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잉크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고 듣긴 했었다. 오래된 만년필 회사는 기본적으로 잉크를 같이 만든다. 펠리칸은 잉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요즘 펜을 만드는 회사는 전부 자사 브랜드의 잉크도 생산한다. 그렇다면 잉크만 제조하는 회사의 잉크는 어떤 만년필에 넣어 쓰면 좋은 걸까. 예를 들어 지금 내 디플로마트 만년필엔 다이어민 잉크가 들어있는데, 30ml 짜리 디플로마트 잉크를 진작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어민 잉크는 이 펜에서 아주 잘 흐르고 써진다. 오토후트 펜에도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다. 파버카스텔 펜에는 그동안 여러 브랜드의 잉크를 넣어 써오고 있다. 그래서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다. 펠리칸 펜에도 다이어민, 파커, 카랜다쉬 잉크를 번갈아 넣어 쓰고 있었다.

지난 달 말에 펠리칸 잉크를 몇 병 샀다. 그동안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었던 M200 브라운 마블에 빨간색 펠리칸 잉크를 넣어 보았다. 놀랍게도 필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냥 잘 미끄러지고 잘 흐른다는 것만이 아니라 펜 끝이 종이에 닿아 그어지는 기분이 완전히 변한 것이었다. M200 파스텔 블루엔 파커 블루블랙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 대신에 새로 산 펠리칸 Türkis 를 넣어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펠리칸 펜에 펠리칸 잉크를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펜의 닙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느낌으로 써지고 있었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