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단지 야외무대에서 공연했다. '북앤컬쳐' 뭐뭐... 라고 한글로 적어놓은 것이 무대 위에 큼직하게 걸려있었다. 백년 전이었다면 일본 말을, 그보다 앞이었다면 한자를 써놓았겠지. 사람은 자기가 밟고 있는 땅의 것을 천시한다고 황현필 선생이 말했었다. 하긴, '책과 문화'라고 해놓았어도 한자어이긴 하다.주차공간으로 제공해준 곳에 차를 세우고 예쁜 건물들을 구경했다. 고요한 동네에 낮게 드리워진 구름들이 아늑했다. 조용한 장소에 제일 먼저 악기를 설치한 바람에 내 베이스 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비가 내렸고 종일 구름이 가득했는데 누군가 소리를 질러도 금세 습기를 먹고 바닥에 떨어져버릴 것 같은 날씨와 장소였다. PA에서 퍼진 소리가 건물들에 부딛혀 맴도는 바람에 큰 짐승이 울고 있는 것처럼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 잔향이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서 더 오래 손을 푸는 것은 멈추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