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1일 수요일

함께 살아가기.

정리되지 않은 잡념들을 나열해보았다.

- 미국 시민인 이모님은 나와 내 동생에게 '속상하게하는 녀석들'이라고 했다. 동생이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에 미국에 '들어와서' 애를 낳고 가라고, 모든 것을 다 준비해주겠다고 그렇게도 힘주어 이야기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 오빠라고 하는 나 역시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녀석이구나, 라고 했다.

자신의 아기를 어느 곳에서 출산하는가라는 것은 전적으로 내 여동생 부부의 마음이니까 내가 뭐라고 할 것이 아니다. 다만 최소한 내 조카들이 으앙 하고 첫 울음을 터뜨렸던 곳이 이역만리의 그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에는 동생에게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객쩍은 생각이긴 하지만, 워낙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가 되었으니까 나와 내 동생같은 사람들은 별종이거나 유별난 인간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 기준으로는 미국 시민이 되어버린 내 이모가 안스럽다. 열흘 후에 그 분은 다시 '스테이츠'로 '들어가실'텐데, 부디 지난 달에 한국으로 '나오실' 때 처럼 예방주사를 네 개나 맞는다던가 하는 일을 겪지 않으시길. 미합중국의 모든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분의 정서가 가능한 상처입지 않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으시길 바라면 되는 걸까.


- 어릴 적의 친구를 반가와한다, 라고 하는 분은 아름다운 우정을 지닌 분들이다. 나에게는 옛 친구라는 말처럼 섬뜩한 것이 없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계속 친구가 되어지고 싶은 대상들이 소중하다.
사고와 생활방식, 머리속의 가치관과 살아가는 태도를 다 묵인하며 옛 친구이니까 함께 어울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여간 비위가 좋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비위가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거나 (이번에도) 내 인격형성이 비뚤게 되어있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서로의 생활이 달라 만나지 못하며 지내도 마음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우정이라는 것이 있고, 시시콜콜 옛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라도 술과 고기를 나눠먹을 수 있다고 해도 그나마 말라 붙어있던 정마저 뚝 떨어지는 존재들이 있는 법인데, 참으로 마음도 여유롭고 비위도 세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다.


- 루소는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말했다고 했다. 함께 살아가는데에 제일의 가치가 될만한 말들을 남겨주긴 했으나, 그것은 비현실적이어서 가치를 더 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따뜻한 곳에 있기 위해서는 세상의 음울한 골목이 당연히 존재해야한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내 것과 남의 것은 결코 똑같은 무게일 수 없다는 것을 종교로 삼는 사람들과 우애를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존 레논도 자신이 쓴 가사를 두고 머쓱해할지 모른다. 그것은 환상일 것 같다. 그런데도 간혹 끝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을 놓지 않고 그들에게 헌신하며 삶을 꾸려가는 분들을 보게 될 때면 나는 부끄럽고 난처하다. 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면서 입속에서 우물거리기만 하며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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