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약속보다 한 시간 쯤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달리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는데, 시트를 눕히고 잠깐 쉬어야겠다고 했던 것이 그만 삼십분이나 잠을 자 버렸다. 자동차 앞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다시 한 시간 십 분을 달렸다. 행사장소에 도착하여 안내하는 분에게 길을 묻기 위해 창을 열었더니 나쁜 냄새가 들어왔다. 낙동강 녹조 독소가 유역 주민들의 신체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지금 읽는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리허설을 마치고 악기는 가방에 넣었다. 무대 위에 놓아두어야 했던 페달 위에는 비닐 우의를 덮어 놓았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귀에 인이어를 꽂고 계단 앞에 섰을 때, 갑자기 약속되어있던 시간을 바꿨다며 맨 끝 순서에 연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런 게 어디있느냐, 라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것'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럴 수도 있지 뭐. 오래 다녀보니 대충 알겠다, 싶었다. 35분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면서 사흘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새 자동차를 운행한지 백일 쯤 지났다. 클러스터를 보니 그동안 9천 킬로미터 넘게 주행했다. 오늘 하루만 오백킬로미터 넘게 운전했으니까 석 달 만에 그 정도 달렸던 것이 뭐 이상한 건 아니다.
아이폰에 다운로드 해뒀던 앨범을 듣고 그 후엔 소니워크맨에서 랜덤으로 음악을 틀어두며 집에 돌아왔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했는데 이번에도 주차할 자리가 남아 있었다. 운이 좋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