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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5일 목요일

악기

 




나는 웬만하면 학생들의 악기에 관심을 두지 말고, 거슬리는 것이 보여도 상관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전에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가져오는 악기의 상태가 나쁘거나 하면, 굳이 내가 직접 조정해주거나 손봐줘야 직성이 풀리곤 했었다. 십 년 이십년 어린 학생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베이스줄 조차 스스로 교환하지 못하는 학생까지 목격하게 된 이후 나는 학생들의 악기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이 나서서 뭔가를 바로잡아주면 그들은 스스로 배울 기회를 만들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연주하는 것 외에 악기의 유지 관리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주에는 내가 오래 쓰고있는 펜더 재즈를 가지고 다녔다. 지난 달 방송촬영 때에 이 악기를 들고 갔었는데, 하루 전에 네크를 조정했는데도 휨 정도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어서 연주할 때에 애를 먹었다. 그 전 여섯 달 동안 이 악기를 케이스에서 꺼내지 않았던 탓에 상태가 나빠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어 악기를 다시 분리하여 트러스로드를 조이고, 브릿지의 녹을 닦아내고, 새들을 움직여 피치도 조정해뒀다. 넥과 바디를 조립하면서 조인트를 고정하는 나사 중 한 개가 헛돌고 있는 것을 알았다. 워낙 많이 분리 조립을 반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 주 밴드의 공연에서 이 악기를 쓰려고 한다. 손에 다시 익숙하게 하고 싶어서 일주일 내내 이 악기로 연습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 중 한 명의 악기에 톤 노브가 없어진 것이 눈에 보였다. 학생에게 노브를 분실하였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그 부품을 꺼내며, '며칠 안에 악기점에 가져가서 맡기려고 한다'라고 했다. 맙소사.

나는 내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고 학생에게 악기를 건네어 받아, 프레시젼 베이스의 톤 노브의 나사를 조여 다시 부착해줬다. 악기를 구입하고 한 번도 '셋업'을 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줄 높이를 조정해주고, 열 두번째 플렛에서 하모닉스를 내어보며 새들을 앞 뒤로 움직여 만져줬다. 베이스를 다시 받아든 학생이 연주해보더니 좋아하며 웃었다. 나는 그 학생이 언젠가는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여 대수술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자기의 악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펜더 재즈는 금세 내 손에 익숙해졌다. 악기의 상태도 좋고, 연주하기에 아무 무리가 없다. 연습하면서 오랜만에 패시브 톤이 정겹게 느껴지고 그동안 이 악기와 함께 다녔던 수많은 장소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기도 했다. 다가오는 공연은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재즈

 


(4월 29일 금요일 밤)

내일 연주할 곡들을 계속 연습하다가 유튜브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의 라이브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더 음악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 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으니 잊고 지냈던 스윙 리듬의 기분이 돌아오고 있다.

Arturo Sandoval 의 십년 전 연주 영상을 보면서 아주 옛날 대학로에 매주 구경하러 가서 라이브를 보며 혼자 공부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막막했던 미래에 대한 걱정, 무엇부터 먼저 시작해야 좋은지 알 수 없는 때였다. 아무라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뜸 질문을 해대었다. 내 성격에,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연주자 선배들은 뭔가를 묻고있던 어린애가 기특했는지 귀찮아하지 않고 나에게 뭐라도 알려주고자 설명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것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서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 리얼북 한 권을 제본하여 들고 다니며 연주자들 앞자리에 책을 펴놓고 소절을 따라가며 보고있기도 했다. 요령도 없이 무식하게 혼자 배우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많이 떠올랐다.

(4월 30일 토요일 밤)

서교동 골목의 가게에서 연주를 했다. 어제 악보를 보며 연습해두길 잘했다. 오랜만에 비좁은 공간에서 베이스 헤드를 드럼의 라이드 심벌에 부딪히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낯설은 장소, 부자연스런 무대였는데도 재미있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른 것을 잠시 잊고 베이스만 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네는 이제 판데믹이 끝나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연주를 마치고 얼른 악기를 챙겨 부모님 집에 들러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Romain Pilon 의 몇 년 전 앨범을 들으며 운전했다.



2022년 3월 29일 화요일

겸손해질 수 밖에

 


컴퓨터를 아예 끄고, 책상 위에 아이패드를 가로로 놓아 음악을 틀었다. 몇 주 동안 듣고있는 Romain Pilon의 앨범이다.

어제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30년 전 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Joshua Redman이 막 데뷔하여 무서운 젊은이로 등장했을 무렵의 실황이었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브라이언 블레이드, 브래드 멜다우 들이 풋풋한 어린 모습으로 엄청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는 플렛이 있는 네 줄 베이스를 치고 있었다. 잊고 지내던 베이스의 기본을 새로 구경했다. 어떻게 리듬을 연주하고 그것을 유지하는지, 화음과 리듬과 곡의 패턴을 훼손하지 않으며 음악적인 유희를 즐기는지,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낮에 밴드 합주를 했다. 밴드의 리더님은 조금 더 늙었고, 몇 곡의 키가 조금 변경되었다. 자기의 변한 목소리에 맞도록 바꾼 것일 게다. 키가 바뀌면 베이스의 선율이 다르게 들린다. 원래 하던대로 해버리면 음악이 너무 무거워지거나 밋밋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 밤중에 네 줄 베이스를 꺼내어 스무 곡 전체를 쳐보았다. 새로운 베이스 라인으로 연주하면 좋을 곡들을 골랐다. 합주를 할 때 노래와 악기 소리가 잘 섞이는지 확인하고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원래대로 할 것을 결정했다.

얼마 전에 John Scofield 가 앰프 두 개를 놓고 혼자 연주하는 영상을 봤었다. 노인이 된 그가 보여주는 연주는 완전히 농익어서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말년의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종류의 슬픔이 있었다. 인간이 수십년 동안 매만져 완성해낸 최고의 기량과 정신. 그러나 완성에 가까와질수록 이제는 육체와 마음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데에 남은 힘을 써서 버텨낼 뿐. 끝이 가까이에 다가온 늙은 인간의 무르익은 연주는 슬프고 아름답다. 겸손해질 수 밖에.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자코 부트렉


 애플뮤직에 웬 Jaco Pastorius 앨범이 새로 나왔다며 추천음반으로 보여졌다. 또 이곡 저곡 붙여둔 엉터리인건가 보다 하고 듣지 않고 있었다. 사실, 며칠이 지나도록 음악을 집중하고 들을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수상한 앨범의 곡명을 보다가 내가 모르는 타이틀이 있어서 들어보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특이한 녹음이었다. 음질도 나쁘지 않고 악기 소리 외에 잡음도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믹싱을 거치지 않은 듯 밸런스가 좋지 않은 곡도 있었다. 이건 부트렉 같은 것일까.

자코의 연주도 특이했다. 솔로의 구성이 엉성하고 간혹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분도 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 편곡, 자코의 솔로 등은 클래스가 높았다. (당연하잖아) 두 곡을 이어붙인 트랙은 라이브 연주이거나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식으로 발매했던 앨범에서 들었던 자코의 완성도 높은 연주가 아니라고는 해도 무시무시한 테크닉은 분명했다. 이런 녹음은 누가 어떻게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 플렛리스 베이스의 슬러를 사용한 인토네이션은 자코의 지문처럼 그 사람만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사운드 그대로였다. 말끔한 구성은 아니고 반복되는 프레이즈를 계속 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녹음이나 공연을 앞두고 꼭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솔로인데도 어느 부분도 화성적으로 틀리거나 이상한 음이 없다. 망설이는 것처럼 들릴 때에도 음악적인 손버릇으로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음색이 대단하다.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밥 제임스 트리오

 


지난 연말에 이 앨범이 나온 후 몇 주 동안 계속 들었다. 유튜브에 있는 그의 채널에 스튜디오 라이브 레코딩 영상이 올려졌다. 여러 번 반복하여 보았다.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깔끔한 보이싱에 완벽한 편곡이다.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녹음 기술, 모든 것이 좋았다.

피아니스트의 완벽한 편곡과 연주로 꾸미는 음악이기 때문에 리듬 파트의 모든 부분도 잘 짜여진 편곡 안에서 움직인다. 트리오 편성을 기타를 포함시켜 쿼텟으로 만들고, 일렉트릭 베이스로 악기를 바꿔 놓으면 그대로 Fourplay의 음악이다. 세 악기의 인터플레이도 전부 피아니스트의 편곡에 따라서 간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우며, 통제 범위의 안쪽에서 연주한다.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음악적 통제의 느낌이 답답했었다. 일부러 라이브 음반을 듣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잘 고르고 다듬은 스튜디오 앨범이 더 좋을 때가 많아졌다.

이 앨범은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 그대로 스튜디오 라이브이다. 재즈 앨범을 감상하고 그 연주가 녹음되는 현장도 구경할 수 있으니 참 좋다고 생각했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스티브 스왈로우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의 2020년 앨범 Swallow Tales를 한 해가 지난 이 즈음에야 듣고있었다.

기타리스트의 기타 트리오 편성 음반이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이다.  아홉개의 오리지널 곡은 모두 스티브 스왈로우 작곡이다. 믿음직한 드러머 빌 스튜어트의 완벽한 리듬연주 앞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 수십년 동안 우정을 가꿔온 두 명인의 연주를 듣다보면 50여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른다. 세 사람의 연주는 튀어오르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으면서 모든 곡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오는 순간이 많은 앨범이다.

세 사람은 같은 또래의 동료들은 아니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40년생, 존 스코필드는 '51년생, 빌 스튜어트는 '66년생이다. 스티브 스왈로우는 존 스코필드의 1980년 앨범 Bar Talk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여서 일곱 장에서 베이스 연주를 했다. 빌 스튜어트는 스물 네살 때에 존 스코필드의 Meant To Be 앨범에 참여한 이후 스코필드의 앨범 열 다섯 장에서 함께 연주해왔다. 이 앨범은 스왈로우 선생님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존 스코필드가 오랜 세월 자기들끼리만 연주해보았던 스티브 스왈로우의 곡을 녹음하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앨범 전체가 차분하고 정갈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혹시 ECM에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선곡과 연주가 담백하여 ECM에서 내기로 한 것일지도.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에게는 어떤 신비로움 같은 것이 있다. 그가 아주 젊은 시절에 이미 '잘 나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그가 '70년대 중반 이후 악기를 바꿔 연주해온 것을 들으며 나이를 먹었다. 긴 세월 내내 그는 어떤 범주에 집어넣기 힘든 고유한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진 일렉트릭 베이스기타에 관한 관점이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굳이 새로 고안하여 이상한 모양의 악기를 완성하고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에도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연주를 따라해보거나 솔로를 듣고 베껴 연주해볼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어느 음반에서나 그의 연주는 특별하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매순간 스왈로우 세계의 어떤 풍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triad 사용법이라던가, 그가 기타피크를 쥐고 탄현하는 길고 짧고 세고 여린 모든 음들이 들려주는 깊이라던가 하는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아마 그의 연주를 따라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시도해볼 엄두를 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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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부산에 다녀왔다.


 길고 긴 열 네 시간이었다. 나는 두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하여 햄버거를 사먹으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내비게이션 앱이 평소와 다르게 한강을 건너 돌아가는 길을 안내했을 때에,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가끔 아이폰 앱은 불필요한 경로를 안내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내 판단이 틀린 것을 알았다.

끔찍한 도로정체를 겪었다. 내비게이션 앱은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시간을 점점 늘리고 있었고 꽉 막힌 도로는 뚫리지 않았다. 한 시간 십여분 동안 길 위에 갇혀 있었다.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말랐다. 겨우 정체구간을 벗어난 뒤에는 정신없이 차를 달렸다. 몇 년 만에 과속도 했고 차선을 위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 시간에 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기에는 무리였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빠르게 판단하여 다음 기차를 예약해줬다. 매니저님에게 급히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했다. 아내가 기차표를 예약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대로 차를 돌려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까지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급하게 예약해준 기차는 몇 군데 들르지 않는 급행이었다. 나는 앞서 출발했던 일행과 큰 차이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하루의 첫끼를 먹었다. 굶고 있다가 먹었기 때문에 맛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부산의 돼지국밥은 이제 높은 수준으로 평준화가 되어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국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부산의 따뜻한 기온과 굶다가 먹은 뜨거운 국밥의 온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다. 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대로 드러누워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악기를 걸쳐메고 괜히 선채로 서성거리다가 의상을 갈아입은 염민열과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일정을 마치고 부산역에서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으니 몸이 의자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Fourplay와 Chuck Loeb의 음악을 들었다. Mendelssohn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도 들었다. 다시 서울역에 도착하니 한 시 반. 낮과 달리 텅 비어있는 강변북로를 달리며 큰 음량으로 멘델스존의 음악을 다시 들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여러번 세수를 하고, 내일 학교에서 수업할 자료를 완성했다. 지난 주에 만들어두긴 했었으나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알람을 서너 개 설정한 다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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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밤중에 옥상 위에서.

 


부평에 있는 어느 극장의 옥상에서 연주했다. 부평 뮤직플로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음악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촬영했다. 우리는 지난 해에 이정선 형님과 그분의 노래를 다시 녹음했었다. 오늘은 그분을 가운데에 모시고 두 곡을 연주했다.

금요일 저녁에 도로 정체가 심할 것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 막혀도 너무 많이 막혔었다. 한참 동안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부평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부터 약속장소까지 가는 데에 다시 한 시간이나 걸렸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하여 겨우 부평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무대를 마련하고 촬영과 녹음을 맡은 스탭들이 어두운 옥상 위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낮부터 계속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고 들었다. 옥상 위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당연히 외투를 벗고 연주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웃옷을 벗었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벌벌 떨며 연주했다. 며칠 전 전주에서 야외공연을 했던 것보다 더 추웠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이 장면을 찍었다. 춥고 손이 시려워 고생스러웠지만 연주하며 밤하늘에 떠있는 고운 달을 계속 볼 수 있었다. 달무리 주변에 별도 빛나던데, 하늘이 맑았던 모양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어둡고 고요한 옥상 위에서 부지런히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움직이는 그림자들처럼 보였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강변북로를 따라 쾌적하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작은 사고들이 많아서 다시 도로 정체를 경험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에도 다시 두 시간 가까이 운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다시 악기를 싣고 운전하고 연주하러 다닐 수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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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전주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전주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장은 4년 전에 공연했던 야외무대였다. 건물도 풍경도 낯이 익은데 다만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 백신접종을 마쳤다는 증명을 확인받아야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악기를 한 번 살펴봐야했다. 부쩍 기온이 낮아졌기 때문에 짧은 시간 무대 위에서 연주했을 뿐인데도 악기의 튜닝이 심하게 달라져있었다.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했을 때에는 손이 차가와져서 내가 힘을 조절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근육을 다친 손가락에 통증이 너무 심했다.

관객들도 함께 추위를 견디며 야외공연장에 모여 앉아있었다. 아직은 예전처럼 일어나 호응을 하거나 마음껏 즐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판데믹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몸을 따뜻하게 하느라 가지고 온 옷을 모두 입었다. 공연 전에 도시락을 먹으러 대기실에 갔더니 아무도 없는 방에 리더님의 기타가 놓여져 있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고 다시 세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영하의 기온도 아니었는데 몸이 얼어 덜덜 떨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의 히터를 세게 틀었다. 지난 주에 울산에 다녀올 때에는 기차를 탔는데도 피로했었는데, 오늘은 야간에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더 힘이 들었다. 안경의 돗수를 다시 맞춰야할지도 모르겠다. 눈이 흐릿하여 피로감이 더 생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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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울산에 다녀왔다.


 오전에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기차역에 내려 다시 사십여분 걸려 공연장에 도착했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리허설을 했다. 오랜만의 첫 공연을 우리는 잘 하고 싶었고, 한 시간 반 동안 거의 모든 곡을 전부 연주해봤다.


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오래 쉬었지만 몸이 음악을 기억하는 기분이 들었다. 듬성듬성 앉은 관객을 보며 다시 연주를 하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다시 기차역으로. 예전엔 일상처럼 했던 공연하는 하루의 일정이 부쩍 힘들게 여겨졌다. 악기도 무겁게 느껴졌고,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로감이 심했다. 체력의 문제일까.

새벽에 서울역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걸고, 강변북로를 따라 집까지 오면서는 음악도 틀어두지 않았다. 가끔 차창을 열면 서늘한 공기가 마스크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사는 곳도 심야가 되면 주차하기가 어려워진지 오래됐다. 집에 도착했더니 지하 주차장에 좋은 자리가 한 군데 비어있었다.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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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6일 수요일

공연을 위한 합주.


거의 두 해 만에 밴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사전 연습을 했었지만 공연을 며칠 앞두고 준비하는 기분은 새로왔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악기를 튜닝하며 집에서 체크해뒀던 메모들을 다시 살폈다. 첫째날에는 여섯 줄 베이스를 가져갔다. 이 악기의 소리는 이번 공연에 적합하지 않겠지만 다른 악기들과 이 베이스의 사운드가 어떻게 섞이는지, 큰 음량으로 듣고 싶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프리앰프의 노브들을 모두 플랫하게 해두고 테스트 했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날 합주에는 펜더 다섯줄 베이스를 사용했다. 역시 이 형태의 베이스가 우리 밴드의 사운드에 잘 맞았다. 패시브 모드에서도 배음이 잘 나와줬다. 액티브 상태에서는 기본 음량이 너무 세어서 오히려 볼륨 노브를 줄여야 했다. 이 달의 공연들은 이 악기와 원래의 재즈베이스로 해볼 생각이다. 울산과 전주와 부산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고 그 사이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팀의 일정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의 일상인지, 모든 약속들이 귀하다.


합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애플워치에 표시된 알림을 보았다. 워낙 큰 음량으로 연주하다보니 소음 레벨이 109까지 올라갔었다. 아이폰에는 '일시적인 청각장애가 있을 수 있다' 라고 설명이 나왔다. 하루 종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던 나는 이미 이십대에 귀의 성능을 일부 잃었을 것이다. 섬세한 음악을 틀어놓으면 내가 듣지 못하는 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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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 목요일

기타 트리오


 

지난 해에 세 장의 앨범을 냈기 때문에 금세 또 새로운 녹음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부지런한 파스콸리 그라쏘의 새 앨범은 듀크 엘링턴의 곡들을 연주한 것이었다.

이번 앨범도 물론 정말 좋다. 그는 이제 내 마음 속에서 믿고 듣는 기타리스트로 되어 있다. 기타 트리오를 기본편성으로 구성한 것도 좋았다. 트랙 사이에 기타 솔로로 연주한 곡도 있고 기타와 베이스 듀엣으로 연주한 곡도 있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1957년에 바니 케슬이 레이 브라운, 셜리 만과 함께 녹음했던 Poll Winners 앨범을 떠올렸다. 짐 홀, 조 패스, 탈 팔로우도 생각이 났고 오래 전 평일 저녁에 야누스에서 지혁이 형이나 방병조 형님이 연주하는 것을 혼자 구경했던 것도 기억 났다. 왼쪽에 베이스, 오른쪽에 드럼이 나오도록 스테레오 패닝을 해둔 것도 좋았다. 이제는 흘러간 옛날의 유산처럼 여겨졌던 담백하고 활력이 넘치는 스탠다드 기타 트리오 사운드를 새것으로 들을 수 있다니, 듣는 내내 고마왔다.

파스콸리 그라쏘의 연주에는 결점이 없는 것 같다. 음색과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곡을 해석하는 것과 연주로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어두운 면이 없거나 암울한 장면도 밝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계속 기분이 좋아져서 56분의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올해 초에 Samara Joy 라는 스물 한 살의 가수가 앨범을 냈었는데, 그 음반의 세션을 파스콸리 그라쏘가 맡았었다. 베이스는 파스콸리 트리오의 Ari Roland 였고, 드러머는 무려 케니 워싱턴이었다. 젊은 보컬리스트의 노래도 좋았지만 뒤에 흐르는 파스콸리의 기타가 좋아서 즐겨 들었었다.

사마라 조이는 "Pasquale Plays Duke" 앨범의 네번째 트랙에서 'Solitude' 를 불렀다.

그런데 이 앨범의 일곱번째 곡을 노래한 가수는 Sheila Jordan 이다. 이분은 1928년생이니까, 아흔 세 살이시다. 재즈의 역사와 함께 늙으신 분이나 다를 바 없다. 베이스와 보컬 스캣 듀엣을 처음 시도했던 가수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사마라 조이와는 거의 한 세기 정도 나이차이가 나는 셈이다. 파스콸리 본인도 음반으로 접했을 역사 속의 재즈 거장들과 함께 노래했던 이 보컬리스트가 이 앨범에서 불러준 곡은 'Mood Indigo' 이다. 이제까지 들어보았던 Mood Indigo 중 최고라고 하기에는 두렵지만, 정말 아름다왔다. 민망하지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그가 끝 부분에 가성으로 처리한 높은 Bb 음이 귀에 들어와 콕 박혔다. 노래 두 곡과 열 곡의 기타 연주. 내 취향으로는 최근에 나온 스탠다드 재즈 앨범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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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블로그에 썼던 글에서는 기타리스트의 이름을 파스쿠알레라고 표기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더니 '파스콸리(아)' 정도가 가장 흡사한 표기 같았다.

2021년 9월 1일 수요일

합주.

 


거의 이태 만에 밴드 멤버들이 모여 합주를 했다. 약속이 정해진 후 나는 긴 목록의 셋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매일 다시 연습을 해보았다. 그동안 수백번 연주했던 곡들이었을텐데 전부 새롭게 느껴졌다. 휴업상태와 같았던 밴드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서는 고마왔다. 마지막 공연과 합주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여겨졌다. 오랜만에 하는 합주를 나는 잘 하고 싶었다.

연주를 하지 못하며 지냈던 동안 내 연주에 나빠진 것이 있었다. 작년부터 허리통증으로 한참을 고생했고, 최근에는 왼손 검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겨서 한동안 악기를 잡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합주를 위해 혼자 연습하며 내가 박자와 비트감을 잃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모든 곡을 녹음하여 들어보았다. 두어 번 그 일을 반복하며 어느 부분에서 내가 부정확하게 손가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왼쪽 검지손가락의 통증은 엄지손가락의 위치를 적절히 바꿔주는 것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합주약속은 밤시간이었는데, 나는 일찍 가서 미리 연습을 더 하고 싶었다. 약속 한 시간 전에 내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낯익은 자동차 세 대가 내 앞에 이미 주차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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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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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화요일

John Pizzarelli, Better Days Ahead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Better Days Ahead를 듣고 있다. 제목을 보고, 아직 부제로 붙어있는 내용을 읽기 전에 나는 이미 이 음반이 팻 메스니의 곡을 연주한 앨범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밤에 잠을 청하며 무선 이어폰으로 듣고 있을 때에는 리버브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따위의 불평을 하며 듣다가 잠이 들었었다. 오늘 깨어나 커피를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스피커 앞에 앉아 다시 들으면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치과수술을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도로 위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지금 굳이 블로그에 써두고 있는 중이다.

작년 4월에, 아흔살이 넘었던 그의 부친 버키 피자렐리가 그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 지독한 전염병 기간 중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다. 유명한 사람들도 판데믹 기간 동안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부친은 오래 활동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고, 아흔이 넘도록 연주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음악가였다.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표지는 기타를 안고있는 그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나는 그 앨범 자켓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의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고 혼자 상상해봤다.

솔로기타로 연주했고 모두 열 세곡이 담겨있는 이번 팻 메스니 특집(?) 앨범은 훌륭하다. 그냥 훌륭한 뮤지션의 음악을 커버한 수준이 아니라, 팻 메스니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던 것이 분명한 이 기타리스트의 예술적인 해석이 잘 담겨있다. 그는 이 앨범에서 대부분 팻 메스니 그룹으로 발표됐던 곡들을 연주했는데 그룹 편성으로 이루어진 원곡의 섬세한 부분들을 빼먹지 않으면서도 한 개의 기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재미를 고루 담았다. 예를 들어 Last Train Home, April Wind/Phase Dance와 같은 곡에서는 베이스 라인과 특정한 화음들이 아주 잘 살아있는데, 그것은 피자렐리가 그의 7현 기타를 멋지게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저음 한 줄을 추가하여 일곱줄로 되어있는 기타를 사용한 것은 그의 부친 Bucky Pizzarelli가 먼저였다. 버키 피자렐리는 같은 고향인 뉴저지 출신 선배 기타리스트 George Van Eps로부 7현 기타를 배우고 계승했다.

과거의 Pat Metheny Group 편성이 아닌 곡으로는 앨범 Secret Story에 실렸던 Antonia와 작년에 발매된 팻 메스니 앨범의 타이틀 곡인 From This Place가 수록되었다. 좋은 작곡에 훌륭한 원곡, 그리고 아름다운 재편곡과 해석으로 아주 듣기 좋았다.

존 피자렐리는 수십년 동안 다른 거장들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해왔다. 냇 킹 콜,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의 음악을 연주한 앨범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음반들을 그다지 꾸준히 듣고있지 않았다. 나의 취향 탓이겠지만, 어쩐지 팻 메스니 특집인 이번 앨범은 유난히 밀도가 높고 좋아서, 아마도 앞으로 계속 듣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아이폰에 저장해뒀다. 애플뮤직에서 무손실 음원으로 지원하고 있으니까 유선 헤드폰이나 오디오 장치로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음반 덕분에 이어서 Pat Metheny Group의 Still Life (Talking) 앨범을 듣고 있다. 애플뮤직에 팻 메스니 그룹 시절의 부트렉들이 계속 업로드 되고 있는데, 예전과 달리 그런 것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잘 만들어 놓았던 본래의 앨범들이 완성품처럼 느껴지고, 그 사운드를 좋은 음질로 다시 듣거나, 좋은 연주자가 잘 해석해놓은 새 앨범을 듣고 있는 것이 지금은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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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0일 토요일

Dave Grusin

 


내가 스무 살, 이십대 초반에 들었던 음악 중에는 그 무렵 인기 있었던 GRP 레이블의 음악이 많았다. 당시 새로운 기술이었던 디지털 레코딩, 디지털 믹싱, 디지털 마스터링으로 제작했다고 하여 시디에 DDD 마크를 표시해두기도 했던 레이블이었다. 나는 나보다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던 친구집에 찾아가 음악을 듣기도 하고 LP나 시디를 빌려오기도 했었다. 그 중에 데이브 그루신의 1977년 앨범 One Of A Kind 도 있었다. 데이브 그루신은 그 이듬해인 1978년에 Larry Rosen 과 함께 GRP Records 를 시작했다. 나는 이 앨범을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LP로 빌려와서 카세트 테잎에 담아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으며 다녔었다. 그 음반은 1984년에 GRP 에서 다시 발매했던 리이슈였다. 

그 즈음 어디에선가 우연히 만났던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면서, '가요'는 안 듣는다고 했었다. 보사노바 얘기를 하고 스팅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데이브 그루신의 Modaji 를 들려줬었다. 음악이 시작된 후 1분 쯤 지났을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노래는 언제 나와?' 라고.

그 다음에 한 번 더 만났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서로 별로 호감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는 나에게 '가요를 싫어하며 데이브 그루신 음악에 노래가 없어서 실망했던' 사람으로 남았다.

빌려왔던 LP를 카세트 테잎에 옮겨 담은 다음 친구에게 음반을 돌려줬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 앨범을 들었으면서도 앨범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을 알지 못했었다. 알려고 했다면 찾아볼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귀찮았던 모양이다. 이십년 전에 나온 데이브 그루신의 베스트 앨범을 듣다가 생각이 나서 '노래가 나오지 않는' Modaji 의 베이스 연주자를 검색해봤다. 프란시스코 센테노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오래 전 대학로 카페에서 틀어주던 뮤직 비디오에서 봤던 연주자였다. 유튜브 링크를 찾아보니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연주하며 노래도 하던 그분이었다.

앨범 One Of A Kind 에 수록되어 있던 다른 곡 중 Playera 의 베이스는 론 카터였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드럼은 스티브 갯. 나는 그 베이스 소리가 론 카터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 곡을 들으며 그 베이스 사운드는 분명 일렉트릭 플렛리스 베이스일 것이라고 상상했었다. 그 앨범의 베이스 연주자는 프란시스코 센테노와 론 카터 두 사람이 맡고 있었다. 드럼은 모두 스티브 갯, 색소폰은 그로버 워싱턴 쥬니어였다. 

그러고보니 나는 데이브 그루신의 GRP 음반인 조지 거쉬윈 커넥션이라는 앨범도 가지고 있었는데, 시디와 함께 들어있던 두꺼운 책자와 종이로 되어있는 겉표지만 있고 플라스틱 케이스와 시디는 보이지 않고있다. 봄이 되면 방안의 물건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꼭 한번 정리를 해야겠다.


2021년 3월 19일 금요일

Chrlie Parker Jam Session


 나는 이 음반을 26년 전에 샀다. 아무 정보 없이 음반가게에서 시디를 고르다가 겨우 네 곡이 들어있는 이 앨범을 보자마자 얼른 구입했다. 겉면에 어마어마한 연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녹음 시리즈에 대해 읽고, 나머지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 후에는 그것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생각이 나서 시디를 꺼내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디가 훼손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시디의 뒷면에 흠집이 크게 났는데 첫번째 트랙에서 계속 튀는 잡음이 들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 음반은 그동안 컴퓨터에 옮겨 담아둔 적이 없었다. 아마 시디에 상처가 난 것이 먼저였고, iTunes 가 등장한 것이 그 이후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혹시 음악파일로 변환을 하면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나머지 곡이라도 음원파일로 바꾸어 컴퓨터에 넣고, 애플뮤직에 이 음반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없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계속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만 검색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Norman Granz 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애플뮤직에 이 녹음의 전체 시리즈가 쨘, 하고 나타났다. 급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선명한 모노 사운드가 멋지게 들리고 있었다.

이 녹음은 한반도가 전쟁으로 망가지고 있던 1952년 7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만 그란쯔는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연주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이 연주자들을 동시에 모아놓고 녹음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레코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재즈의 전설들이고, 그 무렵에도 이미 각 악기의 최고들이었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스스로도 꽤 자랑스러웠던지 노만 그란쯔가 쓴 음반해설을 보면 신이 나있다. 애플뮤직에 음원들이 모두 있는 덕분에 며칠은 이 시리즈들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앨범 표지 그림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디보다 조금 못난 것을 빼면, 곡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을 모두 잘 적어놓은 점도 좋았고, 내 시디보다 음질도 좋았다.

애플뮤직에서 찾은 같은 앨범.

그래서 플라스틱 상품인 내 오디오시디는 기념품처럼 벽 한 구석에 다시 놓여지고, 69년 전의 기념할만한 녹음을 방금 다운로드한 음원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분좋게 듣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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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 시리즈들을 모두 듣고 보니 네 장의 디스크마다 블루스가 있고, 모든 연주자가 한 곡씩 골라 솔로를 진행하는 긴 발라드 메들리도 두 트랙이나 더 있었다. 누군가 도중에 엎질렀는지 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여유롭게 연주하고는 있지만 무서운 실력자들끼리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템포가 빠른 곡에서 각자 네 마디씩 순서대로 주고받는 솔로는 매우 즐겁다. 어느날 오후 내내 옛 재즈를 쉬지 않고 듣고 싶다면 추천할만하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

iPod Classic.

 


1월 중순에 아이팟 클래식을 다시 사용해보려고 했다가 컴퓨터에 있는 음악들을 제대로 채워넣지 못했었다. ( 아이팟 얘기 )

오래 사용하고 있는 내 아이폰의 전지가 점점 쉽게 방전되고 있기도 했고, 음악을 들을 때에는 방해받지 않으며 음악만 듣기 위해 이 구형 아이팟을 다시 쓰고싶었다. 지난번 실패 이후 곰곰 생각하다가 내가 애플뮤직을 사용한 이후 컴퓨터에 담아뒀던 음악파일들이 iOS 기기들과 동기화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애플은 맥오에스에서 iTunes를 없애고 Music 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악을 관리하도록 해놓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음악들은 모두 어딘가에 있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르는) 애플의 서버에 올려져 있었고, 그것을 다시 모두 다운로드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

문제는 파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맥의 내장 하드디스크에 보관했던 음악파일들은 백업 하드에 따로 옮겨둔 다음 모두 지웠다. 그리고 Music 앱에서 내 파일들을 전부 다운로드 하기 시작... 꼬박 이틀동안 파일들의 대부분을 다시 내려받았다. 다시 아이팟 클래식을 연결하여 동기화를 했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음악파일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재즈만 옮겼을 뿐인데 가득 차버렸다.

SSD 시대에 하드디스크로 수 많은 작은 파일들을 전부 내려받고, 그것을 다시 오래된 소형 하드디스크로 옮겨 담아야 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납득할만 했다. 그런데 맥 오에스와 옛 iTunes 를 계승한 Music 앱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우선 모든 동작이 느리고, 뭔가 불합리했다. 같은 앨범의 다른 버젼을 애플뮤직에서 구독했을 때에 내 파일을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수 많은 에러가 속출하고 음악의 정보는 뒤섞였다. 애플뮤직에서 구독하고 있는 음원들은 어차피 아이팟 클래식에서 재생할 수 없다고 해도 원래의 내 파일들은 올바르게 보관되었어야 했다. 그 음원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CD들에서 모두 리핑해뒀던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니긴 하지만 나름 긴 세월 동안 완벽하게 정리해뒀던 것들이는데, 쟝르의 명칭도 멋대로 바뀌어버렸고 어떤 파일들은 정보가 누락되어 트랙 넘버가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또, 컴퓨터에 새로 넣어둔 음원들은 제때에 클라우드로 업로드되지도 않았다. 나는 백업해뒀던 내 파일들을 다시 가져와 '보관함에 추가'하는 작업을 일일이 수동으로 하여 바로잡아야했다. 역시 걸핏하면 에러, 속도는 물론 느리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준다고 해도 매달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인데, 이것은 너무 바보같은 체계이거나 아니면 그들 중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애플은 지난 이십 년 동안 너무 규모가 커져버린 것 아닐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잘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애플을 흉보며 동기화를 마친 아이팟을 손에 들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불만들을 금세 잊어버렸다. 12년이나 지난 옛 기계는 새것처럼 잘 작동했다. 여전히 아이폰보다 음질이 더 좋았다.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그래, 애플이 옛날에는 언제 뭐 멀쩡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고.





2021년 1월 16일 토요일

아이팟


서랍을 정리하다가 옛 모델 아이팟을 꺼내어 충전을 했다. 불과 6년 전까지도 매일 들고 다니며 사용했던 기계였는데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새 맥오에스에서 이제는 제대로 동기화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애플뮤직을 사용하고 있고, 아마도 그 이유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보관함을 바르게 싱크로나이징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제조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구형 기계가 되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멀쩡히 작동하는 기계를 사용할 수도 없게 해놓았다니.

내 아이폰은 벌써 4년이나 되어서, 이제 슬슬 배터리가 빠르게 닳아 없어지고 있다. 배터리를 교환하면 더 쓸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고싶지는 않고, 자동차 안에 두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드디스크 아이팟에 음악을 새로 담아두고 싶었다. 결국 동기화가 되지 않는 기계를 다시 서랍에 넣어두고, 해결방법은 나중에 찾아보거나 하기로 했다.

가끔 선잠이 들었을 때에 나는 어릴적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수십 년 전에, 나는 어두운 방에서 손끝으로 더듬어 오디오의 시디 트레이를 열고, 음악 시디 한 장을 용케 집어넣어 작은 음량으로 틀어둔채 잠들고는 했다. 지금 내 자동차에는 시디 플레이어가 있긴 하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시디라는 것을 트레이에 넣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작은 전화기 한 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어딘가 서운하기도 하다. 케이블을 모두 분리하여 방 한 쪽에 가구처럼 놓아둔 오디오를 다시 연결해볼까 생각하다가, 지금은 필요없이 분주한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가구도 다시 배치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못하겠다. 봄이 오고 몸이 조금 더 나아지면 하기로 한다.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Deep Purple, Whoosh!


오래 전에 하드록 음악이 팝 음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빌보드라던가 라디오의 순위 차트에 하드록 밴드들의 이름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이제 흘러가버렸다.

나는 그 시대에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록커들의 이름과 음악들은 레코드의 포장을 뜯던 소리, 새 카세트 테이프에서 나는 플라스틱 냄새와 함께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올해에 옛 하드록 뮤지션들이 발매한 음반들 중, 나는 여름에 나온 Deep Purple의 앨범 Whoosh!가 좋았다. 이미 오월에 나는 그분들이 새 앨범에 실릴 곡을 합주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었다. 그 영상에는 이언 길런의 보컬은 없었기 때문에 아직 어떤 노래가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란해지고 있던 학교의 일정과 함께, 밴드의 공연 마저도 하나 둘 취소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점점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1954년생인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를 제외하고 모두 일흔이 넘은 멤버들의 합주 영상을 몇 번씩 다시 보면서 나는 합주실과 공연장의 무대를 그리워했었나 보다.

딥 퍼플의 새 앨범 Whoosh!를 틀어놓고 느꼈던 기분은 반갑다는 것이었다. 그 밴드의 옛날 느낌이 그 음악에 담겨 있었다. 좋은 음반을 많이 만든 캐나다인 프로듀서가 영국인 노인 음악인들을 미국의 내쉬빌로 불러 녹음했다.* 스티브 모스와 돈 에이리의 사운드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정겨웠다. 50여년 동안 활동해온 베테랑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즐기며 만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비닐 포장을 뜯거나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뒤집어 재생하는 일은 없지만, 이 앨범은 나의 어릴 적, 하드록이 팝이었던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줬다.

첫 곡 Throw My Bones는 '이언 길런이 보컬인 딥 퍼플 노래'의 전형 같았다. 네 번째 곡 Nothing At All은 재미있었다. 스티브 모스는 정말 다양한 것을 잘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곡 No Need to Shout의 인트로는 오르간 사운드였는데, 그것을 듣는 누구라도 고인이 된 존 로드를 추억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프로그레시브 느낌이 섞인 열 번째 곡 Remission Possible도 좋았다. 그리고 열두 번째 곡이 시작될 때에, 나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갑고 즐거웠다. And The Address 라는 연주곡인데, 이 음악은 딥 퍼플의 1968년 데뷔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곡이었다. 이 연주곡은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아직 딥 퍼플이 완전히 꾸려지기 전에 만들었던 곡이었고, 밴드가 구성된 뒤 가장 처음 완성된 곡이었다. 52년만에 다시 녹음된 새 버젼에서, 원곡을 연주했던 멤버는 이제 이언 페이스 한 분 밖에 없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딥 퍼플의 앨범 Fireball, Machine Head와 Stormbringer를 카세트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다. In Rock, Burn, 그리고 라이브 앨범과 표지가 조악했던 이상한 부트렉은 LP로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들을 내가 어디에서 구입했었는지를 기억한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왔던 음악들이었지만 이미 그 당시 딥 퍼플은 해체한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마치 아주 오래 전 밴드의 음악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84년에 그들이 (잠시) 다시 모여 Perfect Strangers 를 발표했을 때에 나는 꽤 기뻐했었다.

2020년에 딥 퍼플이 선물해준 앨범 Whoosh! 는 내 취향으로는 매우 좋았다. 삼 년 전에 그들이 같은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던 InFinite 앨범 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여전히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일부러 옛날 하드록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할 때가 있다. 분명히 다른 음악들 보다 소란스런 사운드일텐데, 그것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을 쓴 김에 오늘은 이 앨범을 틀어두고 누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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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 Morse는 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