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9일 월요일

여름이 다 지났다

 

 

여름이 지나가고 밤 기온은 섭씨 19도. 수요일엔 17도까지 내려간다고 예보에서 들었다.

여기의 여름은 언제나 심하게 더웠다. 20년 전, 30년 전에도 독하게 더웠고, 태풍이 지나갔고, 큰 비가 내렸었다. 사람들은 더위가 점점 지독해지고 비도 이상하게 내린다는 말을 하는데, 5년 전, 10년 전에도 지독했고 이상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옷이 가벼워질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방금 지나온 겨울을 몇 년 동안 살아온 듯 말하며 무더위를 과장하는 것 같다. 나는 끔찍하게 더웠던 여름을 수 십 번 겪은 것 같은데.

기온이 내려가니 여름 내내 맨 바닥에 길게 늘어져있던 고양이들이 각자 적당한 공간을 찾아 들어가 눕기 시작했다. 사십여년 된 낡은 가구는 캣타워로 변해버렸다. 이제 학교는 새 학기를 시작했고 열흘 쯤 지나면 추석이다. 무더위는 이상하지 않은데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2022년 8월 28일 일요일

성남에서 공연

 

성남시 분당중앙공원. 7년 만에 다시 가보았다. 2015년 5월 9일에 그곳에서 공연했었다. 그날에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그 동네가 집이었던 친구 동우를 만났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와 하며 함께 밥을 먹었다. 나는 모밀국수를 주문했었고 그는 국물이 있는 무엇인가를 먹었었다. 나는 많이 야위어 있던 그에게 뭔가 더 먹이고 싶었는데 그는 주문했던 것도 다 먹지 않고 남겼었다. 그는 그날 밤중에 있을 공연을 구경하고 싶어했지만 항암 치료 중에 체력이 너무 나빠져서 피로해했다. 그래서 식사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 잘 먹었다고 말하며 "다음엔 내가 밥을 사겠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리허설을 하면서 나는 내 모니터 스피커에서 베이스 소리를 줄이고 전체 음량도 더 내려주기를 부탁했다. 무대가 넓지 않아서 무대 위의 사운드와 베이스 앰프 소리만으로도 연주하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공연을 시작하고 첫 곡의 E 음을 누르자 마자, 나는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무대 앞으로 드넓게 트인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었는데 낮에는 고요하여 다 들리고 있었던 소리가 공간을 가득메운 관객들이 들어차자 마치 증발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연주를 하면서 몇 번이나 앰프의 노브를 돌려 음량을 올렸다. 앰프에 Limit 경고등이 나올 정도로 볼륨을 올렸는데도 베이스 소리는 공기 중으로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리허설을 할 때에 베이스 음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하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일이었다. 결국 상상력을 동원하여 연주하기로 했다. 내가 줄을 건드릴 때에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 하던대로만 잘 연주하면 관객들을 향하는 사운드는 엔지니어들이 알아서 잘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몸에 힘을 빼고, 과잉된 연주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공연을 마쳤다. 끝나고 나서 구경했던 분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베이스 소리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나빴다고 말해줄 리는 없지만...) 

내 소리를 듣지 못한 채로 한 시간 동안 공연해보는 경험을 하였다. 8월의 투어를 모두 마쳤다.



토요일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허리 통증이 재발되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에 두 번이나 갑자기 드러누웠다. 조심 조심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바깥의 도로 사정을 볼까 하여 베란다에 가보았더니 고양이 깜이가 바람을 쐬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고양이는 눈을 꿈벅거리며 잘 잤느냐고 묻고 있었다.



새벽에 집 주차장에 도착한 뒤 애플워치를 들여다 보았더니 여러 개의 경고가 화면에 보여지고 있었다. 세 시간 전 무대 위에서 소음 레벨이 100 데시벨에 다다랐었다는 경고였다. 그랬었나,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것 같지 않았는데.

정오가 되기 전에 밥을 차려 먹고 또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성남으로 출발했다.




전주 공연

 

1980년 5월 2일, 전북대학교 학생 천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과 맞서 돌을 던지며 대치 중이었다. 비상계엄을 해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최루탄 가스를 발사하는 지프차를 전복시켰다. 전북대학교 정문 앞에도 오백여명의 학생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고 시내로 들어온 학생들은 종합경기장 공사용으로 놓아둔 토관을 굴리며 도로를 차단하고 애국가를 부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십여일 후에 광주... 그리고 새 군부독재의 노골적인 시작. 다섯 달 뒤에 전국체전이 시작했고 이제 막 개장된 종합경기장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매일 나왔었다. 마치 세상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3만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비용을 들인, 최대이며 최신인 종합경기장.'

1963년에 지어져 1980년에 대대적으로 증축한 나이 많은 덕진 종합경기장에 공연을 하러 갔다. 공연 전에 경기장 바깥을 걸으며 긴 세월을 지나보낸 콘크리트 건물들을 구경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긴 시간 운전을 하고 한숨도 잠을 못 잤다. 길고 길었던 대기시간. 예정되었던 것보다 한 시간이나 지나 공연을 시작했다. 집에서 나온지 열 네 시간 만에 무대 위에 올랐던 것. 비몽사몽인 상태로 첫 곡을 시작했다. 이미 밤 열시 삼십분이었다. 관객들을 보면서 저 분들은 집에 가는데 지장이 없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연주를 시작하니 선선해진 밤 공기 때문인지 넓은 공간 덕분인지 소리가 아주 좋았다. 집중하며 연주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한데 역시 반쯤 자고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에 공연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며 고속도로를 달렸던 것들이 한데 섞여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 그대로 드러누워 자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이 맑아졌는데 제일 먼저 기억 났던 것은 전주에서 먹었던 육회비빔밥과 생선구이 정식이었다. 일부러 가장 평점이 낮은 식당을 골라 찾아간다고 해도, 전주에서 먹는 음식은 전부 다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