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6일 토요일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왕복 여덟 시간 운전하는 일이, 이젠 솔직히 힘이 들었다. 리허설을 마친 뒤에 자동차 안에서 삼십분 동안 얕은 잠을 잤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함께 갔던 아내는 그곳에 전시 중이었던 사진전을 보고 주변의 거리를 산책하기도 했다. 나는 도로와 공연장 대기실 외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하루를 보냈다.


공연은 두 시간을 넘게 이어졌다. 나는 공연의 절반 동안은 높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했다. 의자가 준비되었던 덕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덜 힘들어할 수 있었다.

부친의 입원과 수술을 위해 병실에서 이틀 밤을 새웠던 이후, 집에 돌아와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고약한 꿈을 꾸고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한 적이 많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몸이 힘든 것인지 체력이 부족하여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겪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안정을 취하고 쉬고 싶었다.

공연을 마친 후 곧 출발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엔 자정이 넘었다. 다음 날 아침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물도 마시지 않아야 했다. 완전히 지쳐서 아침까지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나쁜 꿈을 꾸고 새벽에 깨어나버렸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는 몽롱한 상태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내 시력이 전 보다 더 나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중에 운전하는 일이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눈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었나 보다. 새 안경을 사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달의 일정들이 거의 끝나가고, 이제 곧 십이월이 된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달려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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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철원에서 공연.

 

지난 달 마지막 날에 철원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두어 주 넘게 시간이 흘렀다.

공연은 월요일이었고, 이틀 전 밤중에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었기 때문에 거리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원래의 연주할 목록을 전부 바꾸어 어쿠스틱 기타 위주로 차분한 곡들을 새로 골라 연주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서 공연 전체를 연주해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작은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리는 실리콘으로 만든 노란 리본을 악기 가방에 매달고 다닌지 여덟 해가 지나가고 있다. 악기 가방에 붙어있는 노란 리본이 유난히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문경에서


도로가 막힐 것을 걱정하여 서둘러 문경으로 출발했다. 오래 운전하여 멀리 가서 연주하고 바로 돌아오는 일정일 땐 속이 더부룩한 것이 싫어 거의 굶는다. 밥을 먹지 않고 다녔던 덕분에 몸은 가벼웠는데 밤중엔 정말 배가 고팠다. 나는 내가 원해서 굶었다고 하지만 오랜만에 함께 따라왔던 아내는 나 때문에 밤까지 같이 굶어야했다. 그대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첫끼를 먹고 아내가 고르는대로 간식을 사줬다. 집에 도착할 때 보니 간식들은 전부 빈 봉지만 남아있었다.

옷을 잘 챙겨 갔었다. 분명 해가 지면 추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 세 시에 리허설, 네 시 반에 공연이라는걸 뒤늦게 알고 셔츠 한 장만 입고 무대에 올라갔다가 추워서 덜덜 떨었다. 리허설을 할 땐 더웠었는데... 하며 억울해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오래 겪어보았는데도 얻는 교훈과 지혜가 없다니. 손이 시려워 감각이 없었다.

리허설 직전에 오래 전 학교 학생이었던 정석원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 같은 무대에서 앞 순서로 연주하고 동료들과 함께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로 어긋나 만날 수 없었지만 반가와서 문자를 남겨줬다는 그에게 고마왔다. 나는 그와 만나지 못하고 지냈지만 인터넷으로 그가 활동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고 있었다. 연주도 잘하고 마음이 고와 늘 기억하고 있는 친구였다. 오래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적어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낮에 나뭇잎들이 물드는 것을 보며 리허설을 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보니 후드 틈새에 낙엽이 끼워져 있었다. 너는 어디에서부터 타고 온거니, 하고 조심히 꺼내어 화단에 앉혀줬다.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아내의 그림


 아내가 집에서 그려왔던 그림들 중 한 점이 그림전시회의 벽면에 걸렸다.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쌓아둔 그림들 틈에 있던 고양이 에기의 초상이 전시되어있는 곳에 아내와 함께 갔다.

아내의 그림은 공간 안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마땅한 조명도 없이 걸려있었다. 큐레이터 역할을 맡은 그림 선생이 처음엔 아내의 그림을 더 좋은 위치에 전시하도록 했었는데 어느 남자노인이 그 자리에 제것을 걸겠다며 성을 내고 떼를 써서 아내가 양보해줬다고 했다. 잘한 일이다. 그런 정도의 내면을 가진 분의 소원 쯤은 들어줘도 된다.

후미진 구석 그림자 진 벽 위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고양이 에기가 생전 모습 그대로 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내의 그림은 그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나는 그림 옆에 쑥스러워하는 작가를 서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붓을 잡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많았지만 아내는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일부러 말을 꺼내어 그림에 대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오가다 그림이 보이면 잠깐 서서 구경하곤 했을 뿐. 그의 기억, 감정, 느낌들이 꽃이 되거나 고양이로 변하여 여전히 방구석 여기저기에 놓여져 있다. 지난 주엔 큰 화방에 들러 캔버스와 붓 몇 개를 사고, 나는 연필 세 자루를 샀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