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올해 들었던 음악들

2월에 소니에서 나온 워크맨 (음악파일 재생기기) 을 사고, 헤드폰과 이어폰도 새로 샀다. 맨 처음엔 신이 나서 그동안 보관했던 낮은 비트율의 파일들은 지우고 가지고 있는 시디들을 열심히 무손실 음원으로 새로 저장했었다. 그것도 나중엔 힘이 들어서, 생각 날 때에 한 두 장 정도 변환하거나 했다. 그래도 좋은 음질로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다니는 것이 참 좋았다.

일상 중에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은 보통 오래된 음악들이다. 수 없이 반복하여 들어 왔어도 또 찾아 듣게 되는 음악들은 빼고, 올해에 새로 듣게 되었던 음반들을 정리해 봤다.


이 앨범은 작년에 나왔던 것인데 나는 올 봄이 되어서야 듣게 됐다. 빌 프리셀의 기타와 제럴드 클레이튼의 피아노가 조화롭고, 그레고리 타디의 테너 색소, 클라리넷이 아름답게 들렸다. 이제 제법 나이 든 조나단 블레이크의 드럼도 좋았다. 다섯번 째 곡 Waltz for Hal Willner를 여러 번 들었다.

어우, 메탈리카의 72 seasons 앨범이 나온 날부터 시작하여 몇 달 동안, 정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이 앨범을 들었다. 걸으면서 듣고 운전하며 듣고 잠깐 쉴 때에 한 곡씩 들었다. 더 좋아진 앰프 톤도, 곡과 앨범의 구성도 전부 다 좋았다.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인 길이가 길지 않게 느껴졌다. 투어가 시작된 후에는 한동안 그들이 유튜브에 올려주는 라이브 영상을 꾸준히 보았다. 과거에 냅스터와 소송도 했던 메탈리카가 매우 좋은 품질로 자신들의 라이브 현장을 보여주고 있으니 세월의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일흔 두 번의 계절은 햇수로 18년. 그들의 인연을 이야기 하는 이 앨범제목과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내가 김창완밴드의 리더님을 만나 처음 연주했던 것이 18년 되었다. 그분과 나는 열 여덟살 차이가 나니까, 그 때 리더님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였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밥 제임스의 새 앨범은 일종의 예의로 몇 번 들었다. 죄송하지만, 이 분은 Fourplay 이후 몇 년째 동어반복 중인 것 같다. Chuck Loeb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Fourplay 활동이 계속 이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밥 제임스는 그 포맷으로 아직 더 들려줄 것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화가 중에도 같은 주제로 계속 똑같아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듯이, 동어반복이라고 해도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음악가 중에 Jeff Lorber 가 있다. 그는 작곡, 연주, 녹음 등에 있어서 언제나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미 하슬립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할 나위 없이 좋고, 몇 곡에서는 제프 로버 본인이 리듬 기타를 치고 있는데 그 연주도 좋다. Marc Lettieri의 기타 연주도 좋았다. 드럼은 게리 노박.

제스로 툴의 새 앨범이라니, 깜짝 놀랐다. 제목은 독일어처럼 조어해 놓았지만, 누가 보아도 Rock Flute 이다. 이안 앤더슨은 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다. 열 두 곡 모두 이안 앤더슨의 작곡과 노랫말로, 첫 곡의 나레이션을 듣고 나면 두번째 곡부터 '록 플룻'이 펼쳐진다. 전조, 변박, 연극같은 구성은 여전하고, 노인이 된 록커가 이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하는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여름까지 메탈리카의 앨범과 함께 가장 많이 듣고 있었다.

손열음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열 여덟 곡을 담은 앨범을 녹음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작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했고, 올해에 앨범이 공개됐다. 전부 여섯 시간 반 정도 되는 길이이다. 나는 순서대로 며칠에 걸쳐 듣고, 한동안 뭔가를 쓰고 있을 때 계속 틀어두고 있었다. 내 편견이지만, 최근 인기 있는 남자 연주자들의 연주보다 손열음의 피아노가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트리오 실내악 음반을 찾다가 이 트리오의 앨범들을 듣고 있게 됐다. 브람스 Opus 8과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곡이 담겨있다. 46분 길이로, 듣기에 편안하고 듣고 나면 조금 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브래드 멜다우의 클래시컬 음악 앨범이다. 영국 테너 가수 이안 보스트릿지와 듀엣으로 연주했다. 멜다우의 작곡은 재즈일 수도 클래시컬일 수도 있는데, 테너의 목소리가 섞이니 쟝르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세계 같았다. 노랫말은 블레이크, 예이츠, 셰익스피어, 괴테 등의 시에서 가져왔다. 노랫말이 함께 제공되지 않아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볼 수 없었지만, 가사를 읽으며 듣는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이 음반은 멜다우가 직접 밝히길, 'MeToo의 시대에 성적인 자유의 제한'에 대한 앨범이다. 이 음반에 관한 한글 기사라고 할 것은 읽어볼 수 없었다. 어차피 나처럼 그 시어를 제대로 읽고 듣지 못하니까 국내의 음악 글 쓴다는 사람들도 주목하지 않은 것이거나, 섹슈얼 프리덤이니 하는 말은 지금의 시대에 하지 않는 것이 낫기 때문에 아무도 안 쓰는 것 아닐까.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이 앨범으로 보냈다.
유월에 써둔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에릭 클랩튼의 21세기 첫 십년 사이의 Rarities 앨범이 나왔고, 듣고 있는 동안 눈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첫 곡이 무려 Johnny Guitar 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블루스 음악이 갑자기 나를 과거의 어디로 데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곡마다 각각 다른 시기에 따로 녹음한 것인데 어떻게 한 것이길래 마스터링이 완벽한 걸까, 하고 놀라기도 했다. 기타 연주도, 노래도, 다른 악기들의 입체감도 매우 좋았다.
그리고 돌아가신 Jeff Beck과 함께 연주했던 Moon River가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함께 공개되었고, 하루 이틀 동안은 그것을 여러 번 돌려보고 다시 들었었다.

쳇 베이커, David Liebman과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Richie Beirach 가 아직도 연주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검색해 보니 David Liebman 과 그는 한 살 차이였다. 두 분 모두 이제 일흔 후반 정도이니까, '아직도' 라는 말은 삼가야 옳겠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음악인들을 떠올리면 막연히 여든 아흔 가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앨범은 사실 드러머 빌리 하트의 이름이 있어서 얼른 골라 들어보았는데, 알고 보니 무려 이십년 전에 나왔던 음반이 애플뮤직에 무손실 음원으로 새로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앨범이 있는 줄 몰랐었으니까, 올해 처음 들어본 음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리치 베이릭 (이렇게 발음하는 것 같다)이 쉰 다섯이었을 때에 녹음한 것이므로 이것은 그의 젊은 시절 연주라고 해도 좋겠다. 음원의 음질이 좋고, 스탠다드 넘버들이 듣기 좋다. 바이올린이 추가된 트랙도 있다.
이 분은 작년에도 솔로 피아노 음반을 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2018년에 나왔던 David Liebman과 듀엣으로 녹음한 앨범 Empathy 는 참 좋았었다.

갑자기 ECM에서? 라는 의문으로 존 스코필드의 새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앨범 제목은 Grateful Dead의 곡 제목이고, 수록곡들은 밥 딜런, 닐 영, 레오나드 번스타인, 마일스 데이비스의 넘버들까지 분별이 없... 아니지, 다양하다. 빌 스튜어트의 드럼이 듣기 좋았다. 존 스코필드의 기타 연주는, 이젠 저 위의 경지라는 것에 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앨범을 많이 듣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랜덤 플레이로 놓고 틀어두는 정도였다. 좋은 앨범인데 올해엔 자주 들을 앨범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그냥 두고, 나중에 더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Incognito의 새 앨범이 등장했다. 이렇게까지 부지런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꾸준하고 여전한 팀이다. 인원이 많아서 움직이기 무거울텐데 라이브 연주도 일년 내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자주 내고 있는 앨범마다 몇 곡은 또 훌륭하다. 일제 베이스를 쓰는 프란시스 힐튼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어쩜 이렇게 안정적으로 잘 치는 거지.
그러나 노래가 있는 이런 류의 팝 음악을 자주 듣지 않게 되어 많이 들어보진 않았다. 최근에 블루투스 수신기를 새것으로 바꾸고 나서 장거리 운전을 할 때에 큰 음량으로 몇 번 들었었다. 좋긴 좋은데, 열 여섯 곡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약간 부끄럽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의 새 음원 두 곡이 나왔다. 9월에 녹음했고 겨울에 발매했다. 이번엔 산울림의 곡들이어서 올해 초에 밴드 리더님에게 우선 말씀을 드리고, 녹음을 한 뒤에 '개작동의서'를 내밀며 서명도 받았다. "재미있게 했더라"라고 서너 번 말씀해주셨는데, 윤병주는 좀 더 강한 추천의 말씀을 요구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내 생각엔 원작자가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