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7일 토요일

구례에서 만났던 고양이.



전남 구례에 공연을 하러 다녀왔다.
아내와 함께 갔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고양이가 아내를 발견하더니, 잠시 후 그들은 그 동네를 둘이 함께 거닐고 있었다.

나도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쓰다듬고 엉덩이를 두드려 줬다.


고양이는 한참을 우리와 함께 놀았다. 공연 시간이 다가와 무대 쪽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고양이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고양이에게, '건강히 잘 살아라'라고 인사를 해줬다.



2016년 8월 25일 목요일

순이가 곁에 있었다.



순이가 떠난지 한 달이 되었다.

그동안 매일 슬퍼하고 아파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그리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은 유한하니까, 이것은 자연의 법칙일 뿐일테니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견뎌볼 수 있었다.

자주 청소를 했다. 순이의 흔적이 묻어있는 집안의 모든 곳을 볼 때 마다 눈물이 났었다.
이 집에서 보냈던 전부의 시간을 함께 했던 내 고양이의 생각에, 집안의 모든 구석 구석마다 슬픈 냄새가 났었다.

엊그제에는 조금 다른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내 고양이 순이와 내가 서로를 깊이 좋아하며 살았던 12년이 정말 근사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은 한 번 뿐이었던 일이었다.
나는 이제 이 집의 모든 곳에서 순이를 좋아했던 내 감정을 본다.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날지도 모르지만, 집안의 후미진 구석 한 군데도 남기지 않고 마음 속에 넣어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은 역시 부정적인 것이고, 그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했던 일과 하지 않았던 어떤 일들에 대하여 반성했어야 했고, 내 힘이 모자라 순이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던 일들에 대하여 깊이 미안해해야 했다. 그런 과정은 내가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했다.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고양이와 함께 있었던 11년 6개월 동안의 내 모습이 어떠했던가를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순이의 사진들을 모아 다시 보면서 날짜를 확인하고 그때의 기록을 살펴보기도 했다.

사진 속의 고양이 순이는 아주 많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진 속 그 순간의 일들을 기억할 때 마다 나는 순이의 의사표현과 마음과 감정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고양이의 눈에 비치고 있었을 내 모습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거의 매일 꿈에서 순이를 보았다. 어떤 것은 꿈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 문득 떠올랐던 기억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꿈에서 순이는 어린 고양이 시절의 모습으로 뒹굴며 놀기도 하고 조용하게 그르릉 거리며 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꽃을 보고 기뻐하거나 고양이 꼼과 뛰어 노는 모습도 있었다. 지난 밤에는 천둥소리에 놀라서 떨고 있는 어린 순이를 내가 껴안고 토닥이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순이는 처음 겪어보는 천둥번개와 소란한 빗소리에 겁을 먹었다가 내 품안에서 안정을 찾더니 금세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커피를 내리며 생각해보니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이것은 결국 남에게 이해받지 못할, 혹은 공감받지 못할 외로운 경험일 수도 있다. 다만 고양이 한 마리가 십년을 넘게 살다가 병으로 갑자기 죽어버린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도 개에게서도 다른 고양이에게서도, 순이와 함께 했던 세월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남아있는 나의 시간 안에서도 더 이상 없거나 드물 것이다.
나는 슬퍼하기를 일부러 멈추려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지나온 십여년이 나에게 귀하고 아름다왔던 날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순이가 떠나던 날의 모습도 굳이 기억하려고 한다.
순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든 간에, 내가 고양이 순이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그 고양이도 함께 느껴줬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양이 순이는 내 곁에 있었다.
무척 그립고, 보고싶다.
그리워할 수는 있고, 이제 볼 수는 없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의식하지 못하며 울기도 한다.
더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무뎌지고 눈물도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를 좋아해줬던 순이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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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6일 화요일

순이가 죽었다.

토요일에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연주를 했다.

하루 전이었던 금요일 새벽에 순이가 죽었다.
내 품에서 숨을 멈췄다.
고양이의 목과 다리가 평온하게 늘어졌다.

나는 무슨 억지를 부리고 싶었던 것인지, 순이를 데리고 강 건너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서 응급벨을 눌렀다.
숙직중이던 수의사가 나와줬다. 수의사로부터 고양이의 죽음을 확인받았다. 순이는 이미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다시 집에 돌아와 순이를 자동차에 안에 놓아둔채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내 수염이 아니라 입술 위를 면도기로 긁고 있는 것을 알았다. 면도날이 오래되어 잘 들지 않았던 덕분에 입술을 도려내지 않을 수 있었다.

옷을 갖춰 입은 후 아내는 집에 남게하고 작년에 에기를 화장했던 곳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한 시간 반을 달리며 곁에 눕혀진 순이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었다. 나는 아마 계속 고양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도착하니 거의 다섯시가 다 되었다.
화장터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순이의 몸을 쓰다듬으며 붙들고 있었다. 내가 껴안았던 바람에 그대로 굳어버린 고양이의 다리를 힘주어 펴서 편안하게 보이는 자세를 만들어줘야 했다.

아침이 되어 고양이 순이가 담긴 단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루의 색이 순이의 털빛과 닮았어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벼웠다.

나는 청소를 하고 순이가 그동안 사용했던 수건들을 걷어 세탁기 앞에 쌓아뒀다. 전날 순이에게 미처 다 먹이지 못했던 물에 불려놓은 사료를 들고 멍청하게 서있기도 했다.
오후가 다 되도록 구석 구석 닦았다.

평소대로라면 고양이들은 전부 낮잠을 자고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고양이 꼼은 나처럼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꼼은 순이가 있었던 집안의 구석 마다 옮겨다니며 순이를 찾기도 하고, 나에게 다가와 얼굴을 올려다보며 소리내어 말을 하기도 했다. 청소기의 소음에도 도망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내가 움직이는대로 함께 따라다녔다. 그러더니 결국 순이와 나란히 잠을 자던 자리로 가서는 순이가 있었던 공간을 비워두고 그 가장자리에 누워 혼자 잠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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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지산에서의 연주를 잘 마쳤다.
눈이 충혈되고 아팠어서 옅은 색안경을 쓰고 연주를 했다.
작년에 에기가 떠났을 때에도 바로 그 다음날에 성남에서 공연을 해야했었다.
나는 연주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에도 나는 여전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거의 뜬 눈으로 다시 아침을 맞았다.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금요일 이후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덥고 습했던 며칠이 지나더니 저녁에는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창문앞에서 밤중이 될 때 까지 한참을, 보고싶어하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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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5일 금요일

순이와 다시 병원에.


월요일에 동물병원에 다녀온 후, 순이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고 있었다.
새벽에 힘들어하는 고양이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다가 일곱시가 다 되어 자버렸다. 내가 다시 깨어난 것은 오전 열시였고, 그 세 시간 남짓 사이에 아내가 일어나 순이에게 밥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고 했다. 그러나 순이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숨을 쉴 수 있게 되면 가쁘게 호흡을 하며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다시 병원에 급히 갔다.
병원에서도 설명을 듣거나 진료를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일 없이 곧장 고양이를 산소처치실로 옮겼다. 흉수를 150ml 뽑아야했다. 수액을 맞추고 필요한 주사를 더 맞추었다.

긴 시간 동안 고양이가 주사를 맞으며 산소실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그 앞에 앉아서 순이를 지켜보며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고 빌 에반스의 피아노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순이는 편안한 표정을 되찾았다. 나중에는 길게 몸을 펴고 잠깐 잠을 자기도 했다.
오전 11시 반에 집을 나서서,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응급처치에 지나지 않을 뿐, 순이를 완치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수의사 선생님과도 많이 대화를 나눴다.
집에 함께 돌아온 후에 순이는 걸어다니기도 하고 물을 청하여 조금 먹기도 했다. 캔사료를 따줬더니 그것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먹었다. 밤중에는 서늘한 곳을 찾아 앉아 있기도 했다. 스크래쳐에서 발톱을 긁어보기도 했다. 나는 순이가 앉거나 눕는 자리마다 마른 수건과 매트를 펴주었다. 새벽에 주사기로 물을 조금씩 먹여 보았다. 낮은 접시에 물을 따라주면 순이는 혀를 내밀어 물을 적시는 정도로 맛을 보기도 했다.

순이가 다시 구석으로 걸어가 마른 수건 위에 편안히 눕는 것을 보고, 나도 그만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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