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촬영


낮에 어떤 촬영을 위해 너댓곡을 라이브로 연주했다. 만두를 꺼내기 위해 냄비 뚜껑을 막 열었을 때와 같은 온도와 습도가 용산 근처에 자욱했다. 촬영장소엔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지만 연주하는 동안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쇼의 설정에 따라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불편해 할까봐 제작팀 쪽에선 마음을 써주셨다. 음색과 톤 때문에 감쇄기를 써야 했던 민열이의 입장과는 달라서, 나는 작은 앰프와 소박한 드럼세트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촬영을 일찍 마쳤다.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모임


 삼십년 전 친구들과 낮에 만났다. 먼 곳에 사는 인호형이 제일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5월에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인호형과 미리 만났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를 실제로 삼십년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서로 반가와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과 낮이 바뀐 나는 낮 시간에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 점점 더 몽롱해졌다. 에어컨 가까이에 앉아서 반쯤은 졸고 있는 상태로 대화를 하다가 창밖을 보거나 빈 벽을 올려다 보거나 했다. 시간은 한쪽으로 진행한다던데, 살다보면 시간은 구불구불 지나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수 없이 많은 휘어있는 시간 중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고마워했다.

 


이지는 잘 낫고 있다. 거의 한 달 동안 이지의 혈당은 정상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중이다. 열두 시간마다 놓아줬던 인슐린 주사의 용량을 줄였고, 혈당이 완전히 정상인 날에는 주사 횟수를 하루에 한번씩으로 줄였다. 아직 더 오래 지켜보며 관리해줘야 하지만, 아팠던 고양이는 이제 잘 놀고 잘 먹고, 잘 잔다. 표정도 더 밝아졌다.

이지가 빠르게 나아진 이유는 시간과 용량을 정확하게 지켜서 사료를 먹일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치아흡수 병변을 앓아 이를 뽑아야 했었는데 그 수술 후부터 이지는 작은 알갱이의 건조사료를 삼키듯 먹고, 그것으로는 먹는 양이 부족하여 아내가 매일 손으로 사료를 떠먹이고 있었다. 수 년 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건조사료든 캔사료든 이지는 사람이 먹여주는 것을 받아 먹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덕분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을 때에 알맞은 양과 시간 간격을 잘 맞춰 하루에 네 번씩 밥을 먹일 수 있었다.

이지를 돌보느라 두 달 가까이 외출 한 번 한 적이 없는 아내는 잠이 모자라다. 밤중엔 아내를 자도록 하고 내가 이지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잘 받아 먹어주고 있는 고양이에게 고마워하고, 낫고 있어서 또 고마워했다.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새 만년필


 새 만년필이 도착했다. 금요일 아침에 문자를 받고 미리 주문해뒀던 펜이다. 지난 달 말일에 국내에 발매되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기도 전에 품절되었던 스페셜 에디션으로, 재입고가 될 때에 알려주기로 했던 분 덕분에 이번에 가까스로 살 수 있었다.

그동안 펠리칸에서 내놓았던 흰색 캡에 마블무늬 펜들을 구경하고 직접 만져보기도 했었지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이 펜을 쥐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데몬 펜도 처음엔 끌리는 것이 없었다가 M205 Apatite를 사고 난 뒤에 마음이 변했었다. 내 취향은 견고하지도 않고 그 기준도 없는가 보다.


이제 나는 "앞으로 만년필을 더 사는 일이 없을 것" 따위의 말은 하지 못하겠다. 그런 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한 개씩 사버린 것이 열 자루가 되었다. 이번 M200 파스텔 블루 펜은 눈 깜짝할 사이에 거의 모든 곳에서 품절되어버렸기 때문에 살 수 없으면 뭐 할 수 없지, 하고 있었다. 지난 해에 한 번 거래했던 적 있는 곳에 그냥 한 번 구매시도를 했던 것인데, 그곳 사장님이 배려해주어 이 펜을 살 수 있었다. 올해에 사버린 두번째 만년필이다. 작년에 샀던 M200 Café Crème 펜을 손에 넣게 된 것도 우연이 겹쳐 운 좋게 새것을 구입했었다. 그 펜은 독일에서 발송한다더니 정말 오래 기다린 끝에 도착했다. 겨우 잉크를 넣어 글씨를 쓰는 도구일 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며 소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