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해를 마무리 하는 공연.


한 해를 끝내는 공연을 했다. 같은 장소에서 세 번째, 송년(送年) 공연.
이제 이 장소에서 공연을 마치면 또 해가 바뀐다는 기분이 든다.
이 날의 공연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서 준비를 많이 했다. 작은 공간이므로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펙터 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앰프의 소리가 잘 들리기를 원했다.
연주할 곡들의 순서가 바뀌고 조(調)가 많이 달라졌다. 어떤 곡은 더 낮은 음역대에서 연주했다. 공연의 중간 부분에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를 할 때에는 평소에 연주하던 베이스 라인 그대로 하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편곡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 의도했던 대로 잘 연주할 수 있었고,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올해는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단하고 힘들었다.
불평을 하거나 투덜대는 짓은 그럴 수 있는 여력이라도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해 동안 나는 한숨을 쉴 생각도 할 여유가 없었다. 미워하고 싶은 한 해였다. 어서 지나가라고 떠밀고 싶었다.

공연을 마치고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테이블에 마련된 감자튀김을 먹다가 동료가 따라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말았다. 조금만 맛을 볼 작정이었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그만 몇 잔을 거듭 마셔버렸다. 마른 진흙처럼 몸에 붙어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맥주 몇 잔을 마시며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당진 공연.


당진에서의 공연을 마쳤다.
낮에 서해대교를 건너다가 9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공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안에는 어떤 연고가 있어 가끔 다녔다. 당진도 그랬다. 공연을 하러 갔던 적은 아직 없었다.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감기 몸살을 앓았다. 두 시간 운전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만 버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허설을 마칠 즈음부터 몸살 기운이 사라졌다.


십 년 전 12월에는 밴드의 두번째 음반을 낸 후 연말 공연을 했었다. 열 번의 해가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극장에서 요청한 포스터에 서명을 하고 어쩐지 기록을 해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스물 두 곡을 연주한 공연도 지난 십 년 세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공연을 마치고 악기를 정리하다가 무대 바닥에 붙여둔 셋리스트를 한 번 더 보았다. 십 년 동안 어떤 곡은 모양이 달라졌고 어떤 곡은 조가 바뀌었다. 어떤 곡은 내가 녹음하고 연주한 지 십 년이 넘었고 어떤 곡은 내가 마음에 담아 들어온 지 삼십년이 넘었다.

이제 다음 주에 남은 공연을 하면 힘든 일만 많았던 한 해를 얼른 보내줄 수 있다.
오늘은 우선 오래 자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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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행복해하는 고양이.


고양이 이지가 자주 기분 좋아하며 논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즐거워져서 혼자 장난에 몰두하기도 한다.

어디까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었던 올 한 해 동안, 고양이 이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은 몇 안되는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지를 볼 때 마다 껴안고 입 맞춰주며 고마와했다.

동물병원에 갔다가 주먹만한 어린이 고양이가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었다. 어린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고 가늘게 울며 두 앞발로 내 손가락을 꼭 쥐었었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손가락 끝에 남은 고양이의 온기가 마음에 남아서, 아내와 함께 동물병원에 다시 찾아가 입양을 했었다. 고양이 이지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때로부터 벌써 십 년. 세월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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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음악


아침에 병원에 다녀와서 세 시가 다 되어 첫 끼를 먹었다.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모자라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

저녁에 학교 학생들의 정기공연, 졸업공연이 있었다. 서교동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빼곡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엔 울긋불긋 낯선 간판들이 가득했다.
학생들의 연주를 주의 깊게 보았다. 나는 지난 주 작은 공연을 제대로 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자신들이 공들여 준비한 음악들을 한 곡 씩 연주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강한 자의식이 보였다. 대부분은 과잉된 기분으로 보였지만, 그 사이에 시선을 멈출만한 미래의 연주자들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십여분 걸어서 오늘 약속되어 있던 녹음실에 도착했다. 스무 살 많으신 음악선배 형님은 벌써 도착하셔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얼마 전 그 분의 노래 두 곡을 녹음했다. 오늘 녹음을 끝으로 이제 후반 작업만 남았고 아마도 새해 초에 음원이 나올 것 같다.

깊은 밤 동네에 돌아오니 입김이 보였다.
이제 겨울은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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