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9일 일요일

목소리

 작년 11월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자동차 대쉬캠에 있는 영상을 다운로드하려고 보았더니 그만 다 지워지고 없었다. 며칠 장례식장에 세워 두기만 하고 운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상이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거기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병원에서 나오는 모습과 집 앞에서 내 동생의 부축을 받아 계단을 오르는 뒷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모습이 아버지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나는 대쉬캠 영상들을 미처 보존하지 못하였지만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기 직전 나와 짧은 말을 주고받았던 오디오 녹음은 가지고 있다.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혼자 영상들을 확인하고 있다가 오디오가 담긴 짧은 영상은 아이폰으로 전송하여 받아 놓았었다. 용량이 작은 파일이었기 때문에 그 파일은 옮길 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차 안 메모리에 그대로 두었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그 동영상의 오디오만 따로 빼내어 파일로 만들어 놓았었다.

그 파일을 어디에 저장해 놓았는지 기억을 못하여 날짜와 파일 종류를 조건으로 검색하여 찾았다. 아이클라우드에 파일이 있었다. 거기에 보관해 놓았던 것을 잊고 엉뚱한 외장하드만 뒤져 보고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볼륨을 높여서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반복하여 들어 보았다.

파일 이름에 '아버지'를 넣어서 다시 저장했다.

2025년 6월 22일 일요일

여름을 맞는 고양이들


 고양이 이지는 당뇨병을 다 이겨내고 건강해졌다. 사소한 것들로 자주 병원에는 다니지만 이제 아프지 않고, 기운이 나서 돌아다니며 깜이의 밥을 빼앗아 먹으려 하고 있다.

췌장염을 앓았던 고양이 짤이는 비대성 심근병증으로 일 년째 치료 중이다. 지금 심장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을 치료하다보니 신장 수치가 조금 나빠졌다. 나흘 뒤에 병원에 진료예약이 되어 있다. 그래도 고양이는 아프지 않아하고, 잘 먹고 잘 잔다.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 밤까지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느라 정해놓은 시간마다 약과 물을 먹이고 사료를 일일이 만들어 손으로 먹이고 있다. 4년째 계속 중인 아내의 고생 덕분에 열 넷 열 다섯 살 고양이들이 병을 이기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언니 고양이들이 병치레를 하고 회복하는 동안 고양이 깜이는 같이 놀아줄 대상이 없어 심심해 했다. 떼쓰고 투정부리는 일이 잦아졌다. 고집도 세어져서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좀처럼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착하게 늘 언니 고양이들에게 양보를 하고 잘 참아준다.
한강 쪽 유리문을 열어놓으니 밤공기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여름을 맞고 있다.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제 자리로.


 서너 달 비틀어서 쓰고 있었던 만년필의 닙을 원래대로 돌려 놓았다. 설계한 그대로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 쓰는 것이 맞았다. 고작 몇 년 펜에 잉크 좀 넣어 쓰고 있었다고, 대충 아는 주제에 내가 또 교만했던 것이다.

https://choiwonsik.blogspot.com/2025/02/blog-post_43.html


베개 만년필 두 자루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잘 쓰고 있다. 어떤 날엔 쓸 것이 없는데 펜을 쥐고 그어보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적어보기도 한다.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커피

사흘 만에 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있다. 입안에 커피를 한 모금 물고 향을 느끼며 머금었다가 느리게 삼키고 있다.

매일 많은 양을 마시며 살았었는데 한 달 전부터는 이틀 사흘에 한 번씩 커피를 먹고 있다. 무슨 결심을 하여 덜 마시기로 한 건 아니다. 자고 일어나서 습관처럼 물을 끓이고 커피콩을 갈고 있던 것을 점점 덜 하기 시작한 건데, 마시지 않아도 커피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하루 이틀 그냥 지나가게 된 거다.

얼음이 든 차가운 커피도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도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온도를 유지하게 해 두고 마시던 것이 내 기호였다. 요즘은 긴 시간 운전할 일이 있으면 찬 커피를 사서 빨대로 조금씩 입안을 적시며 다니게 되었다. 얼음이 녹을수록 커피는 더 묽어지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일부러 작정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커피를 전보다 덜 마셨더니 몸이 좀 편해진 기분이 든다. 원두 1Kg을 사 두어도 오래 지나지 않아 다 떨어지곤 했었는데 지금은 4월에 샀던 커피콩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커피를 자주 만들지 않고 있으니까 여과지도 많이 남아있다. 점점 더 커피를 덜 먹게 될지도 모른다. 섭섭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자연스런 일이겠지, 한다.
 

2025년 6월 15일 일요일

만년필 세척


 자주 쓰지 않는 바람에 다섯 달만에 새로 잉크를 넣게 된 아내의 펜을 세척했다. 예상대로 닦고 씻어내야 할 잉크 찌꺼기가 잔뜩 있었다. 물에 담그어 말라 붙어있는 잉크 흔적을 녹이고 컨버터는 분리하여 닦았다. 캡 안에도 컨버터를 연결하는 그립부의 나사산에도 잉크가 계속 묻어 나왔다.

새로 파커 블루블랙 잉크를 넣었는데 일부러 3분의 2정도만 채웠다. 그러면 너무 오래 지나기 전에 펜을 씻고 잉크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겸손 펜 케이스

작년 12월 31일에 주문했던 겸손 펜 케이스 '베개집' 두 개를 오늘 배송 받았다. 품질이 아주 좋고, 색감이 무척 예쁘다. 정말 공들여 만들었다는 것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세세한 마감까지 꼼꼼하게 잘 제작했다. 훌륭하다.

먼 지역에 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공연을 하는 일이 있을 때 나는 펜 파우치에 두어 자루 펜을 챙겨서 다녔었다. 숙소에 도착하면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 일 외엔 펜 케이스를 가지고 다닐 일은 없다. 새 펜 케이스들은 펜을 세척한 후 넣어서 보관할 때에 쓰면 되겠다. 


 

2025년 6월 8일 일요일

구미에서 공연

MOOLLON 재즈 베이스는 작년 12월 포항에서 썼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영등포 공연부터 새 펜더 베이스 한 대만 갖고 다녔다. 이번에 이틀 연속 공연에서는 이 베이스로 연주했다. 악기의 소리가 좋고 다루기 편해서 연주할 때 기운 낼 수 있었다. 내 손과 몸에 닿아 브릿지가 녹슬었고 피니쉬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내년이면 이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 베이스는 세월이 흘러 낡아진 만큼 더 좋아졌다.

공연장 내부의 모습도 아름답고 무대 뒤 공간은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좋은 환경에서 사운드체크를 하고 공연 할 수 있었다. 음향팀이 준비해 준 모니터도 훌륭했다.


나는 이틀간 충분히 못 잤다. 잠을 부족하게 잤던 이유는 평소에 아침에 잠들고 낮에 일어나는 생활을 해오고 있던 탓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처럼 잠이 모자란 상태에서 돌아다녔다. 그런데 지난해와 다른 점은 잠이 부족했을 뿐 몸이 고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허리 통증이 심했던 지난해 내내 나는 운전을 오래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신음을 하며 다녔었다. 이번엔 한 번도 쉬지 않고 멀쩡히 운전을 했다. 두 시간 연주하는 것도 피로하지 않았다.

구미문화예술회관




 

구미 문화예술회관


 나는 지방도시에 갈 때 공연장을 찾아보고 그 건축물에 대하여 읽어 본다. 지도 앱에서 사진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유용하다. 대개는 목적지의 주차장과 무대 뒤 출입구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만 흥미로운 건축물이 보이면 더 조사하여 공부해 두고 출발한다.

사진으로 본 건축을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곳까지 가 보는 여유를 갖기 어려운데 마침 일을 하게 된 장소라면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오늘 다녀온 구미 문화예술회관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건축물이었다. 기이한 모양과 구조에 적벽돌 외장은 정보 없이 사진으로 보자마자 김수근의 건축인 줄 알 수 있었다.

약속 시간 50분 전에 도착하여 쨍한 햇빛을 받으며 서 있는 건물을 빙 돌며 구경해 볼 수 있었다. 놀랍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양만으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건축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외양의 스토리와 잘 연결되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십여 년이 지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관되고 차분한 인테리어는 애초의 설계가 훌륭한 것도 있지만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관리해 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가구나 화장실의 도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 없이 잘 꾸며져 있었다.



2025년 6월 7일 토요일

올림픽공원 공연

낮 기온은 섭씨 32도였다.기온은 높았지만 바람이 불고 있어서 많이 덥지 않았다. 날씨가 아주 좋았다.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휴일이라 집에서 내려다보니 도로가 자동차로 가득했다. 길이 막힐까 봐 일찍 출발했는데 금세 공연 장소에 도착했다. 서울 바깥으로 나가는 차들만 많았던 것이었다.

나는 강한 빛에 약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광반사 재채기' 증후군을 갖고 있다.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 강한 햇빛을 보면 계속 재채기를 한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 햇빛 아래에서 야외무대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색안경을 챙겨 갔었다. 그 덕분에 눈이 피로하지 않았고 한 번도 재채기를 하지 않았다.
 

잉크


 그저께부터 조금 전까지 아홉 자루의 펜에 잉크를 넣었다. 만년필을 여러 자루 돌아가며 쓰고 있으면 새로 잉크를 충전하는 시기가 한데 몰릴 때가 생긴다.

글입다 잉크는 흐린 색 농도이지만 묽어서 어프로치노트(라이트)에 쓸 때엔 굵게 나오고 많이 번졌다. 이제 클레르퐁텐 공책에서 쓰다 보니 잉크 흡수가 덜 하고 빠르게 마르는 종이 위에서 너무 흐리게 나오고 있었다. 눈이 나빠진 데다가 잉크 색이 연하게 써지고 있어서 쓰거나 읽을 때 안경을 쓰고 있어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새벽에 펠리칸 M605에 남아 있던 글입다 잉크를 빼내고 10ml 용기에 펠리칸 검정색 잉크를 덜어서 글입다 잉크와 섞었다. 글입다와 펠리칸 잉크는 3:1 비율로 섞었는데, 작고 입구가 좁은 병이어서 펜을 담그어 잉크를 빨아들이기 위해 잉크의 높이를 맞추려다가 그렇게 됐다. 결과적으로 알맞은 진하기가 되었다.

2025년 6월 5일 목요일

공책

 

앞서 쓰던 공책을 다 쓰고 새 공책을 펼 때가 됐다. 새로 도착한 겸손 사각 노트 중에서 그문드 코튼을 골라 펼쳤다.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손가락을 대고 문질러 보다가, 공책을 다시 덮었다. 이건 좀 부담이 된다. 매일 잡문이나 쓸 노트북으로는 좀 사치가 아닌가 싶어서 다시 비닐에 담아 책꽂이에 올려 두었다.

미리 사 놓았던 공책들 중에서 Clairefontaine 노트를 꺼내어 펼쳤다. 정상적인 새 정부의 시작과 함께 새 공책을 쓰기 시작하는 기분도 좋았다.

2025년 6월 4일 수요일

됐다, 21대 대통령.

 

사진 FINANCIAL EXPRESS
됐다. 아주 기분 좋다.

사전 선거 첫날 아침에 이미 투표를 해버린 나는 어제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 없으면서도 동네 투표소에 갔었다. 투표 마감 이후 출구조사, 당선 유력, 당선 확실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동안에도 아직 안심이 되지 않았다. 결국 새벽에 당선 확정, 아침에 선관위에서 당선 결정, 한 시간 쯤 후에 박찬대 의원이 당선증을 수령해 오는 것까지 다 보고서야 잠들었다.

MBC에서 만든 선거 영상이 단연 아름다웠다. 역사의식과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영상을 방송에서 오랜만에 보았다. 하루 내내 쏟아지는 뉴스를 놓치지 않고 다 보았다. 기분 좋은 새 정부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