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6일 목요일

까만 고양이의 인사.


아내가 찍어둔 사진이었다. 고양이가 뒤집어 쓰고 있는 것도 아내의 소행이었을 것이다.
새해 인사를 하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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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2일 일요일

눈 내렸던 날.



이 블로그에 적어둘 새해 첫 글을 쓰면서 망설였었다. 한 개는 지우고 한 개는 고쳐 썼다.
오늘은 순이가 떠난지 여섯 달이 되는 날이었다.

대학에서 치르는 입시시험의 심사를 하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올 겨울 제일 춥다는 뉴스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순이가 손바닥만한 어린 고양이였던 시절부터 함께 보내왔던 겨울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반 년 동안 하루도 순이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운전을 하거나 음악을 연주할 때에도, 동네의 길을 걷다가 밤하늘의 달을 보게 될 때에도 순이가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한 마리씩 쓰다듬고 안아주고 있으면 순이가 품에 안겼을 때의 느낌을 기억해보곤 했다.

추웠던 날 아내의 바지춤을 붙잡고 우리집에 들어와 머물러 살게 된 까만 고양이는 순이가 남기고 떠난 자리에서 자주 잠들고, 순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나는 까만 어린이 고양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으면서 자주 순이를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집안에 함께 있는 나이 든 고양이들에게 더 마음을 쓰려고 하고, 더 세심하게 보살피려고 한다. 함께 있을 때에 더 많이 서로 좋아하며 살아 있고 싶은 마음.

두 달 째 집안의 고양이 한 마리가 아팠고 아직도 스스로 사료를 잘 먹지 않고 있다. 아내는 몸집이 제일 작은 그 고양이 이지를 간호하고 살피느라 아직도 긴 잠을 자보지 못하며 지내고 있다. 밥을 물에 개어 손으로 떠 먹이고 주사기에 물을 담아 때를 맞추어 먹였다. 우리 두 사람은 식탁 위에 큰 공책을 펴두고 아픈 고양이가 밥을 먹거나 용변을 본 것을 서로 기록해두며 지내고 있다.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정성을 쏟다가 문득 순이 생각이 나면, 죽고 없는 고양이에게 더 세심하게 잘 해주지 못했던 것들만 떠올라 마음이 안 좋다. 순이에게 나는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리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었는데… 순이는 나 때문에 병을 얻었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말이 없어지고 자꾸 우울해졌다.

학교에 가까와질 무렵 동이 트기 시작했다. 빨간 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햇빛이 차 안에 뿌려지고 있었다. 녹지 않은 눈과 얼음 때문에 자동차의 앞유리가 뿌옇게 변했다.

나 혼자 순이의 가루가 담긴 조그만 상자를 한 손에 들고 집에 돌아오고 있던 여름날의 아침에도 꼭 그랬었다. 해가 떠오르고 하늘이 밝아지는데도 계속 눈 앞은 뿌옇고 흐릿했다.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계속 눈가를 문지르며 운전을 했었다.

푹신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괜히 건물을 빙 돌아 걸어갔다.
차갑고 마른 공기가 목 안에 가득 들어왔다.

괜히 달력을 열고 날짜를 세어보았다.
음력 섣달 그믐이 닷새 남았다.




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주에 우리는 나흘 동안 동물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팠던 일곱살 고양이 이지는 이제 회복하고 있다. 가느다란 두 발에 카데타를 여러 번 꽂아야 했다. 핏줄이 가늘어서 수액을 맞추기 위해 너무 많이 주사 바늘로 찔렀다. 조그만 발을 여러 번 주물러 줬다. 고양이는 곧 나을 것이다.

아내를 고양이와 함께 동물병원에 남겨 두고 오늘 밤 공연을 위해 나 혼자 돌아왔다.
연말의 토요일, 도로는 자동차로 꽉 막혀 있었다. 오른편으로 내 집 앞의 강이 보였고, 정태춘 님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아내가 주사를 맞으며 졸고 있는 고양이 이지의 사진을 보내줬다. 염치도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시간에 아내를 태워 집에 데려다 주기를 부탁하고 나는 주섬 주섬 악기를 챙겨서 나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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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부여에서 공연.


부여 국립박물관에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
아담하고 작은 공연장이었다. 잘 설계되어 있었고 잔향이 적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연 중에도 사운드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었다.

부여 박물관 건물도 아름다왔다. 채광과 자연스러운 조명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나는 점심을 먹고 혼자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플렛리스 베이스로 전부 연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리허설을 마쳤었다.


무대 가까운 곳에 출입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는지 손이 많이 시려웠다. 손이 굳어서 정확한 피치를 유지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결국 공연 후반의 몇 곡은 재즈베이스로 연주했다.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졌다.
휴게소에 몇 번 들러 차에서 토막 잠을 잤다.
나는 적당히 피로를 회복할 즈음 다시 깨어나 운전하는 것을 반복했다. 이제 이 패턴은 완전히 익숙해졌다.

열흘 조금 지나면 해가 바뀐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며 올해에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어떤 일들은 잠깐 잠이 들었을 때에 지나가버린 꿈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