 철학이 있기는 한 걸까. 정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여 민간의 모금과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지금 그 강대국의 모습이다.

2025년 10월 19일 일요일

영종도 공연

 


토요일에 도로정체가 심할 것을 예상은 했지만, 외곽순환도로가 그렇게 꽉 막혀있을 줄은 몰랐다. 십여 킬로미터를 오십 분째 기어가던 중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는 서울 시내에서 운전 중이라고 하면서 집회 시위가 많아 도로정체가 극심하다고 불평을 했다. 토요일이니까 집회 같은 건 해도 되지. 그게 맞지, 라고 말은 안 하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나는 두 시간 반 운전하여 영종도에 도착했다. 기온은 섭씨 15도. 외투를 입고 갔는데도 추위가 느껴졌다.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켜 사운드 체킹을 하고 좋은 음향 상태에서 여유롭게 연주를 시작할 때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베이스 줄이 빠르게 차가워지더니 손이 얼기 시작했다. 바람이 한번씩 불고 가면 손이 얼어 더 무뎌졌다. 결국 피크를 꺼내어 연주해야 했다.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주를 끝내고 집에 돌아올 땐 한 시간 십 분 걸렸다. 광주에 다녀온 것이 벌써 나흘 전이 되었다. 3차원에 갇혀 사는 생물의 입장에서 시간의 속도는 적응하기 어렵다. 찌는 듯이 더웠던 여름날 공연들이 몇 달 전 같기도 하고 지난 주 같기도 했다. 다음 주 공연도 야외무대라고 들었다. 옷이야 껴입으면 되지만 손이 쉽게 어는 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 




2025년 10월 16일 목요일

광주 금남로에서

 

어제 수요일 오후, 광주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골목을 걸었다. 예술의 거리라고 이름 지어진 돌바닥 길을 벗어나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있는 길을 걸으며 긴 시간 운전했던 다리를 풀고 있었다. 광주 금남로, 이제는 차선 간격이 좁게 느껴지고 사십여 년 지난 집들이 새로 지어진 빌딩들 아래에 나이든 꽃처럼 피어 있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는 비가 내렸고 스탭들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악기와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소리를 확인하고 합주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플라스틱 의자들이 길게 놓여진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이제 그 길 한가운데 서있다는 것을 이때엔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다 되어서 무대 뒤에 서있게 되었을 때야 그 대로에서 이제 곧 연주하게 된다는 것이 의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광주일보 건물은 바로 그 전일빌딩이다. 광주일보는 당시엔 전남일보였던 그 신문사이다. 헬기 사격으로 외벽에 수많은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그 건물 앞에서, 오늘은 한 시간짜리 공연을 하였다.


첫 곡을 시작하기 직전에 나는 아이폰을 가방에 넣어뒀는데, 연주하면서 그것을 후회했다. 끝이 보이지 않게 그 도로를 메운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즐거워하고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이날에도 공연하는 동안엔 비가 오지 않았다.

공연을 마치고 집을 향해 운전하면서 리더님과 통화할 때에 우리는 서로 조금 전 얼마나 기분 좋은 공연을 했는지 이야기 했다. 아주 뿌듯했다고 말하는 리더님에게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면서, 관객들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네 시간 동안 속도를 줄이고 고인 빗물에 미끄러져가며 운전했다. 하나도 안 힘들다는 말을 하지 말 걸. 새벽 두 시 반에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내렸을 때엔 너무 힘들고 허리가 아파서 잠깐 물기가 잔뜩 있는 자동차 문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셔츠가 흠뻑 젖어 있었다.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새 헤드폰


정보에 어두워 모르고 있었다가 친구와 대화 중에 PX8 헤드폰의 두번째 에디션이 나온 것을 알게 됐다. 봉은사에서 연주했던 날 그의 PX8 이전 버젼으로 음악을 들어보고 나흘 후에 헤드폰을 샀다. 블루투스 헤드폰은 쓰지 않을줄 알았는데 커피집에서 친구가 가지고 나와준 헤드폰을 착용해본 후 마음이 바뀌었다. 연휴가 지나고 토요일에 배송된 헤드폰으로 밤을 새워 음악을 들었다.

AAC 코덱으로 전송되는 아이폰, 아이패드의 애플뮤직 사운드가 (그 정도면) 훌륭했다. 소니 워크맨은 aptX Adaptive를 지원하고 있어서 워크맨에 연결하여 듣는 음질도 아주 좋았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건 USB 케이블로 맥미니에 연결했을 때였다. 무손실 고음질 음원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유선 연결을 통해 이 헤드폰의 성능을 완벽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날이 밝는 줄도 모르고 오래된 음악부터 가장 최근에 나온 음악까지 쉬지 않고 듣고 있었다.

책상 위 컴퓨터 환경이 새로와지고 좋아진 뒤로 만년필을 쥐고 글을 쓰는 시간이 줄었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엔 다른 것을 하지 못하고 음악 듣는 데에 몰입하고 있었다. 밀폐형 이어패드를 더 오래 쓰고 있으면 귀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비로소 헤드폰을 내려 놓고 펜을 들어 글쓰기를 했다. 그러다가 아침이 됐다.

커피를 내려 컵에 가득 부었다. 조금 전까지 듣고 있던 음악들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다. 좋은 음악들을 좋은 소리로 듣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덕분에 아침이 되었는데도 밖이 환하게 밝진 않았다. 오전에 몇 시간 밀린 잠을 자기에 좋을 것이다. 창문을 열어 습한 공기를 길게 들이쉬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저 다 마셨다. 바보같이, 지금 들리는 빗소리에 고음이 모자란 것 아닌가, 따위의 생각을 했다.


2025년 10월 10일 금요일

청주에서

 

담배제조창이었던 곳을 아름답게 바꿔 놓은 청주문화제조창에 갔다. 출발할 때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도로정체 없이 시간에 맞춰 도착하여 리허설을 하고, 넓은 장소를 느릿느릿 산책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공간이었다. 이런 곳이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길 건너 주택들도 예쁘게 지어져서 마치 동네 전체를 각자가 꾸민 것처럼 보기 좋았다. 근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공장 건물을 어떻게 개조하고 새로 가꾸었는지 기록한 사진들도 보고, 공예품들을 구경하다가 차안에서 시트를 눕히고 잠들었다. 빌 에반스의 You Must Believe In Spring이 오늘 날씨에 잘 어울렸다. 그 앨범을 들으며 잠들었다가 깨었으니 한 시간 정도는 차에서 잤던 것 같다.
어떤 무대 효과가 준비되어 있는지 사전에 듣기는 했었다. 그런데 비눗방울이 너무 잔뜩 날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비누방울 덕분에 끝나고 나서 물수건으로 슥슥 문지르면 악기가 깨끗하게 닦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가 계속 내렸었다. 청주에서는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공연을 했던 한 시간 동안만 비가 그쳤다. 공연이 끝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악기를 챙겨 차에 싣고 철거를 시작한 무대를 보며 땀을 식혔다. 집에 오는 길 중부고속도로에서는 차선이 잘 보이지 않거나 빗물이 고여 잠깐 자동차가 미끄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길이 눈에 익어 편안하게 느껴졌다. 내가 고속도로를 참 많이 지나 다녔구나, 하고 생각했다. 청주로 가는 길엔 Joe Hednerson의 So Near, So Far를 들었다. 집으로 올 때엔 RHCP의 Unlimited Love를 들었다.





2025년 10월 8일 수요일

아픈 고양이

 

어제 새벽에 고양이 짤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내가 헤드폰을 벗고 거실로 나가기도 전에 짤이 곁에서 자고 있던 아내가 깨어나 어둠 속에서 고양이를 들어 고양이 화장실 안으로 옮겨주고 있었다. 고양이 짤이는 갑자기 한쪽 뒷다리를 쓰지 못하고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주에 내가 여수에 있을 때에 아내는 별안간 걷지 못하는 고양이를 안고 혼자 동물병원을 이틀 동안 뛰어다니고 있었다. 제 힘으로 걸어가서 용변을 보지 못할 것 같으니까, 짤이는 사람을 깨워 도와달라고 했던 것이다. 아내가 들어올린 채로 고양이는 볼일을 보았고, 나는 화장지로 고양이의 엉덩이를 닦아 줬다.

오늘도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답답한 것은 검사를 해보고 이런저런 촬영을 해보아도 고양이의 어디가 잘못 되어서 한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를 할 수도 없다. 그저 고양이의 다리에 부목을 대고 솜과 붕대를 감아주는 처치만 했다. 시간이 지나서 짤이의 발이 붓고 있는 것을 보고 칭칭 감긴 테이프와 부목은 끌러주었다.

짤이의 소리에 놀라서 깨었던 깜이는 눈을 크게 뜨고 얌전히 앉아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짤이가 안정을 찾자 그제서야 안심을 했는지 갑자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이가 든 고양이들을 벌써 수 년째 돌보고 있는 아내는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가 빠르게 판단하여 지난 주에 사왔던 약을 중단하고 고양이를 안정시켰던 덕분에 짤이는 더 이상 배탈을 일으키지 않게 됐다. 당뇨를 앓았던 이지는 건강을 찾아서 아픈 짤이를 간병하는 아내 곁에 앉아서 그루밍을 하고 있다. 짤이는 이제 편안해졌는지 아내의 목 아래에 앞발을 밀어 넣고 자고 있다. 아픈 고양이가 낫고 아내의 고단함도 덜 수 있을 거라고, 무슨 근거는 없지만, 나는 믿고 있다.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봉은사 공연

아침부터 바깥에 보이는 강변길 위엔 자동차들이 가득했다. 차가 밀려서 오래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집에서 멀지 않은 봉은사를 향해 좀 서둘러서 출발했다. 그랬더니 내가 지나는 경로엔 길이 막히지 않아 평소처럼 30여분만에 갈 수 있었다. 약속 시간 한 시간이나 전에 도착하여 내가 제일 먼저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기실 천막에 갔더니 이미 다른 멤버들의 짐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번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제일 늦게 도착하게 된 거였다.

리허설을 마치고 근처에 살고 있는 서정원을 만나 커피를 마셨다. 이제 막 나온 블루투스 헤드폰 모델에 관심이 생겨서 이전 모델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번 들어보길 청했다. 그가 헤드폰을 갖고 나와줘서 나에게 익숙한 음악들을 몇 곡 들었다.

공연을 구경하러 온 친구가 다른 사람들과 그 커피집으로 와서 인사를 했다. 공연을 마친 후엔 객석에서 구경한 다른 친구가 문앞에서 기다려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지난 주 창원에서 공연을 한 후에 일주일 동안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있었던 베이스는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줄을 모두 풀어 놓고 혼자 운전할 때엔 악기가방을 열어두어 에어컨 바람을 쐬게 했던 것이 효과를 본 것이라고 믿고 있다.

2025년 10월 2일 목요일

부암동, 창의문

 

꽤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내 친구들을 아내도 만난 적이 있고 서로 아는 사이여서 점심식사 모임에 함께 가기로 했다.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하여 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고 서두르는 일 없이 산보를 할 수 있었다.

이 동네 길을 두 발로 걸어본 것은 십여년 만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길 건너 커피집에서 찬 커피와 빙수를 먹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낮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지난 일주일의 일들이 정리가 덜 되어서 가만히 메모했던 것들을 읽어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메모했던 것, 영수증, 신용카드 앱과 메시지 등을 열어 놓고 토요일부터 비어있는 다이어리 공책에 전부 정리하여 기록했다. 밤이 되어서야 헤드폰을 쓰고 베이스 연습을 하였다. 공연을 하루 앞두고 벼락치기 숙제라도 하듯이 손가락을 풀었다. 

2025년 10월 1일 수요일

여수, 변산, 부안, 전주


 집 밖에서 자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어쩌다 보니 한달에 몇 번씩 낯선 장소에 숙소를 잡아 외박을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엔 일 때문에 여러 도시에 뉴욕까지, 거기에다 이번엔 엄마 자매들의 여행을 돕느라 다섯 밤을 밖에서 보냈다. 여수에서는 첫날과 이튿날 각각 다른 호텔에 묵었다. 집을 오래 떠나 있을 것이어서 만년필을 여러 개 챙겨서 가지고 갔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혼자 숙소에 돌아와 아이패드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쓰는 시간이 좋았다. 너무 운전을 오래 했기 때문에 길게 앉아있지는 못하였다.

노인 세 자매를 모시고 다녔던 해변은 아름다웠다. 날씨가 좋았던 것이 행운이었다. 늦여름 초가을 푸른 하늘을 며칠 동안 볼 수 있었다.
한적한 장소를 찾아 바람을 쐬며 경치를 보면서, 세 자매가 함께 여행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엄마와 이모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저녁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면 그날 찍은 사진들을 전송해드렸다. 하늘과 경치, 사물을 찍은 사진들은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 보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인물 사진 사이에 한두 장 끼워 넣어 보내줬다.

지난 화요일에 동물병원 진료를 다녀온 고양이 짤이가 심하게 아프다는 소식을 여행 이튿날에 들었다. 아내는 급히 진료 예약을 하고 혼자 고양이를 안고 병원에 다녀왔다. 저녁에 통화하여 고양이의 상태를 전해 들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다는 아내의 목소리가 몹시 고단해보여 배달앱을 열어 치킨과 떡볶이를 주문해줬다. 하필 내가 집을 비웠을 때 급한 일이 생기다니, 혼자 고양이들을 보살피느라 힘들었을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침마다 노인 세 분을 태우고 주변을 다니고 도시를 옮겨 다른 숙소에 가서는 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루에 다섯 시간씩 매일 운전을 하다보니 은연중에 피로가 쌓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숙소에 돌아와서는 이제 펜을 쥐고 의자에 앉는 일은 됐고, 얼른 드러누워 스트레칭을 한참 하다가 더운물로 샤워를 했다. 그러면 금세 잠들었다가 이른 시간에 깨어났다. 역시 잘 자는 데엔 몸을 고생시키는 것이 제일이구나.

수요일에 전주에 도착하여 엄마와 이모들의 숙소에 짐을 옮겨드린 후 나는 집으로 출발했다. 동생이 비슷한 시각에 교대를 해주러 집에서 출발하여 전주로 오고 있었다. 내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동생이 전주에 도착했다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와 나는 고속도로 어디에선가 반대편 차선에서 서로 지나쳐 갔을 것이다.
다음날은 옛 친구들과 부암동에서 점심 약속이 있고, 금요일엔 봉은사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며칠만에 집에 돌아와 아픈 고양이 짤이를 살피고 점잖은 이지를 껴안아줬다. 깜이는 반가와하면서 곁을 떠날줄 모르더니 침대에 뛰어 올라와 내 팔을 베고 한참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