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아침 생방송


 23일 목요일 아침, 라디오 생방송에서 연주하기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왔다.

다섯 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결국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그럴 줄 알았다.

아침에 일정이 있으면 힘들다. 그래도 생방송이어서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늘어나거나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크라잉넛이 먼저 와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왔는데 한 시간 이십분 동안 운전을 하면서 다 마셔버렸다. 사운드 체크를 마친 뒤에 건물 일층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래도 졸음이 쏟아졌다.

이 장면은 아마 연주 시작 직전에 크라잉넛 멤버들이 왁자지껄 말하는 것을 듣고 전부 웃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는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십일월이 한가하리라 생각했는데 뭘 한 것도 없이 벌써 다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열흘 전에 주문했던 가구를 배송 받고, 저녁에는 레슨을 하러 갔다가, 밤중에는 동물병원에 들러 고양이 짤이에게 먹일 약을 사왔다. 긴 하루였다.


2023년 11월 19일 일요일

새 아이폰

케이스를 씌우지 않고 몇 년을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데, 목요일 낮에 그만 집안 화장실 타일 바닥에 아이폰을 자유낙하 시켰다. 순간의 부주의로 뒷면 유리가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박살이 나버렸다.

급한 대로 스누피 스티커를 붙였다. 새로 아이폰을 살 계획은 없었다. 뒷면 유리를 수리하는 비용을 열심히 검색했다. 칠십만원을 들여 뒷면 유리를 교환하고 싶진 않았다. 전화기를 떨어뜨려 깨버린 건 처음이었다. 채 4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그러던 중 금요일 낮에 전화기를 집어 들다가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한 번 더 손에서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유리가루에 손가락이 찔린 것이었다. 피가 예쁜 빨강 빛으로 몽실 피어올랐다. 유리조각을 빼내지 못해 밤까지 고생을 했다. 유리가 박힌 것은 왼쪽 검지 손가락이고, 그 손가락은 연주할 때에 가장 혹사 당해야 하는 손가락이다.

그래서... 정말 계획에 없었지만, 아이폰 15 프로를 사게 되었다. 이번엔 비건 케이스도 같이 샀다.

마이그레이션을 마치고 여전히 따끔거리는 손가락을 불빛에 비춰보며 채혈침으로 미세한 유리조각을 한 개 더 빼냈다.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까만 고양이

 

얘는 까만 고양이이니까 깜이라고 부르자고, 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버렸다. 고양이 깜이는 일곱 해 전 오늘, 집앞에서 우리를 만나 냅다 따라들어와 그 뒤로 함께 살게 되었다.

깜이를 만난 날

고양이는 습관처럼 하는 짓이겠지만, 어쩐지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깜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소가 우리와 만났던 그 지점인 것 같아서 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을 때가 있다. 과연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는 내가 알 수 없겠지만.

그 해엔 내 고양이 순이가 떠났던 것 외에도 내 주변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었다. 그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다 지나온 다음에야 알았다. 상실, 우울, 비관과 같은 감정을 낙엽처럼 털어내며 몇 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고양이 깜이가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도 깜이는 굳이 내 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워 가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칠년 전을 기념하며 맛있는 간식이라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목포에서 공연

 

토요일 오후 네 시 반에 집에서 목포로 출발했다. 처음엔 내비게이션이 네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고 알려주더니 점점 시간이 늘어났다. 다섯 시간 사십분이 지나서야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이른 시간에 공연장에 갔다. 미리 악기 소리를 내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인사를 할 때 열흘 전 광주에서 연주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땐 안양, 광주에서 어떻게 연주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피로했었다. 일부러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잘 자둔 덕분에 이번엔 좋은 상태로 연주할 수 있었다.
다시 집에 돌아올 때엔 겨우 네 시간 쯤이야 쉬지 않고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젠 밤 운전이 예전처럼 수월하지 않다고 느꼈다. 집에 도착할 즈음엔 이상하게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더 고단해졌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자동차 왼쪽 앞 타이어에 큰 못이 박혀 바퀴가 납작해져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못을 박은채로 달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이런 일이 유난히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