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8일 목요일

病.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사흘 째의 날.
아침 부터 온몸이 무겁고 관절마다 통증이 심했다.
머리에도 고통, 목에도 고통, 숨이 가빴다.
엄지 손가락은 많이 좋아졌었는데, 그만 방심하여 악기를 들어 올리다가 다시 삐끗하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약속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속을 해두고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야 한다. 길고 긴 하루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짐을 챙기려는데 '아직 덜 마친' 일감들이 있었다.
혼자만의 일이라면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달렸겠지만, 어린 학생들과의 약속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은 흥건한채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시 계단을 한 개씩 꾹꾹 밟으며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반대를 했을 때에 나는 몰래 몰래 밤에 돌아다니며 연주자가 되고 싶어했다.
어느날 차비가 모자라 이태원의 길바닥에 앉아 첫 버스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음악의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면 그까짓 것 괜찮다, 라고.
지금 바쁘게, 쉴틈없이 음악의 일만 하고 살고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병이야 귀찮은 것이지만 뭐 그까짓 것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내 일을 하겠다고 종일 도로를 기어다니고 있는 동안에, 아내는 먼 길을 지하철을 갈아타며 어르신들을 찾아가 꽃을 드리느라 하루를 보냈다. 밤 늦은 시간에 어머니로 부터 고맙다, 는 전화를 받았다. (물론 나는 혼만 났다.) 나는 아파서 흐느적거리고 고양이들은 심심하여 난동을 부렸다. 아내는 피곤에 절어 털실처럼 힘없이 늘어져버렸다.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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