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0일 토요일

새 음반

하루만 더 쉬고 싶다는 욕심과 내일도 할일이 있다는 위안이 섞이는 밤이었다. 김창완밴드의 이번 음반은 정확히 2011년 6월 12일 하루에 모두 녹음했다. 손에 쥔 음반이 마치 그날 찍어둔 사진 한 장 같다.

내 앞에는 지금 두꺼운 책도 있고, 어지러운 악보도 있고, 심난한 뉴스와 가증스러운 인터뷰 기사도 있고, 아내의 결혼전 사진과 밤새 말썽 피우는 어린 고양이도 있고, 물기를 먹은 악기들과 반쯤 비워진 담배갑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잠은 오지 않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들은 맨날 머리 속에서만 서로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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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9일 화요일

김창완밴드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큰 행사를 운영하는 스탭들의 일사불란함과 성실함, 똑 부러지는 일처리가 인상적이었다. 무엇이든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 날씨가 좋지 않다거나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동안 착실히 발전하고 있는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은 아마 머지않아 가장 중요한 음악 행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악기가 비에 흠뻑 젖었다. 이동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미처 잘 말리지 못했다.
오늘은 서울숲에서 야외공연을 한다. 비는 여전히 흩뿌릴텐데 다른 악기를 가져가야 좋을지 기왕에 젖은 악기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악기들의 줄을 손질했다. 한 개는 새 줄로 감아 놓았다.

출연자의 이름이 써있는 콘테이너 출입문이 남다르게 보여 담아왔다. 대충 이 날의 그 느낌과 흡사하게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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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일 월요일

주유소

디지털 카메라를 아예 집에 놓아두고 출발했었다.
아이폰으로 아무데서나 사진을 담았다.
아무래도 아이폰 5에는 더 좋은 카메라를 붙여주면 좋겠다.

아틀란타에서 공연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사러 어느 주유소에 들렀었다. 검고 눅눅한 밤공기 속에 비현실적으로 불빛만 빛나고 있었다.
약간 창피하지만, 이건 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한 장 찍어뒀는데 나중에 보니 살짝 흔들려서 진짜 그런 느낌으로 찍혀있었다. (....라고 나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5달러에 한 상자를 구입해왔던 물은 맛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한 병을 마셔보니 전혀 맛이 없었다.
밤 사이 갈증도 욕심도 많이 없어졌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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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만 킬로미터 떨어진 무대

이상훈 씨가 찍어줌.
이 날의 앰프는 Ampeg SVT 2 였다.
관객석 방향의 소리는 알 수 없었다. 무대 위의 앰프 소리는 좋았다.
떠나오는 날 집에서 Moollon과 Fender 재즈를 두고 한 개를 고르느라 고민을 했었다. 요즘 네크의 상태가 좋았던 Fender를 집어들고 떠났었다. 하루 전에 악기점에서 손을 보아두기도 했다. 그 덕분에 보름 동안 좋은 상태로 유지되어주어서 연주하는데에 편했다.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엔 다섯 번의 공연을 Moollon 3 Plus와 Bass Muff, 그리고 아틀란타에서 십만원에 구입한 Polytune 튜너와 함께 했다. 페달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때에 뮤트 스위치 역할을 해줄 튜너가 필요했는데 그 용도로도 Polytune은 훌륭했다. (사실 한 개 가지고 싶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공연 전에 설레임이나 떨림이 없으면 안된다느니 그런 말을 나에게 했던 분이 있었는데, 그런 것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편안한 마음이면 된다. '두근 두근이 없으면 안된다' 같은 말을 하며 허세를 부릴 여유가 있으면 그 대신 가만히 앉아서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하나씩 꼽아보며 마음을 조용하게 만드는게 좋다.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무대 상태가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고른 숨으로 연주할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낫다.

집에서 만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어느 극장에서의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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