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4일 목요일

겨울비가 내렸다.


성남에서 공연을 했다.


비가 내리는 낮의 냄새가 좋았다. 

순이의 마음 씀씀이.


오래 잠을 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가장 깊이 잠들었었다.
잠결에 내가 자주 기침을 하고 몸을 뒤척였다.
그때마다 내 손과 팔을 꾹꾹 누르며 따뜻하게 와닿는 작은 물체를 느꼈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고양이는 한쪽 손(정확히는 발)을 침대 위에 올려둔채 선잠을 자고 있었다.
작년 초의 겨울에 독감에 걸려 진땀을 흘리며 자고 있었을때엔 가슴 위에 올라와 입술을 핥아주기도 했었다.
고양이 순이는 저 쬐그만 발로 내가 뒤척일때마다 넌지시 지긋이 토닥거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조그맣고 따신 체온이 고마왔다.

짐을 꾸리고 나가는 길에 순이가 좋아하는 통조림 깡통을 한 개 따줬다.
아직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 조심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그릇이 말끔히 비워져있었다.
나는 순이를 한참 동안 안아주었다. 순이는 좋아하는 소리를 점점 크게 내고 있었다.


2006년 12월 9일 토요일

환청에 시달렸다.

어떤 행동의 선택은 당연히 이후의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선택을 하고 선택에 의한 새로운 상황에 자기자신을 새롭게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그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숙고한 행동 그 자체는 물론, 상황을 무시한 것과 자유를 버려두고 돌보지 않은 선택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선택과 책임따위는 이제 그만 두고 그냥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으면서 적당히 살아보고 싶다. 

억지로 잠이 들었는데 환청에 시달렸다.
기분나쁘게 반복되는 타악기와 베이스의 분절음이 계속 들렸다.
처음엔 잠속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거나 뭔가를 집어던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너무나 현실적으로 들려오던 그 소리들은 스네어 드럼, 킥 드럼의 분별없는 음들이었다.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저음들도 분명하게 들려오며 귀를 괴롭혔다.
결국 다시 잠을 깨어 비틀거렸다.

다시 잠들었다가 지독한 꿈을 꾸고 또 깨어났다.
이번엔 살인을 하고 개를 죽이고 무엇인가를 훔쳐서 달아나는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한 시간 남짓 잠들었었다.
이대로 오늘 공연장에 나간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다시 자야했는데, 결국 밤을 새웠다.

2006년 12월 5일 화요일

겨울 맞이 목욕.


이틀 전에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은 고양이를 씻겨야겠다고 생각했었다가, 귀가 후에 내가 목욕을 하고 나니 모든게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워 자려고 했었다.
그런데 잠이 들 무렵 갑자기 욕실에서 풍덩하는 물소리가 나더니 순이의 비명이 들리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큰 소리로 야옹거리고 물에서 버둥거리는 소리가 들렸을때야 나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욕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빠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욕실의 불을 켜고 보니 고양이는 내가 욕조에 받아놓았던 물에 빠져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너무 난감해하고 불쾌해하는 표정으로, 도움을 청한다기 보다는 원망하거나 수치심의 표현처럼 들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나는 물에서 꺼내주는 것도 잊고 그만 킬킬 웃고 말았다. 순이는 내가 꽤 얄미웠나보다.

그 바람에 결국 새벽시간, 갑자기 고양이를 목욕시키는 일을 벌이게 되었다. 순이는 목욕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엔 항의를 하는건지 심술이 난 것인지 유난히 많이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