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3일 일요일

그 남자의 방.


삼월의 첫째날, 시골에 내려가서도 여전히 바쁘신 어느 대통령의 지난 삼일절 기념사도 생각나고해서(...이건 조금은 거짓말.) 그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림을 컴퓨터의 배경으로 삼았었다.

지난 밤에 우연히 화가의 그림을 보게 되어 배경화면을 그가 그린 그의 방으로 바꿔놓았다.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을 처음 구경했던 기억은 꽤 선명하게 머리속에 남아있다.
아주 어릴적에 이문동에 살고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부모님과 함께 들렀다가 늘 친하게 지냈던 막내삼촌의 방에서 책을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지금은 전업작가인 막내삼촌은 자주 나에게 책을 소개해주고 읽게 해주고 선물해줬었다. 대부분은 당시엔 몹시 재미없어했다가 몇 년 후에 손에 들어온후 처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되곤 했는데, 거의 모두 시작하면 밤새워 읽으며 재미있어했다.
젊은 막내삼촌의 방에서는 항상 퀘퀘한 냄새와 방안에 가득 차있는 책 냄새가 섞여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했었다.

그 방은 어두운 편이었지만 넓은 창문이 있었다. 방이 어두웠기때문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유난히 밝게 느껴졌었다. 그 방에서 삼촌은 불쑥 두꺼운 그림책을 펼쳐 보여줬었다. 그 그림은 고호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그 그림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미학적인 관점은 전혀 없었을 것이었고, 그림 속의 사람들이 어떤 시대의 어떤 이들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곁에서 삼촌이 설명해줬다고 해도) 별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을 보고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고호의 방을 보았었다. (그 책에는 한자로 고호의 침실이라고 써놓았었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아니고 지금에 와서 재편집하고 있는 창작이지만, 막내삼촌은 나에게 해바라기도 보여줬고 별밤도 보여줬고 농부와 구두도 보여줬을 것이었다. 아마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기억에 너무 강하게 남아있던 그림은 그렇게 두 개였다. 나중에 나에게도 그 그림이 담긴 책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삼촌의 방에서 펼쳐보았던 그 그림처럼 느껴지지 않았었다. 무슨 원본을 감상했던 것도 아니고, 생전 알지도 못하던 화가의 그림을 컬러 인쇄술 덕분에 겨우 구경했었을 뿐이었는데 내가 가진 책의 그림은 어쩐지 가짜처럼 여겨졌다. 더 새 책이고, 인쇄도 잘 되어있었을테고, 색감도 나름 좋았을텐데도 그랬었다.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고, 두 따님이 훌쩍 자라 결혼을 할 나이가 되어버린 막내삼촌의 방도 더 이상 그 동네에는 없다. 이제는 아무리 나 혼자 기억을 조작하여 품게된 환상이라고 해도 고호의 방을 처음 구경했던 그 느낌을 다시는 가져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언제나 친절하게 해주셨던 동네 책방에 들러서 다른 책에 실린 그림을 보았을 때에도 그 느낌은 없었다. 인터넷 시절이 되어서 그림 파일들을 잔뜩 불러내어 화면 가득 띄워놓아보아도 그 느낌은 이제 없다. 물감이라든가 잘 마른 침구에서 배어나올법한 퀘퀘한 냄새가 날 것 같았던 그림.
지금은 고작 컴퓨터의 배경화면이 되어버린 고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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