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2024년에 듣고 있던 음악들.


 올 1월은 로리 갤러거, 다이어 스트레이츠와 스모키를 들으며 시작했다. 중학생 무렵 카세트테이프로 듣고 있던 음악들을 다시 들으며 즐거워 했다. 일월 넷째 주에 한국에서 '애플뮤직 클래시컬'이 시작했다. 그 덕분에 올해엔 어느 때보다 클래시컬 음악을 많이 들었다.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피아노는 일년 내내 듣고 있었다.

그리고 조 헨더슨의 1991년 앨범 The Standard Joe가 리마스터 되어 나왔다. 나는 군복무를 마친 뒤에 이 시디를 누군가에게 빌려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들었었다. 그 후로 처음 들어보았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조 헨더슨의 음반들을 몇 장 연거푸 듣고 있었다.


2월엔 빌 에반스를 한참 들었다.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중계를 보고 답답해지면 얼른 어두운 곳에 앉아서 이어폰으로 빌 에반스의 음반을 들었다. 그리고 파가니니 현악 4중주, 기타 2중주와 피아노 음악들을 들었다. 엘렌 그리모의 모차르트와 라흐마니노프, 쇼팽 연주, 가브리엘 포레, 올가 셰프스의 쇼팽 연주를 듣고 있었다.

2월 마지막 주엔 쿼텟 허드슨의 음반을 들었다. 이 앨범엔 밥 딜런, 조니 미첼,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과 잭 드죠넷, 존 스코필드의 곡 몇 개가 담겨 있다.

3월엔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앨범들을 연이어 들었다. 그동안 굳이 꺼내어 듣지 않고 있었던 키스 자렛의 클래식 연주 앨범도 들었다. 손열음과 Svetlin Roussev,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를 들었다. 피아노 음악을 듣다가 오스카 피터슨의 앨범도 두어 장 들었다. 그 사이에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를 나누어 들었다. Baden Powell, Ambrose Akinmusire, Julian Lage도 듣고 있었다. 
집에서 또 쓰러져 허리를 부여잡고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니면서부터는 빌 에반스와 짐 홀의 Undercurrent 앨범도 집중하여 들었다. 그 음색과 질감이 진통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다.

4월에도 클래식 피아노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여수와 울산에 다녀올 때엔 운전하며 짐 홀, 카라얀의 벨를린 필, 파가니니 쿼텟, 옐로우재킷, 바니 케슬을 들었다. 찰스 로이드, 그랜트 그린, 존 콜트레인 쿼텟, 제리 멀리건의 앨범도 들었다.
한의원에서 한 번 침을 맞을 땐 물리치료, 부항 등을 함께 하기 때문에 거의 오십여분이 지난다. 이달에도 계속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침상 위에 엎드려 있어보려고 시도했다가 그만 뒀었다. 한의원에서 틀어두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몸에 찔러 둔 수십개의 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5월에 웨스 몽고메리가 목록 맨 위에 있는 이유는 애플뮤직에 있는 두 시간 십육분 짜리 앨범을 들었기 때문이다. 웨스 몽고메리는 정말 몸을 혹사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녹음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어느 것을 골라도 좋다, 라고는 해주기 어렵다. 물론 그가 연주한 것 중 제일 나쁜 것이라도 웬만한 연주자의 베스트 정도는 되겠지만, 두 시간 넘는 이 앨범은 딱 한 번만 듣고 말았다. 나머지는 아마 앨범 Full house를 재생한 시간일 것 같다.
이달엔 마이클 솅커 그룹, 스콜피언스와 주다스 프리스트도 들었다. 쿨 앤 더 갱, 드 바지도 들었었다. 맨날 옛 음악만 다시 듣고 있었던 봄이었다.


6월엔 13년 동안 타던 차를 폐차하고 갑자기 새차를 구입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대구, 군산, 인천에 다녀오는 길엔 그냥 배경음악처럼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새차의 스피커가 너무 품질이 나빠서 장거리 운전을 하며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냥 도로의 소음 속에 가끔씩 음악소리가 섞여 들리게 하는 데엔 피아노 음악이 알맞았다. 새차를 타고 지방공연을 하고 돌아와 제일 먼저 자동차 스피커를 교체했다. 포칼 스피커로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7월에 팻 메스니의 새앨범 MoonDial이 전부 공개됐다. 지난 해에 나왔던 Dream Box 의 연작이긴 하지만 그 느낌이 다르다.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이 앨범을 자주 들었다. 그 외엔 케빈 유뱅크스, 바비 브룸, 퀸, 조지 벤슨, 바니 케슬을 듣고 있었다. 
여러 번 재생하진 않았지만 이달에 나왔던 인상적인 앨범은 Slash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Orgy of the Damned였다. 블루스 앨범이고, 그의 기타 톤은 정말 멋졌다. 앨범 제목은 좀 민망했는데, 나처럼 취향이 저질인 사람이나 지레 민망해 하는 건가 보다, 했다. 그리고 애플 뮤직에서 앨범 그래픽을 굳이 움직여주는 기능이 이 앨범에서는 꽤 효과적이었다.

8월. 대전, 양산, 아산, 광주 등을 다니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심야에 집에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위 목록의 것들을 많이 들었지만, 그 외엔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로 시작하여 역순으로 앨범을 한 장씩 듣고, 데이빗 커버데일 시절 딥 퍼플을 듣다가 메탈리카로 이어지곤 했다.
빌 에반스와 에디 고메즈의 듀오 앨범 Intuition은 1974년 녹음이라는데,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빌 에반스가 연주하는 Fender Rhodes 소리가 듣기 좋았다. 스티브 스왈로우의 Falling Grace가 여기에 있었다.
또 조 헨더슨의 Big Band, 옐로우 재킷의 Parallel Motion, Jackets XL도 들었다. 


9월엔 아버지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수술 전 검사를 위해 병원에 몇 번 갔다가, 수술 두 주 후엔 다시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고 왔다. 대전, 경주, 광명에 공연하러 다니면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있던 적이 많았다. 멍한 상태로 있거나, 틈이 나면 짧은 시간 잠을 잤다. 이달엔 위 목록에 있는 것들이 들었던 음악 전부였을 것이다.


10월은 아주 바쁘게 지냈다. 구미에 갔다가 다음날 서울 올림픽 공원에, 바로 그 다음날엔 칠곡에 가서 연주했다. 클래식 음악은 이제 다시 미뤄두고 알 디 메올라의 새앨범, 찰리 헤이든, 키스 자렛, 제프로버 퓨젼, 폴 데스몬드, 예스, 길 샤함, 브랜포드 마살리스, 스틸리 댄, Fourplay를 들었다. 조 샘플의 Sample This 앨범도 들었다. 이 음악들은 소니 워크맨에 담겨 있기 때문에 데이터를 걱정하지 않고 자주 들었다. 에릭 클랩튼의 새앨범도 들었었다. 주말마다 공연을 하러 다니는 중에 주중엔 부모를 차에 태우고 여주에 다녀오거나 병원에 다녀왔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나면 허리가 많이 아파서, 찜질기를 등허리에 대고 음악을 들으며 누워 있었다.


1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예기치 않았던 일이었다. 영암에 다녀와서 완전히 지쳐 누워있다가 며칠 후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을 때에 노인이 어딘가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갑자기 위독해졌고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달에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없는데, 애플뮤직에서 정리해준 것을 보면 위의 것들을 저렇게 듣고 있었다고 했다. 일기장에 써둔 것 중엔 데이브 그루신, 덱스터 고든 같은 음악들도 있었다. 무엇에 기대고 싶은 마음에 음악을 마냥 틀어두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12월. 빌어먹을 자들이 내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고 온 다음날 밤 일이었다. 그 뒤로 한 달 내내 음악을 들은 것이 없다. 뉴스만 보았다. 거제도와 포항에 다녀올 때에도 유튜브로 뉴스와 시사방송만 보았다. 이틀 전엔 비행기 사고로 참사가 일어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분노, 상실감, 슬픔이 밤낮 없이 안개처럼 산과 강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2024년 12월 28일 토요일

송년 공연

올해의 끝 공연을 하기 위해 서둘러 공연장에 갔다. 어제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더니 뭔가 개운해진 기분이어서 오늘은 기운 넘치게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허설을 하고 차에 가서 드러누워 쉬려고 했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연주 도중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길까봐 입술이 마르고 있어도 참았다. 시트를 따뜻하게 하고 눈이라도 감고 쉬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사이 벌어진 소식이 궁금하여 뉴스를 검색했다. 권한대행을 하던 자를 국회에서 조금 전 탄핵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발언과 검찰에서 나온 공소 요지도 빠르게 읽었다. 리허설 전에 비현실적으로 달러 대비 원화환율이 치솟고 있었는데, 총리 탄핵에 이어 민주당 대표의 담화문이 나온 후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주를 시작했는데 리허설 때 맞춰 놓았던 소리가 그대로 들리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던 상현 씨에게 신호를 보냈는데, 그것을 잘 못 알아들은 그는 황급히 무대에 올라오더니 내 수신기만 다른 것으로 바꿔주고 번개처럼 내려가버렸다. 아, 이런...

이런 일로 스탭들을 연거푸 고생시키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인이어의 음량을 올리고 잘 들리지 않는 소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연주했다. 몇 곡 지나가면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두 시간 반 공연을 다 마칠 때까지 적응해내진 못 했다. 뭐,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거다. 거기에 더하여, 한 곡에서는 아주 대차게 코드 한 개를 잘 못 눌러버렸다. 송년 음악회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맙소사.

올해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예정보다 시간을 초과하여 너무 늦게 끝이 났다. 커피를 살 곳이 있는지 살피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도로엔 차들이 많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는데, 물론 주차할 자리 같은 건 없었다. 또 먼 곳 길가에 차를 세우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다음 주 새해 첫 공연은 제주도에서 하기로 되어있다. 예정된 공연이 곧 다가오기도 하고, 하루가 마치 일주일처럼 흐르고 있는 시절이어서 연말인지 연시인지 느낄 틈이 없다.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영등포 공연

매일 뉴스를 보고 국회상임위원회 중계를 챙겨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에 쏟아지는 뉴스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지난 달에 상을 치르고 이달엔 어처구니 없는 시국을 겪다 보니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을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연습하며 통증을 줄이기 위해 스트레칭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영등포 공연장에 도착하여 한 시간 동안 혼자 사운드 체크를 하고 연습을 했다. 새 베이스의 톤이 낯설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멤버들이 모여 리허설을 한 시간 더 하고 이어서 두 시간 짜리 공연을 잘 마쳤다.

규모가 작은 극장이었지만 객석에 사람들이 가득 있었다. 지역 문화재단에서 주최하여 표값이 안 비쌌던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번엔 내 인이어를 잊지 않고 잘 챙겨 갔다. 좋은 음질로 소리를 들으며 불편하지 않게 연주할 수 있었다. 새 악기는 연주하기 편하고 조금 가벼워서 허리에 부담이 덜 했다. 하지만 결국 리허설부터 공연까지 네 시간 동안 악기를 메고 서 있었더니 공연을 마칠 즈음에는 다시 통증이 심했었다. 나는 공연이 끝난 뒤 극장 직원들이 객석을 마저 정리하기도 전에 악기를 챙겨 메고 주차장으로 갔다. 자동차 시트에 잠시 몸을 눕히고 쉬어야 했다.

토요일마다 일을 하느라 거리의 집회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하였다. 사실 일이 없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체력으로는 아스팔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공연을 하고 있던 그 시각에 광화문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극장 안을 메워준 청중들이 있어서 공연을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맞지만, 마음은 광화문 앞에 모여 있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오늘은 그날 밤부터 만 이틀 동안 남태령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찾아 보고 읽고 있었다. 삼십여 시간 농민의 편에 서서 밤을 새우고 교대를 하며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과거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것이 맞긴 하지만 어쩐지 현상을 심드렁하게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 같기도 하여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남긴 영상과 글을 찾아 보다가 토요일에 우리 공연을 보고 갔던 사람의 글을 읽게 됐다. 그 분은 그날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가 일찌감치 예매했던 공연을 보러 왔었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시절에 이 공동체는 분명히, 젊은 여성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2024년 12월 17일 화요일

새 베이스

 


새로 나온 재즈 베이스를 샀다. 펜더에서 이런 사양을 갖춘 악기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프렛보드에 레몬오일을 발라 문질러 닦고 줄을 갈았다. 트러스로드를 조정하고 픽업과 줄 높이를 맞추는 데 오래 걸렸다. 올해 마지막 공연과 다음 달 첫 주 제주도 공연에는 이 악기 한 개만 가지고 갈 생각이다.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포항에서.

 

십여일만에 아침에 눈을 뜨고 뉴스를 보는 대신 음악을 틀었다. 아직 긴 과정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탄핵 의결로 내란 우두머리의 직무라도 멈추어 놓았으니 다행이다. 오늘은 끝날 때까지 음악만 생각하고, 집에 돌아갈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불고 주차장엔 낙엽이 쌓여 있었다. 쓸쓸한 늦가을 오후 같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손을 녹이고 있었다. 여섯 시간 쯤 잤는데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른 세상이었다.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일부러 혼자 일찍 무대에 가서 한 시간 쯤 사운드 체크를 하고 개인 연습을 했다. 리허설은 이십여분 만에 끝났다. 나는 낯선 장소에서는 잘 자지 못하는 편인데, 지난 밤엔 아주 잘 잤다. 어제 연주할 때에 왼쪽 손목과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에 통증이 심했었다. 오늘은 일부러 충분히 손가락을 풀고 손목에 신경 쓰며 연습을 했다. 공연장 안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더 사서 조금 마시다가, 차 안에 놓아두고 돌아왔다. 더 먹고 싶었지만 공연 중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연주하는 데 아무 불편이 없었다. 어제보다 나았고 지난 주와 비교하면 훨씬 좋았다. 아마 한 시간 동안 손을 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탄핵이 가결된 이후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 음악을 들었던 덕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친 후 세 시간 이십 분 운전하여 집에 돌아왔다. 운전하면서 Joe Sample의 1997년 앨범과 Jaim Hall 의 1978년도 라이브를 들었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음악 관련 기사를 읽어보는 일상이 한참만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서 또 빙빙 돌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악기들을 차 안에 그대로 둔 채 집에 들어와서 자고 있던 고양이들을 깨워 껴안고 뒹굴었다.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탄핵. 공연장에서.

 

호텔 앞 바닷가에서 잠깐 산책을 하고 싶어서 나갔다가 얼른 다시 차로 돌아왔다. 너무 추워했던 이유는 아마 먹은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장승포에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데친 문어와 숭늉을 먹고 몸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산비탈에 있는 공연장도 추웠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견딜만 했다. 리허설을 마쳤을 때 국회에서는 탄핵소추안 표결을 시작했다.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공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여의도에 일찍부터 나가 있다고 하는 조카에게는 '탄핵지원금'과 함께 메세지도 보냈다.
그리고 분장실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것을 실황중계로 보았다.

겸손은 힘들다 니트 옷, 아주 좋다.

그리고 공연. 물론 사십여분 연주하는 것이어서 덜 피곤했던 것이었겠지만, 지난 주 무대에서 느꼈던 극심한 피로감은 없었다. 하루 전에 여섯 시간 넘게 운전을 했는데도. 탄핵 가결 소식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볍게 공연을 하고, 일곱시 반에 포항으로 출발했다. 내일은 포항에서 두 시간짜리 공연을 할 예정이다.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거제도

여섯 시간 이십 분 운전하여 거제도 숙소에 도착했다. 영상인 기온이어서 옷을 가볍게 입고 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닷바람을 맞으며 추워서 깜짝 놀랐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사와서 호텔방에 앉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내일 공연을 하는데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면서 뉴스만 듣고 보았다. 라면을 먹고 나서 차에서 악기를 꺼내어 가지고 와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 연습을 했다.

새벽에 이제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드러누웠을 때, 그제서야 내가 집에 인이어 이어폰을 두고 그냥 와버린 것을 알았다. 그것을 잊고 안 가져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틀 동안 빌려 쓸 인이어를 부탁해 봐야겠다.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식구들

 

하마터면 끔찍한 일을 겪을 뻔했던 일주일을 보내며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지난 한 두 달이 일 년쯤 지나간 것처럼 여겨졌다. 그 사이 아내의 생일이 지나갔고 자동차 점검을 받았고 오랜만에 안국동, 계동에 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일은 주말 공연을 위해 거제도로 간다.

내 집의 식구들, 고양이 이지는 부쩍 식욕이 생겨서 뭐든지 집어 먹는 바람에 아내가 예민해졌다. 잘 먹으면 좋은 일이지만 겨우 당뇨를 이겨낸 이후에 다시 건강을 해칠까봐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체중도 늘었다. 정작 자기가 먹어야 하는 사료는 손가락으로 먹여줘야 하는데 먹지 말아야 하는 다른 고양이 밥은 몰래 잘도 먹고 다니는 것이다.

짤이는 심근비대증으로 급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이뇨제로 처치를 하고 나서는 신장수치가 올라가 전보다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아내는 고양이를 위한 산소방을 대여했다.

나이 많은 두 고양이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편안해진 표정으로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내일부터 이삼일 집을 비우는데, 낯선 곳 숙소 침대에 누우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지금처럼 불안한 시국엔 더 그렇겠지.

한밤중에 깜이가 다가와 치대기 시작했다. 한참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그대로 내 발을 베고 누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의정부 공연

 

아버지 사망신고를 한 다음 날 밤에 난데 없는 비상계엄령 사태. 그리고 이 날 내란범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었다. 거의 밤 새워 뉴스를 보고, 낮에 일어나 또 뉴스를 듣고, 리허설을 마친 후에도 실황 중계를 켜두고 탄핵소추안이 폐기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몸이 무겁고 지쳐있었던 것은 잠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난히 연주하기 힘들었다.

다음 탄핵 표결은 일주일 후이다. 그 날에도 나는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과 다른 기분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밤이 길다.

 나는 평소 술을 먹지 않는데, 지난 이틀 동안 편의점에서 사 온 값싼 와인 한 병을 다 먹었다. 지금은 큰 병에 남아있던 위스키를 마저 비웠다. 어제만 하더라도 하루 종일 수 십 개의 속보가 쏟아졌다. 모든 소식을 따라가긴 해야겠는데 나는 공연 셋리스트가 몇 번 바뀌는 바람에 새로운 곡을 외우고 연습해야 했다. 유튜브 뉴스 화면이 두 세 개 띄워진 모니터를 쳐다보며 연습을 했더니 모두 외워지긴 했는데 뭘 했는지 잘 모르는 지경이 됐다.

열 네 시간 후에 내란과 군사반란범의 자격을 정지 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이 된다. 그 시간 즈음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시작할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한쪽 모니터엔 국회 앞을 비춰주는 문화방송 유튜브 채널을 마냥 띄워 놓고 있다. 밤이 길고 길다.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빗소리

아버지 사망 신고를 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숨졌기 때문에, 검안의가 써준 서류는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시체검안서였다. 자기는 나가 있겠다고 했던 엄마는 금세 다시 돌아와 내가 공무원에게 서류들을 건네어 주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추모원에 들러서 엄마는 준비해 온 묵주와 십자가를 유골함 곁에 놓아 뒀다. 노인은, "기도를 하고 가겠다"라고 했다. 나는 노인의 흰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며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신음같은 빗방울 소리가 속삭이는 듯 들렸다.

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한전아트센터 공연


 두 주 만에 공연장. 일요일 낮 시간에 이렇게 차가 막힐 줄이야. 그나마 일찌감치 나온 덕분에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말마다 공연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 내년 첫 주까지 매주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 사이 유일하게 공연이 없었던 지난 주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되었던 것이니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지난 열흘 동안 그 이전보다 더 잠을 못 자며 지냈다. 집에서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시면서 그것이 공연을 마칠 때까지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면부족이 아니라 통증이었다. 연주를 시작할 때부터 허리 통증이 심했다. 그나마 가벼운 악기를 가지고 갔던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공연 직후에 악기를 챙겨 차에 실을 때엔 좀 더 가벼운 베이스를 한 개 새로 살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악기들이 무거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해져 있는 것이니까 몸을 회복할 생각을 해야 맞다. 
극장을 가득 메워준 관객들의 표정이 잘 보였다.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잘 보였을 리가 없을텐데, 연주 중엔 그렇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연주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십일월이 곧 지나간다. 다음 달엔 먼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이틀 연속으로 공연하는 일정도 있다. 잘 쉬고 몸을 낫게 하여 겨울 공연들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4년 11월 19일 화요일

장례를 마쳤다.

 

13일 수요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6일 토요일에 고인을 화장하고 유골함을 안장했다.

11일 월요일에 방사선치료를 위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었다. 노인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그 날이 나와 동생,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시간을 보낸 마지막 날이 되었다. 빈소 옆에 담요를 깔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주고 받은 마지막 대화는 자동차의 대쉬캠에 녹음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나는 혼자 그것을 여러 번 들어보고 있었다. 장례를 다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일요일엔 밀린 잠을 잤다.

18일 월요일, 유골함을 놓아두고 온 장소에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가 시골집에서 엄마의 짐 정리를 돕고 돌아왔다. 추모원엔 색으로 물든 나뭇잎과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유난히 파란 하늘 아래에서 센 바람을 맞고 있었다.


2024년 11월 9일 토요일

성수동, 그리고

 

성수동에서 공연을 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에 걸어서 오고 가던 동네가 이젠 많이 변하여 처음 가보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삼십 분 약속이 되어있던 공연은 한 시간을 채우고 나서 끝났다.

연주를 마치자마자 화양동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져 있었다. 발과 다리가 부어 있었고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노인의 다리에 병원에서 썼던 스타킹을 신겼다. 그것으로 부종이 완화될 것 같진 않았다. 월요일에 방사전치료를 위한 진료가 예정되어 있는데 지금은 진료와 상담이 아니라 급히 입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늦은 시간에 돌아왔던 것도 아닌데, 자리가 부족하여 주차하는 데 오래 걸렸다. 악기를 들고 집으로 걷는데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2024년 11월 2일 토요일

영암에서 공연

 

전날부터 나주, 영암엔 비가 내렸다. 금요일엔 하루 종일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야외에 설치된 무대 바닥은 흠뻑 젖어있었다. 사운드체크를 한 후 물기 많은 트랙을 한 번 걸어보았다. 날씨 때문에 관객이 많이 없겠지만 연주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귀를 틀어막은 인이어 덕분에 천막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음악 소리와 섞여서 듣기 좋았다.
사십여분 공연을 마친 후에 차 안에서 몸을 녹이니 잠깐 동안 덜덜 떨렸다. 가는 비가 부딪는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듣다가 충북을 지날 즈음 비가 내리지 않아 음악도 잠시 꺼두었다. 어둡고 고요한 고속도로가 친숙했다. 심야에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라면을 팔고 있는 것을 기억했다. 자정에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기운을 차려 집에 돌아왔다.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세종시에서 공연

나뭇잎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흐린 덕분에 낮에 운전할 때 눈이 부시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팔당대교 북쪽에 가는 길까지 너무 정체가 심하여 시간을 많이 썼다. 145킬로미터, 2시간 52분 걸렸다.

잘 꾸며진 무대 뒤에 주차한 후 차 안에서 몸을 눕히고 조금 쉬었다. 일몰 후에 차 안에서 내다 본 무대 위 하늘이 근사해보였다.

리허설을 삼십여분 하고, 그대로 무대 위에 서있다가 첫 곡을 시작했다. 베이스 앰프 캐비넷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반가왔다. 공연 중에 앰프 소리를 듣고 싶어서 한 쪽 인이어를 잠깐 빼어 보기도 했다.

한 시간 조금 넘는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서는 음악을 틀어두고 오른쪽 차선 위에서 느긋하게 운전했다. 좋은 음악들을 듣고 있으니 몇 주 동안 바쁘게 내쉬었던 숨을 고르는 기분이 들었다. 운 좋게도 집에 돌아와 주차할 자리도 있었다.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장안사거리에서 공연

 

장안사거리 도로를 임시로 막고 야외무대를 설치한 곳에서 공연했다. 집에서 15킬로미터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려서 갔다. 토요일 오후, 동네 출구에서부터 강변길을 따라 끝없이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코스모스 축제라던가 하는 플래카드가 드문드문 걸려 있었다. 장안사거리 도로 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도 무슨 페스티벌, 저 동네에서도 어떤 축제, 다음 날엔 세종시에서도 또 페스티벌.

도로 한 가운데의 무대 앞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무대 옆, 뒤에도 사람들이 다가와 있었다. 왕복 사차선 도로 위에 서서 신호등 색상이 바뀌는 걸 보며 연주했다. 아니 벌써, 손이 시렵구나, 했다. 여름이 그렇게 길더니.

연주를 마치고 밤중에 돌아올 땐 20분 걸렸다. 오는 길에 장거리 운전을 위해 연료를 가득 채웠다. 악기는 차 안에 실어두고 집에 돌아왔다.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칠곡에서

처음엔 약속보다 한 시간 쯤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달리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는데, 시트를 눕히고 잠깐 쉬어야겠다고 했던 것이 그만 삼십분이나 잠을 자 버렸다. 자동차 앞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서 다시 한 시간 십 분을 달렸다. 행사장소에 도착하여 안내하는 분에게 길을 묻기 위해 창을 열었더니 나쁜 냄새가 들어왔다. 낙동강 녹조 독소가 유역 주민들의 신체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지금 읽는다.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리허설을 마치고 악기는 가방에 넣었다. 무대 위에 놓아두어야 했던 페달 위에는 비닐 우의를 덮어 놓았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귀에 인이어를 꽂고 계단 앞에 섰을 때, 갑자기 약속되어있던 시간을 바꿨다며 맨 끝 순서에 연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런 게 어디있느냐, 라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것'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럴 수도 있지 뭐. 오래 다녀보니 대충 알겠다, 싶었다. 35분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출발하면서 사흘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새 자동차를 운행한지 백일 쯤 지났다. 클러스터를 보니 그동안 9천 킬로미터 넘게 주행했다. 오늘 하루만 오백킬로미터 넘게 운전했으니까 석 달 만에 그 정도 달렸던 것이 뭐 이상한 건 아니다. 
아이폰에 다운로드 해뒀던 앨범을 듣고 그 후엔 소니워크맨에서 랜덤으로 음악을 틀어두며 집에 돌아왔다. 자정이 넘어서 도착했는데 이번에도 주차할 자리가 남아 있었다.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