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0일 월요일

알랑 카론, 듀엣 앨범


 캐나다의 베이시스트 알랑 카론은 좋은 연주자이고 선생님이며 작곡가이다. 그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의 연주 영상 대부분은 여섯줄 베이스로 16비트 슬랩 테크닉을 쉴 새 없이 보여주거나 악기 편성이 가득차서 세고 질량감이 높은 라이브들이었다. 이전에 그의 앨범 몇 장을 들어보았던 나의 인상은 그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2007년에 나왔던 베이스와 피아노 듀엣으로만 구성한 이 앨범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 연주자의 참모습을 구경한 것 같았다. 열 두 곡 중 두 곡에서는 멀티 연주자 Jean St-Jacques의 비브라폰과 둘이 연주했고, 나머지 열 곡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번갈아 연주한 앨범이었다. 베이스와 건반악기의 듀엣이라니, 바람직하다. 알랑 카론은 플렛리스 베이스로 연주하고 있는데, 건반과 베이스 두 악기만의 사운드로 한 시간 십오분 동안 마음껏 스윙한다. 모든 베이스 라인이 아름답고 솔로의 구성은 풍부하다. 이렇게 좋은 연주자였다니, 감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열 곡은 알랑 카론 자신의 오리지널, 나머지 두 곡은 찰리 파커의 스탠다드와 이반 린스의 곡이다. 셀린 디온의 앨범에 참여했던 멀티 연주자 - 키보드, 비브라폰,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Jean St-Jacques 가 버드의 Confirmation를 함께 연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캐나디언 피아니스트 François Bourassa, Lorraine Desmarais, 베네수엘라 피아니스트 Otmaro Ruíz 와 연주한 곡들도 훌륭했다. 내가 뽑고 싶은 가장 좋은 넘버 두 곡은 캐나다의 전설같은 피아니스트 Oliver Jones와 함께 연주한 Strings of Spring과 Scrapper이다. 클래시컬이나 재즈 쪽의 거장 피아니스트들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되면 그 사람 자체가 피아노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교하지만 서두름이 없고 날이 서있는데도 따뜻하다. 피아니스트들의 맞은편에서 음반 전체의 사운드를 결정해주고 있는 알랑 카론의 음악적 능력은 대단하다. 그는 어째서 이 앨범 이후 다시 이런 시도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따스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자려고 누웠을 때에 이 앨범을 머리맡에 틀어두었다가 몇번 낭패를 보았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잠이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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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여름을 다 보냈다.

 


아주 더웠던 여름을 다 지나보냈다.

내 기억 속의 제일 더웠던 여름은 아니었지만, 올 여름은 무덥고 뜨거웠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아내의 부친이 다치셨고, 우리는 다시 응급실, 병원 입원, 수술로 이어지는 일들을 겪었다. 그렇게 두어달을 다 보내고 장인을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환자의 곁에서 긴 병원생활을 했던 아내는 계속 먼 거리를 다니며 부친을 돌봤다. 아내는 그렇게 계절 하나를 다 보냈다.

그리고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내 아버지가 다시 병원에서 진료,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또 한 번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내가 내 부친의 곁에서 병원에 며칠 있게 되었다. 올 여름 아내와 나는 병원에서 환자보호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코로나19 검사를 번갈아 받았다. 예약되어있던 날짜가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러 서둘러 잔여백신을 찾아 1차 접종을 했다. 그 사이 밴드의 리더님과 매니저님은 감염병에 확진되어 보름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했다. 나는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코로나19 검사를 한 번 더 받은 뒤 다음주 월요일부터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서 사흘을 보낼 예정이다.

사람 두 명이 가족들의 일로 자주 집을 비우는 동안 고양이 가족들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디고 보내줘서 고마왔다. 이 블로그를 만든 후에 글을 가장 조금 남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화기에 자주 적어두는 메모는 온통 할 일, 해야할 것, 하지 못한 것들로 범벅이 된 짧은 기록들 뿐이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짧고 아쉬울 가을이 좋은 계절로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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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떠나고 변하는 것들.

 



고양이 꼼이가 우리 곁을 떠난지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작년 오늘, 비는 정말 추저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재가 되어버린 꼼이를 작은 단지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는개와 같은 비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함께 살고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더 애틋하여 날마다 어루만지고 껴안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겠지만, 매일 나는 이제 죽어서 곁에 없는 내 고양이 순이와 꼼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날마다 고양이들이 놀던 곳, 숨어있던 곳, 장난치던 구석, 잠자고 있던 자리를 청소하면서 이제는 만져볼 수 없는 손끝의 느낌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것은 감정의 남은 부분일 뿐, 사실은 그 감촉도 느낌도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사람을 바라보던 예쁜 눈망울이나 활력이 넘쳤던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의 모습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자주 '고양이 액체설'과 같은 Meme으로 고양이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공유하며 재미있어하고 귀여워 한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에 반응해보지 않았다. 고양이가 숨을 멈추면 제일 먼저 몸이 축 늘어지면서 정말로 뼈가 없는 액체처럼 흘러내린다. 반듯하게 조심히 눕혀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게 굳어져버린다. 미리 힘주어 눈을 감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것을 경험하면 고양이 액체설 따위의 문장만 보아도 바삐 화면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

모든 생명의 생과 사는 어처구니 없고 허망하다. 생사의 찰나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삶의 가치라던가 죽음의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전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내가 병원신세를 졌던 반년 전에, 심하게 아파보았던 이후에도 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더 달라진 것 같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던 나는 2016년 그 여름부터 거의 자전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고양이 순이가 암 판정을 받은 후에, 내가 자전거 타기에 미쳐서 몇 년을 보내며 고양이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이의 병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고양이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더 이상 자전거 위에 앉아 땀을 내며 바람을 쐬는 것이 즐겁지 않아졌다.
꼼이가 갑자기 아프기 불과 몇 주 전에는 영상을 찍어뒀었다. 유난히 민첩하고 운동신경이 좋았던 그 고양이가 높이 도약하고 어려운 동작으로 뛰어내리는 장면들이 담겼다. 그랬던 고양이 꼼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팠고, 병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다. 순이가 죽은 뒤에 집안의 고양이들을 자주 병원에 데려가 검진하고 미리 건강을 확인하며 지냈는데도 꼼이가 병들고 죽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나는 이제 집안의 고양이들이 우습고 재미있는 행동을 하여도 구태여 영상을 찍어 남기거나 하고싶지 않아졌다. 그냥 그 순간 웃어주고 다가오면 끌어안아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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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화요일

John Pizzarelli, Better Days Ahead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Better Days Ahead를 듣고 있다. 제목을 보고, 아직 부제로 붙어있는 내용을 읽기 전에 나는 이미 이 음반이 팻 메스니의 곡을 연주한 앨범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밤에 잠을 청하며 무선 이어폰으로 듣고 있을 때에는 리버브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따위의 불평을 하며 듣다가 잠이 들었었다. 오늘 깨어나 커피를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스피커 앞에 앉아 다시 들으면서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에 치과수술을 위해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도 도로 위에서 계속 듣고 있다가, 지금 굳이 블로그에 써두고 있는 중이다.

작년 4월에, 아흔살이 넘었던 그의 부친 버키 피자렐리가 그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 지독한 전염병 기간 중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다. 유명한 사람들도 판데믹 기간 동안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부친은 오래 활동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고, 아흔이 넘도록 연주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음악가였다. 존 피자렐리의 새 앨범 표지는 기타를 안고있는 그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나는 그 앨범 자켓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의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다고 혼자 상상해봤다.

솔로기타로 연주했고 모두 열 세곡이 담겨있는 이번 팻 메스니 특집(?) 앨범은 훌륭하다. 그냥 훌륭한 뮤지션의 음악을 커버한 수준이 아니라, 팻 메스니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던 것이 분명한 이 기타리스트의 예술적인 해석이 잘 담겨있다. 그는 이 앨범에서 대부분 팻 메스니 그룹으로 발표됐던 곡들을 연주했는데 그룹 편성으로 이루어진 원곡의 섬세한 부분들을 빼먹지 않으면서도 한 개의 기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재미를 고루 담았다. 예를 들어 Last Train Home, April Wind/Phase Dance와 같은 곡에서는 베이스 라인과 특정한 화음들이 아주 잘 살아있는데, 그것은 피자렐리가 그의 7현 기타를 멋지게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저음 한 줄을 추가하여 일곱줄로 되어있는 기타를 사용한 것은 그의 부친 Bucky Pizzarelli가 먼저였다. 버키 피자렐리는 같은 고향인 뉴저지 출신 선배 기타리스트 George Van Eps로부 7현 기타를 배우고 계승했다.

과거의 Pat Metheny Group 편성이 아닌 곡으로는 앨범 Secret Story에 실렸던 Antonia와 작년에 발매된 팻 메스니 앨범의 타이틀 곡인 From This Place가 수록되었다. 좋은 작곡에 훌륭한 원곡, 그리고 아름다운 재편곡과 해석으로 아주 듣기 좋았다.

존 피자렐리는 수십년 동안 다른 거장들의 음악을 커버하여 연주해왔다. 냇 킹 콜,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등의 음악을 연주한 앨범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음반들을 그다지 꾸준히 듣고있지 않았다. 나의 취향 탓이겠지만, 어쩐지 팻 메스니 특집인 이번 앨범은 유난히 밀도가 높고 좋아서, 아마도 앞으로 계속 듣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아이폰에 저장해뒀다. 애플뮤직에서 무손실 음원으로 지원하고 있으니까 유선 헤드폰이나 오디오 장치로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음반 덕분에 이어서 Pat Metheny Group의 Still Life (Talking) 앨범을 듣고 있다. 애플뮤직에 팻 메스니 그룹 시절의 부트렉들이 계속 업로드 되고 있는데, 예전과 달리 그런 것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 잘 만들어 놓았던 본래의 앨범들이 완성품처럼 느껴지고, 그 사운드를 좋은 음질로 다시 듣거나, 좋은 연주자가 잘 해석해놓은 새 앨범을 듣고 있는 것이 지금은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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