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옐로우재킷과 빅밴드

 


몇 년 전 펠릭스 파스토리우스의 후임으로 옐로우재킷 멤버가 된 Dane Alderson은 훌륭한 베이시스트이다. 그의 연주가 좋아서 여전히 나는 앨범으로, 동영상으로 옐로우재킷의 음악을 꾸준히 보고 들었다. 올해 연말이 다 되어, 지난 달 첫째 주에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이 나왔다. 그동안 유튜브에서 녹음과 연주 장면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아왔는데 드디어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앨범이어서 반가왔다.

앨범의 제목인 Jackets XL의 XL은 로마숫자 표기로 40이라는 의미이다. 이 밴드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일 Cologne을 기반으로 오래 활동하고 있는 WDR Big Band와 협연했다. 옐로우재킷의 리듬섹션에 빅밴드 브라스 섹션이 더해졌다. 그리고 열 곡 중 일곱 곡은 바로 멤버인 Bob Mintzer가 편곡하였다. 한 곡은 창단멤버인 Russell Ferrante가, 나머지 두 곡은 Vince Mendoza가 맡았다.

Bob Mintzers는 2016년부터 이 WDR Big Band의 지휘를 맡고 있다. 그리고 이 빅밴드는 작년에 피아니스트 Fred Hersch의 앨범에 참여했는데, 당시 빅밴드의 편곡과 지휘를 맡은 사람은 Vince Mendoza였다. Fred Hersch와 WDR Big Band의 앨범 Begin Again도 아주 좋은 앨범이었다.

옐로우재킷의 스물 다섯번째 앨범은 두 곡을 제외하고 모두 지나온 그들의 앨범 수록곡들을 다시 편곡, 연주한 것이다. 러셀 퍼렌티는 그 중 아홉번째 곡 Coherence를 편곡했다. 이 곡은 옐로우재킷의 2016년 앨범 타이틀곡이었다. 빅밴드 편성으로 다시 연주한 음악 중 가장 정갈하고 숨막히는 편곡이었다. 아름답고 담백하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정말 어려운 변박이 군데 군데 나타나고 있었다. 러셀 퍼렌티는 빅밴드 작곡/편곡/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Maria Schneider 의 편곡을 가져와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웹사이트에서 'Hang Gliding'의 악보 패키지를 구입했고, 그것으로 공부하고 연주 동영상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이 곡에서는 밥 민처가 실제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고, 러셀 역시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교하게 편곡한 이 음악을 들으며 아주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곡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밥 민처는 대학을 졸업한 뒤 Buddy Rich 빅 밴드와 공연하는 것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었다. 80년대에 그는 브렉커 형제와 윌 리, 피터 어스킨, 로저 로젠버그 등과 함께 당시 젊은 재즈 올스타로 구성된 빅 밴드 활동을 했다. 이후 Thad Jones / Mel Lewis Orchestra와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Word of Mouth 빅 밴드 멤버로도 활동했다. 빅 밴드 편성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재킷의 앨범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밥 민처는 수십년 동안 EWI도 연주해왔다. 신디사이저 관악기인 이 전자악기(사실은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어떤 재즈팬들은 '그것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말도 해왔다. 전자악기를 사용하는데에 적극적이었던 옐로우재킷의 음악도 '재즈가 아닌' 어떤 것으로 분류하기 좋아했던 그 재즈팬들에게도 이 앨범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앨범의 두번째 곡 Dewey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름 Miles Dewey Davis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뮤트 트럼펫 멜로디는 바로 밥 민처가 EWI로 연주한 것이고, 곡의 중간에 나오는 플룻 연주는 그가 EWI의 플룻음색으로 연주한 것을 빅 밴드 멤버들의 실제 플룻 사운드와 섞은 것이다. 러셀 퍼렌티의 신디사이저 솔로가 아주 좋고, 리듬이 현대적으로 바뀐 것도 좋다. 2020년의 빅 밴드 사운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데인 앨더슨의 베이스 솔로가 빛나는 곡은 첫번째 수록곡 Downtown이다. 알토 색소폰 솔로는 빅밴드 멤버인 Johan Hörlen의 연주이다. 윌 케네디의 드럼 브레이크가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부분도 아주 좋았다. 윌 케네디는 빅 밴드와의 연주를 위해 22인치 베이스드럼을 사용했다고 했었다. 최근 팝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라우드 마스터링 - 음량을 크게 하여 음원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다. 나는 아마도 그 덕분에 드럼의 공간감이 더 좋게 들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난 40년 동안 스물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재즈, 팝, 퓨젼, OST, 가스펠 등을 연주해온 옐로우재킷은 맨 처음 기타리스트 로벤 포드의 밴드로 시작했었다. 여전히 그들을 재즈 그룹으로 생각하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이제 옐로우재킷은 역사 속의 어떤 재즈 쿼텟보다도 오랜 기간 활동해온 재즈 밴드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음악활동을 통하여 업적을 이루어 온 이 4인조 그룹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더 앨범을 들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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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재즈 기타 앨범


 

작년에 애플뮤직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Toots Thielemans 을 기리는 듀엣 앨범을 발견했다. 이 듀엣 앨범에 담겨있는 연주들이 좋아서 한동안 자주 듣고 있었다. 한동안  새로운 재즈 연주자를 모른채 지냈었다. 자주 찾아보지 않으면 새로운 음악인들의 이름을 하나도 모르게 된다. 나에게는 Yvonnivk Prene이라는 하모니카 연주자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기타리스트 Pasquale Grasso 도 낯설었다. 그 음반을 시작으로 나는 이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좋아하게 되어 가끔 앨범들을 찾아 들어보고 있었다.

올해에 나왔던 좋은 재즈 음반들 중에서 솔로 기타 연주로 열 두 곡이 담겨있는 Pasquale Grasso 의 이 앨범 Solo Masterpieces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듣다 보면 특정한 쟝르 음악 연주자에게 매료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쟝르만의 언어를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악곡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드러나는 연주를 마주치게 되면 조금 바쁜 일이 있어도 우선 잠자코 앉아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듣게 된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이 그랬었다. 파스쿠알레 그라소의 테크닉도 놀랍지만 스탠다드 재즈 음악들을 해석하는 그의 연주는 재즈 기타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연주자들의 좋은 점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피크와 손가락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는 그의 주법은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완벽한 연주자들이 그렇듯 현을 퉁기는 모든 피킹이 다 자연스럽다. 그는 오른손 새끼 손가락까지 자유롭게 사용할뿐더러 그 힘이 센데, 그 덕분에 순간 순간 더 풍부한 기타 화성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기타가 특이하여 검색을 해봤다. 프랑스의 기타 장인인 Bryant Trenier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고전적인 설계로 보이는 외관에 모두 수작업으로 악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파스쿠알레 그라소가 사용하는 기타는 트레니에가 그를 위해 만들어 준 파스쿠알레 그라소 모델 (Modello Pasquale Grasso)이었다. 핑거 레스트가 없는 대신에 콘트롤 노브가 브릿지 부분에 달려있는 점이 좋아 보였다. 바디에 따로 구멍을 뚫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간단한 수리가 필요할 때에도 편리할 것 같았다.  http://www.trenierguitars.com/

파스쿠알레 그라소는 2019년 하반기 동안 솔로 기타 음반으로만 네 개의 디지털 EP 를 발표했었다. 그 후에 세 장의 음반들이 더 나왔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전부 다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각 앨범의 제목을 보니 모두 스탠다드 재즈와 위대한 연주자들의 작품들을 연주한 것 같다. 올 겨울에는 그의 연주들을 모두 다 들어보고 싶다. 나는 솔로 기타로 연주되는 재즈 음악은 어쩐지 겨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처음 Wes Montgomery의  CD를 구입하고 재즈 기타에 깊이 빠져들었던 계절이 겨울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쿠알레의 이 앨범은 녹음된 전체 사운드도 좋고 악기의 음색도 좋다. 그 사운드는 조 패스처럼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짐 홀처럼 너무 슬프지도 않다. 어느 날 하루를 골라 스피커로 크게 틀어두고 들어보고 싶은 앨범이다. 그의 스탠다드 시리즈들은 오래된 재즈팬 뿐 아니라, 이제 막 재즈 기타를 듣기 시작했거나 스탠다드 재즈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아주 좋은 음반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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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항상 그랬었지만 음반이나 음원을 유통하는 회사는 일을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 지니뮤직에서 위의 음반은 '애시드/퓨젼'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틀린 분류이다.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겨울, 고양이 생각

 


갑자기 추워졌다. 일기예보가 알려줬던 것처럼 영하 10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눈이 내렸었고 강원도 북쪽에는 한파경보가 내려진다는 뉴스도 보았다. 감염병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4년 전 이 즈음에, 지금 내 곁에서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하는 까만 고양이가 나와 아내에게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선언했다. 유난히 추웠던 11월 밤중의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을 어린 고양이를 부르자 얘는 고민도 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몸을 부비며 끙끙 소리를 내었다. 결국 고양이를 품에 안고 데려와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고 몸을 씻기고 키우기로 한 것은 아내와 내가 맞긴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이 고양이가 절박한 심정으로 '선언'을 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당신들과 살아야겠다.' 라고. 추워진 11월이 다시 찾아오자 나는 그날 밤 까만 고양이 까미를 만났던 일이 기억났다.

까미는 아주 말이 많고 걸핏하면 투정을 부리는 어린이 고양이가 되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 고양이들에게 심한 장난을 걸고 얻어 맞는 일도 매일 하고 있다. 그리고 간식이 생각날 때에는 우리를 만났던 그날 그랬던 것 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 가끔은 정말 배가 고픈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아주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사람에게 간식을 내놓으라고 할 때 마다, 나는 까미가 언변 좋은 대중연설가의 기질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 여름에 사랑했던 고양이 꼼이를 잃었다. 아직 반 년도 지나지 않았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를 매일 매일 몇 번씩 떠올리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꼼이는 내 결혼의 시작과 함께 우리와 살게 되었었다. 고양이 꼼이는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을 웃게 했다. 하얀 고양이 꼼이는 애정을 표현할 때에도, 말썽을 부릴 때에도, 즐거워 뜀박질을 하거나 나른하게 마냥 졸고 있을 때에도 귀엽고 예뻤다. 나는 고양이 꼼이에게 행복을 빚진 채 그를 떠나 보냈다.

고양이 까미가 우리와 만났던 그 해 여름에는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났다. 순이와 가장 친했던 꼼이는 그로부터 꼭 4년 후에 순이가 떠난 곳으로 갑자기 가버렸다. 지난 달에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었다. 병실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며 잠깐씩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날, 나는 떠나고 없는 내 고양이들을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새삼, 각자의 시간은 결국 별안간 멈추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나의 전화기와 시계에는 항상 우리의 곁을 떠난 고양이들의 사진이 보여지고 있다. 곁에 없는 고양이를 그리워 하다가, 지금 곁에 있는 고양이들을 껴안고 얼굴을 부벼 보기도 한다. 나는 더 쓰다듬어도 좋다며 그르릉 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안아 편안한 자리에 눕히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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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일 목요일

맥 오에스 업그레이드.

 



맥 오에스를 버젼 11로 업그레이드 했다.

맥 오에스 텐이 나왔던 것이 19년 전의 일이니까, 거의 이십여 년만에 새로운 버젼이 나온 것이다.

업데이트가 아니라 새로운 오에스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내가 사용하는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제대로 호환이 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https://www.pro-tools-expert.com/ 에서 정보를 얻었다. 그 페이지는 지금도 매일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 되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는 이제 구형인데, firewire 를 애플에서 나온 커넥터로 연결하여 쓰고 있다. 다행히 제대로 잘 작동한다고 나와 있었다. 이제 이것을 마지막으로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기술인 1394 - firewire 기기들을 엔지니어들이 더 이상 개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온전히 작동할 것인지 관련 정보를 찾아 봤다. 애플에서 나온 프로그램 외에 내가 따로 구입했던 것들 모두 이미 새 맥 오에스에 호환되도록 업데이트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제 백업이 남았다. 타임머신 기능을 쓰고 있으니까 우선 안심할 수 있었고, 맥 오에스 업그레이드는 설치가 끝나도 사용자가 이전에 사용하고 있던 모든 앱들과 설정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너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유실되거나 없어지는 파일이 생길까봐 필요한 폴더들은 아이클라우드로 백업하고, 작은 파일이 가득 담긴 것들은 외장하드에 넣어 뒀다.

우선 가지고 있는 맥북프로가 업그레이드에 해당하는 기종인지 확인하고, 시험삼아 먼저 맥북에 업그레이드를 설치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설치가 끝난 후 재시동 되는 맥북을 지켜보았다. 깔끔하게 업그레이드 된 것을 확인하고, 이제 책상 위의 아이맥에 설치를 시작했다. 다음 날 해야 하는 수업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아이맥에 오에스가 설치되는 동안 작업하던 것을 그대로 맥북 프로에 가져와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새 오에스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직전의 마지막 오에스 텐 버젼이 워낙 답답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쾌적하게 느껴졌다. 세세한 디자인과 기능들도 괜찮았지만 가장 반가왔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매킨토시 시동음이 되살아난 것이다. 2년 전에 그 시동음이 사라졌을 때에 적어뒀던 글이 있었다. 그 사운드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며 시동음 파일도 함께 올려두었었다. https://choiwonsik.blogspot.com/2018/08/blog-post_66.html

오에스 설치가 끝나고 컴퓨터가 재시동 되면서 그 시동음을 들었을 때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새 시동음은 피치가 조금 더 낮아진 것 같은데, 그런대로 묵직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터미널을 사용하여 굳이 시동음이 나오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싶어했던 나에게는 필요 없는 팁이었다.

백업을 하고, 수업 준비물을 만들고, 오에스 설치를 지켜보고 있느라 그만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다시 몸에 통증이 느껴져서 얇은 이불을 깔아 둔 바닥에 길게 누웠다. 이제 밤 새워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생활도 하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조금 몸이 나았다고 금세 잊고 원래의 패턴대로 하루를 보내버렸다. 지금 고작 컴퓨터 사운드를 듣고 좋아할 때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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