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월요일

꽃 냄새, 바람.


폭염을 잘 견디고, 고양이가 이른 아침 창가에서 꽃 내음, 바람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린 고양이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조금 선선해지니 고양이는 다시 칭얼거리며 마주칠 때 마다 놀아달라고 조른다.

2018년 8월 18일 토요일

음의 높낮이.

악기의 튜닝을 440 Hz 로 해두고 있는 것은 일종의 약속일 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라' 라고 하는 A 음의 높이가 정해져있었을 것 같지만 그것이 지금의 440 Hz 로 약속된 것은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1950년대 이후 레코드 업계라는 것이 범지구적으로 발전한 다음부터 대중음악에서는 440 Hz 에 A 음을 맞추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A 음을 432 Hz 로 튜닝하여 연주하는 것에 대한 갑론을박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왔다.
440 Hz 보다 32센트 낮게 조율하여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에 대한 장점과 단점들이 많은 증거와 논리로 설명되어왔는데, 가끔 그런 글과 주장을 접하고 있어도 나는 뭐가 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역사로, 어떤 이는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누구는 종교처럼, 어떤 경우에는 명상이나 심리학을 들어서 432 Hz 로 조율한 음악이 훨씬 더 인간에게 이롭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연에 더 가까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도 하고 수학적으로 정확한 비율이므로 음의 주파수가 보다 더 음악적이라고도 했다. 물의 진동과 같기 때문에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고도 하고 심지어 건강하게 해준다고도 했다.

그런 것은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움베르토 에코가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이란 그것이 신비로울 수 있다면 뭐든지 창작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적 능력을 지닌 동물인 것이다. 피라밋의 비율이 현대의 생활에 은연 중 숨어들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신문가판대의 가로 세로 치수를 재어 복잡한 수식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복잡할수록 좋고 알 수 없을수록 신비롭기 때문에 뭔가를 믿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쉽다. 그런 것에 한쪽으로만 경도되기 쉬운 것이 바로 사람이고, 그러므로 종교와 다단계 판매업에는 불황이 없다.

최근에 밴드 공연을 앞두고 밴드리더님이 진지하게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곡들에 한하여 432 Hz 로 바꾸어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하였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우연을 겪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우리는 그 이전에 이것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음악의 튜닝을 바꾸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442 Hz 로 연주한다고 하면 그것에 맞추면 되고, 콘서트홀의 피아노가 443 Hz 로 튜닝되어 있다고 하면 그것에 맞춰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약간의 피치 간격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나처럼 귀가 바보인 베이스 연주자에게는 그냥 조금 높거나 낮거나의 차이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음의 높이가 다르니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지 뭐,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침 내 컴퓨터가 수명을 다 하여 멈춰버리는 일이 생겼고, 나는 새 아이맥을 구입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 새 매킨토시 컴퓨터에서는 더 이상 그 유명한 매킨토시 시동음 Startup Chime 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서는 분한 마음도 있었다.
맥을 켠다는 것은 그 시동음을 듣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고, 컴퓨터에 전원을 넣고 오에스를 부팅한다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고 떼를 쓰고 싶었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음은 수십년 동안 맥 유저들이 듣고 있었던 친숙한 음악이었고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합창이었다.
그 시동음은 묘했다. 단지 단순하고 짧은 화음일 뿐인데 언제나 듣기 좋았다. 기계에서 나오는 음이라기엔 따뜻했고 어딘가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소리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긴 부팅시간을 기다리기 직전에 들을 수 있는 수업 종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없다면 맥이 아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징적인 소리였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아무리 오에스의 작동 방식이 달라졌다고 해도 없애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건 좀... 동의하기 어렵다. 뭔가를 없애버리는 것을 제일 잘 하던 사람이 그 사람이었으니까.

그 매킨토시의 시동음이 바로 432 Hz 튜닝이었다.


432 Hz 에 관한 다양한 주장과 논박에 대해서는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고 아직도 큰 관심은 없다. 그러나 맥의 시동음 만큼은 내 인생 속에서 큰 의미를 지닌 소리였다.

공연을 앞두고 합주를 할 때에 나는 뭔가 진지한 기분으로 베이스를 432 Hz 로 튜닝했다. 긴 시간 합주를 했지만 그날은 무엇이 다른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주 토요일, 부산에서 공연을 할 때에 우리는 공연의 전반부를 432 Hz 로, 후반부의 일렉트릭 사운드는 440 Hz 로 연주를 하였다. 공연을 하고 있을 때에는 미처 잘 알지 못했다가, 공연을 마친 후에서야 비로소 오늘의 연주가 이전의 것과 뭔가 달랐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멤버들끼리 그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경험을 나누었다.

그것 역시 단순히 음 높이가 조금 낮아졌기 때문이니까 그런거지, 라고 해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와 존 레논의 Imagine,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메탈리카의 Nothing Else Matters 와 너바나의 Come As You Are 를 들어보았다. 모두 432 Hz 튜닝으로 녹음된 음악들이었다.
다시 들어보아도 역시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워낙 좋은 노래여서 편안한 것인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친숙한 것인지, 듣기 좋은 이유가 과연 조율한 음의 높이 때문인지 나는 단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론은 잘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매킨토시의 시동음은 언제나 나를 기분좋게 해줬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의 공연 중 그 튜닝으로 연주했던 시간은 이전의 연주보다 따뜻하고 편안했었다. 어떤 음악은 특정한 튜닝이 더 편안할 수도 있고 어떤 음악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경험하기 전에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던 일이다.




아쉬우니까, 맥의 시동음을 파일로 여기에 저장해둔다.


Mac Startup Ch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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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이름.

2009, Kimchangwan Band
공연을 마친 후 숙소에서 멤버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이야기 도중에 밴드 리더님의 오래된 기타가 화제에 올랐다.
그 기타는 미국에서 1990년에 만들어진 Hamer 기타였다. 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저가모델로 만들어졌던 Hamer 기타도 있었다.

from Pinterest.com
이 기타회사는 1973년에 처음 시작하여 깁슨, 펜더와도 인연이 많다. 나름 한 시대의 정점을 찍었던 기타이기도 했다.

이야기 도중에 리더님은 계속 이 기타를 '헤이머'라고 불렀고, 나는 '해머'라고 말했다. 사진을 검색해봤다면 제대로 된 발음을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나는 이 기타의 이름을 Hammer 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충전 중이었던 아이폰을 가지러가기 귀찮아서 '아, 헤이머가 맞는건가' 하고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고 자료를 찾아봤다.
새로 알게 된 것은 사람의 surname 인 Hamer는 '하이머' 정도로 발음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문제를 두고 미국인들의 게시판에서도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있었다. 이런 경우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면 되는지 알려주면 간단하게 궁금한 것이 풀린다.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게시판에서 Hamer 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여 발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심지어 기타 회사의 설립자인 Paul Hamer 를 만났을 때에 직접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는 글도 있었다.

덕분에 이 기타와 이 이름을 '하이머' 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웠다. 잊어먹지 않을 것 같다.

외국의 이름을 우리말로 가져와 편하게 발음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요즘은 아무도 Fender 를 '휀다'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펜더'라고 말하면서도 그 기타의 메이커가 'Fender' 인줄을 잘 안다. 검색창에는 '펜더 기타', '펜더 재즈베이스'라고 입력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상호 소통을 할 수 있다. '펜더'는 'Fender' 와 같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서로 '펜더'라고 말한다고 하여 뚜쟁이를 뜻하는 'Pander' 를 연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펜더'라는 말은 우리말 속에서 자연스런 기능을 한다.

그런데 독일의 기타와 앰프 회사인 Hughes & Kettner 는 한글 웹페이지에서 거의 대부분 '휴거스 앤 케트너'라고 말하고 쓴다. 양보하여 생각한다고 해도 '휴게스'가 아니고 왜 '휴거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Hughes 역시 사람의 이름이기 때문에 '휴-즈' 라고 발음해줘야 한다. 딥 퍼플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보컬도 맡았던 Glenn Hughes 역시 '글렌 휴즈'라고 말해야 맞다. 영화 감독 형제인 Hughes Brothers 나 맨체스터의 록커 Gary Hughes 의 이름들도 모두 '휴즈'라고 해줘야 옳다. 한글 검색으로 '휴거스 앤 케트너'라고 입력하면 유연한 검색어를 지원하는 구글에서도 '휴즈 앤 케트너'로 바꿔서 검색해주기 어렵다. 지금 구글이 굳이 옳은 발음으로 고쳐주고 있지 않는 이유는 이미 '휴거스 앤 케트너'라고 입력하여도 한글 자료에서는 무수히 많은 Hughes & Kettner 가 찾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휴즈 앤 케트너'라고 검색하면 검색결과가 덜 나오게 되고 있는 실정은 뭔가 우습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하다.

뛰어난 테크닉과 즉흥연주를 보여주는 베이스 연주자 Hadrien Feraud 의 이름은 '애드리안 페로'로 발음해줘야 하지만, 역시 한글 검색에서는 대부분 '헤드리안 페라우드'라고 나타나기 십상이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찾아보면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이름에 있는 H 를 굳이 발음하는 것 같다. 성이라도 원래대로 불러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의 이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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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1일 토요일

공연 여행.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하루를 자고 왔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 가서 주차를 하고 부산역에 도착하면 자동차에 실려 공연장으로, 리허설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잠시 앉았다가 곧 공연... 이런 루틴은 언제나 똑같다. 공연 후에는 늦은 저녁을 먹고 다음 날 거꾸로 순서를 밟아 집으로 돌아오는 패턴도 항상 같다.
그러니까 이런 것도 여행이라고 말하기에는 군색하다.

무덥고 습한 날씨였다. 하지만 그늘이 없는 야외공연이 아니고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실내공연이었기 때문에 더웠다고 불평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연 후에 혼잡한 상황에서 잠시 정신을 놓았다. 새 건전지를 넣어둔 보스 튜너를 그만 그곳에 놓아두고 와버렸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정리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언제나 흘리고 분실하고 다시 사기를 반복한다. '내가 그렇지 뭐.'


바다를 보며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재떨이가 마련되어 있어서 눕듯이 앉아 담배도 피웠다.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기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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