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5일 일요일

밤 새운 뒤 아침에.


작은 방에 열세시간 째 앉아 있다.
오후 두시에 작업실에 와서 레슨을 두 번 했다.
레슨을 마치고 났더니 다섯 시 반. 대중음악사 강의 원고를 쓰며 참고자료를 읽었다. 새로 읽어야 할 것들 중 PDF파일로 된 것들의 일부는 텍스트로 옮겼다. 어떤 것은 Scrivener 폴더에 담고, 어떤 것은 epub 파일로 만들어 iBooks에 넣었다.

졸음이 밀려와 40분 정도 잠을 잤다. 의자를 발 아래에 받쳐 놓고 한쪽으로 돌아 누운채로 눈을 붙였다. 때가 되면 언제나 배는 고프고, 그 시기를 지나보내면 손이 떨리거나 몸 상태가 나빠진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하는 것이 늘 싫지만 먹어야 하고, 그러면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게 귀찮기도 하고 결국은 생존에 붙잡혀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처의 심야 콩나물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24시간 맥도날드에 들러 원두커피를 샀다.

열 시간 넘게 혼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이런 일을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세 시 이십 분.
날이 밝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걱정을 잊고 싶어서 이 상자같은 지하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 나가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2017년 3월 1일 수요일

늦겨울 오후


아침에 잠들었다가 오후에 깨었다.
아내는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가끔씩 날아와 놀다가 가는 비둘기들을 위해 아내가 베란다 창문 앞에 쌀을 조금 놓아두었던 모양이었다. 고양이들이 뛰어가길래 따라가 보았더니 저런 모습으로 놀고 있었다.

한 달 넘게 매일 매일 많이 읽고 많이 썼다. 정작 블로그에 옮겨둘 수 있는 것은 쓰지 못했다. 전부 드러내지 못할 잡설이거나 사변적 공상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부끄러워진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쓰지 않기 위해 마음의 띠를 바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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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5일 토요일

공연


군포에서 공연을 했다.
악기업체에서 가져온 베이스 앰프가 아주 좋았다.
펜더 수퍼 베이스맨이었다. 내가 쓰기에 제일 잘 맞는 앰프였다.
그 진공관 앰프의 음색을 계속 듣고 싶어서 공연이 더 길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오래전 이태원에서 연주할 때에 사용했던 앰프는 펜더와 어쿠스틱이었다. 그 시절 생각이 났다.

다만 공연 시작 후 처음 서너 곡을 지나는 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낫지 않고 있던 왼쪽 팔꿈치와 손가락에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깜짝 놀랄만큼 아팠다. 간신히 틀리지 않고 연주를 하긴 했지만 한동안은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줄을 누를 때 마다 아팠다.
잠시 곡과 곡 사이의 시간 동안 손가락을 주물렀다. 감각이 무뎠다. 나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점차 통증은 사라졌고 공연은 잘 마쳤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손가락 끝에 감각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중이다.

시간은 흐른다. 운전을 하며 생각했다.
'아직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제 점점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들이 생길 것이고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늙게 되겠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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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춥다.


순이가 떠난 후 일곱달을 보냈다.
매일 고양이 생각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싶어한다.

겨울은 끝나가는 모양이다. 아직은 바람이 차갑다.
공연을 위해 악기 손질을 하다가 문득 이 사진이 생각나서 찾아 열어보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사진들을 인화해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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