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9일 목요일

안경.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을 탓하는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몇해 전에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는데, 스크린의 해상도가 너무 낮다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화질이라고 생각하여 극장에서 나온 후에도 투덜거렸었다. 어떻게 저런 후진 시설을 해놓고 표값을 받는 것이나며 죄없는 극장을 탓했다. 내가 그동안 컴퓨터 모니터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이 거칠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것이 갑자기 나빠진 내 시력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워낙 시력이 좋았던 나는 한번도 눈이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금 오래 운전을 하고나면 몸이 지치기도 했고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얼굴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인상을 쓰며 읽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야 내 시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해에 처음으로 안경을 샀다.

안경점 사장님은 완성된 안경을 나에게 건네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노안이 생긴 것일 뿐 여전히 시력이 좋은 편이니 항상 안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안경을 사용한 후 다시 긴 시간 운전을 하여도 피로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엔 인상을 덜 쓰며 활자를 읽기 위해 돋보기 안경을 한 개 더 샀다. 역사상 초기의 안경 렌즈란 노안을 교정하기 위했던 것이었다. 나는 이제서야 본연의 기능을 위한 물건을 가지게 된 셈이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후 비로소 눈이 나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함께 길을 걷다가 뻔히 보이는 간판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던 아내의 심정을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직 일정한 거리에 있는 것들은 여전히 선명하게 잘 보이기 때문에, 늘 안경을 썼다가 벗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귀찮고 어색하다. 하지만 인상을 쓰며 눈을 가늘게 뜨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고, 극장의 스크린을 다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좋다.

한편, 내 눈이 나빠진 것을 모르고 극장의 시설을 탓했던 것이 혼자 미안하여 그 후에도 영화를 볼 일이 있으면 나는 계속 같은 극장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

2019년 8월 25일 일요일

제주에 다녀왔다.


편안하고 순조로왔던 제주도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예정, 약속, 준비들이 잘 이루어졌고 초대해준 분들이 마련해준 숙소도 편안했다.
토요일 아침 기타를 하드케이스에 담다가 그만 허리에 큰 충격을 느끼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던 일만 제외하면 모든게 좋을뻔 했다.

그동안 작은 통증들이 모여있다가 터져버린 것 같았다.
공항까지 운전하는 동안 통증이 계속 느껴지다가 비행기를 타면서 극심해졌다. 제주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아무데나 드러누워 쉬고싶을 지경이었다.


리허설을 마친 후에 가까운 곳에 정해준 숙소에서 쉴 수 있었던 덕분에 공연 직전에 어느 정도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통증이 아니었다면 더 집중하고 즐기면서 연주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모두 열두 곡을 연주했다.  습기가 가득한 바닷바람 덕분에 새로 감아둔 기타줄의 표면이 거칠어졌다. 가까운 곳에 모여앉은 청중들의 소리, 한 곡을 연주할때마다 한번씩 하늘 위를 지나가던 비행기 소리들이 기억에 남았다.



.

2019년 8월 22일 목요일

기타


주말에 제주도에서 통기타를 연주해야하는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한달 남짓 어쿠스틱 기타를 열심히 쳤다. 처음에는 낯설더니 조금씩 감각이 되돌아왔고, 이제 다시 익숙해졌다.
어릴적에 기타를 치고싶어서 몰래 연습했던 기억도 나고, 그 시절 하루종일 이어폰으로 듣고 다니던 음악들도 생각났다. 다만 악기의 큰 음량을 틀어막을 수 없어서 밤이 되면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심야에 통기타를 치면 이웃들의 수면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엔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도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는 남의 집에 피해를 줄 것을 지레 걱정하여 심야의 악기연습을 삼간다.

열흘 전 제천에 다녀온 이후 통기타에 새줄을 감고 자주 연습했다. 그동안은 베이스를 손에 쥐어보지 않았다. 덕분에 오른손의 손톱이 기타를 연주하기 알맞은 정도로 자랐다.
내일 약식으로 합주를 한 번 하고 그 다음날은 공연.


.

2019년 8월 20일 화요일

슬픔.


운전을 하다가 전화를 받고, 십여년간 함께 일하고있는 분이 갑자기 부친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하려던 일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한 인적드문 길 옆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텅빈 방 안에 마주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하는지 나는 잘 알고있다. 그것은 서운함, 슬픔 따위의 단어로는 그 뜻을 전달하기에 부족하다.

돌아오는 길엔 한번도 쉬지 않고 운전했다. 검은 하늘빛이 바래지더니 요금소를 지날 무렵 갑자기 아침이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의 인생은 알지 못하지만 조금전 만나고 온 분이 느끼고 있을 황망한 심정은 잘 알 것 같았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음악을 틀었다가 상을 입은 분이 생각나서, 그만 꺼두고 달려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