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3일 월요일

식구들과 세상에서.

 


천둥소리가 서너 번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조용히 걸어가서 열어뒀던 베란다의 창문을 닫고 왔다. 비오는 소리, 스틸 펜촉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사이로 고양이 깜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올해 초부터 컴퓨터로 글쓰기를 멈추고 만년필을 손에 쥐고 공책에 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 펜의 세계라는 수렁에 빠졌다.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한가로이 취미나 즐길 때가 아니라는 자책과 이런 것에라도 몰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만족이 매번 교차한다.

선거들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사회가 욕망의 세력과 염치의 세력이 반씩 나눠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이 그냥 판타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한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식구들과 세상을 사는 일이 이제 대단한 일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