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9일 금요일

Chrlie Parker Jam Session


 나는 이 음반을 26년 전에 샀다. 아무 정보 없이 음반가게에서 시디를 고르다가 겨우 네 곡이 들어있는 이 앨범을 보자마자 얼른 구입했다. 겉면에 어마어마한 연주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녹음 시리즈에 대해 읽고, 나머지 음반들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 후에는 그것에 대해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생각이 나서 시디를 꺼내어보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디가 훼손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시디의 뒷면에 흠집이 크게 났는데 첫번째 트랙에서 계속 튀는 잡음이 들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 음반은 그동안 컴퓨터에 옮겨 담아둔 적이 없었다. 아마 시디에 상처가 난 것이 먼저였고, iTunes 가 등장한 것이 그 이후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혹시 음악파일로 변환을 하면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나머지 곡이라도 음원파일로 바꾸어 컴퓨터에 넣고, 애플뮤직에 이 음반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없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계속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만 검색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Norman Granz 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애플뮤직에 이 녹음의 전체 시리즈가 쨘, 하고 나타났다. 급히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선명한 모노 사운드가 멋지게 들리고 있었다.

이 녹음은 한반도가 전쟁으로 망가지고 있던 1952년 7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었다. 노만 그란쯔는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연주자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이 연주자들을 동시에 모아놓고 녹음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레코딩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재즈의 전설들이고, 그 무렵에도 이미 각 악기의 최고들이었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스스로도 꽤 자랑스러웠던지 노만 그란쯔가 쓴 음반해설을 보면 신이 나있다. 애플뮤직에 음원들이 모두 있는 덕분에 며칠은 이 시리즈들을 계속 듣고 있는 중이다. 앨범 표지 그림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시디보다 조금 못난 것을 빼면, 곡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을 모두 잘 적어놓은 점도 좋았고, 내 시디보다 음질도 좋았다.

애플뮤직에서 찾은 같은 앨범.

그래서 플라스틱 상품인 내 오디오시디는 기념품처럼 벽 한 구석에 다시 놓여지고, 69년 전의 기념할만한 녹음을 방금 다운로드한 음원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기분좋게 듣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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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 시리즈들을 모두 듣고 보니 네 장의 디스크마다 블루스가 있고, 모든 연주자가 한 곡씩 골라 솔로를 진행하는 긴 발라드 메들리도 두 트랙이나 더 있었다. 누군가 도중에 엎질렀는지 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여유롭게 연주하고는 있지만 무서운 실력자들끼리의 긴장감도 느껴진다. 템포가 빠른 곡에서 각자 네 마디씩 순서대로 주고받는 솔로는 매우 즐겁다. 어느날 오후 내내 옛 재즈를 쉬지 않고 듣고 싶다면 추천할만하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

iPod Classic.

 


1월 중순에 아이팟 클래식을 다시 사용해보려고 했다가 컴퓨터에 있는 음악들을 제대로 채워넣지 못했었다. ( 아이팟 얘기 )

오래 사용하고 있는 내 아이폰의 전지가 점점 쉽게 방전되고 있기도 했고, 음악을 들을 때에는 방해받지 않으며 음악만 듣기 위해 이 구형 아이팟을 다시 쓰고싶었다. 지난번 실패 이후 곰곰 생각하다가 내가 애플뮤직을 사용한 이후 컴퓨터에 담아뒀던 음악파일들이 iOS 기기들과 동기화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애플은 맥오에스에서 iTunes를 없애고 Music 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악을 관리하도록 해놓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음악들은 모두 어딘가에 있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르는) 애플의 서버에 올려져 있었고, 그것을 다시 모두 다운로드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

문제는 파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맥의 내장 하드디스크에 보관했던 음악파일들은 백업 하드에 따로 옮겨둔 다음 모두 지웠다. 그리고 Music 앱에서 내 파일들을 전부 다운로드 하기 시작... 꼬박 이틀동안 파일들의 대부분을 다시 내려받았다. 다시 아이팟 클래식을 연결하여 동기화를 했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음악파일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재즈만 옮겼을 뿐인데 가득 차버렸다.

SSD 시대에 하드디스크로 수 많은 작은 파일들을 전부 내려받고, 그것을 다시 오래된 소형 하드디스크로 옮겨 담아야 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납득할만 했다. 그런데 맥 오에스와 옛 iTunes 를 계승한 Music 앱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우선 모든 동작이 느리고, 뭔가 불합리했다. 같은 앨범의 다른 버젼을 애플뮤직에서 구독했을 때에 내 파일을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수 많은 에러가 속출하고 음악의 정보는 뒤섞였다. 애플뮤직에서 구독하고 있는 음원들은 어차피 아이팟 클래식에서 재생할 수 없다고 해도 원래의 내 파일들은 올바르게 보관되었어야 했다. 그 음원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CD들에서 모두 리핑해뒀던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니긴 하지만 나름 긴 세월 동안 완벽하게 정리해뒀던 것들이는데, 쟝르의 명칭도 멋대로 바뀌어버렸고 어떤 파일들은 정보가 누락되어 트랙 넘버가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또, 컴퓨터에 새로 넣어둔 음원들은 제때에 클라우드로 업로드되지도 않았다. 나는 백업해뒀던 내 파일들을 다시 가져와 '보관함에 추가'하는 작업을 일일이 수동으로 하여 바로잡아야했다. 역시 걸핏하면 에러, 속도는 물론 느리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준다고 해도 매달 돈을 지불하는 서비스인데, 이것은 너무 바보같은 체계이거나 아니면 그들 중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애플은 지난 이십 년 동안 너무 규모가 커져버린 것 아닐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잘 해내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애플을 흉보며 동기화를 마친 아이팟을 손에 들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불만들을 금세 잊어버렸다. 12년이나 지난 옛 기계는 새것처럼 잘 작동했다. 여전히 아이폰보다 음질이 더 좋았다. 갑자기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그래, 애플이 옛날에는 언제 뭐 멀쩡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고.





2021년 2월 23일 화요일

치과 수술.


나는 치과 의자에 누워 여러 번의 마취주사를 입안에 맞은채 기다리고 있었다. 입천장을 찌르는 주사는 괜찮았는데, 주사바늘이 혀를 두 세 번 찌를 때에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병원에 환자손님이 조금 많아 보였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나는 마취주사를 맞은 후 삼십분이 넘도록 혼자 누워 있었다. 이윽고 CT 사진 을 한 장 찍은 다음 다시 십여분을 기다린 후 수술이 시작됐다.

나는 주사라던가 병원을 무서워 하는 겁쟁이이다. 처음 경험하는 수술때문에 많이 겁이 났다. 지난 달에 픽스쳐 한 개를 심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이번에도 일부러 수술에 관련된 것들을 읽어보고 수술 동영상도 몇 개 찾아서 미리 보아뒀다. 알고나면 조금 덜 두렵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잇몸을 절개한 뒤 의사는 내 윗 잇몸뼈 측면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내 상악동 막을 뼈로부터 박리한 뒤에 골이식재를 채워넣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도 오래 걸렸다. 아주 한참동안 내 뼈에 뚫어놓은 구멍 안으로 골이식재를 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의사는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엄청 많이 들어가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흘렀다. 직원 한 분이 나에게 CT 사진 한 장을 더 찍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잇몸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상태로 걸어다닌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 CT 촬영 후, 원장님인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두 개의 임플란트 fixture를 더 심겠다고 말했다. 나는 '안돼요' 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이미 아까부터 벌리고 있던 입 안에 수술도구들이 들락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아무 말도 할 수는 없었다. 뼈이식을 많이 해야 했던 맨 끝 부분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두 개만 먼저 하겠다고 의사는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드릴 소리가 이어졌다. 직경 3.8밀리에 길이 10밀리짜리 한 개와 직경 4.3밀리에 길이 12밀리짜리 한 개가 다시 내 뼈에 박혀있게 됐다.

잇몸을 꿰메어주는 것도 조금 오래 걸렸는데 그것이 내 기분 탓인지 아니면 너무 긴 시간 누워서 턱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CT 사진을 한 장 더 찍고, 직원 분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었다.

집에 돌아와 오뚜기 스프를 끓여 먹고, 아내가 만들어준 고구마 샐러드를 먹었다.

내 침대 위에는 고양이 이지가 아주 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침대에서 내려가주도록 엉덩이를 떠밀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베게를 높이 하고 한 시간 쯤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이 오는데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몸이 가려워서 일어나버렸다. 내 등과 가슴 전체에 심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얼음팩으로 문대어보기도 하고 연고를 발라보기도 했는데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더니, 두어 시간 후에 두드러기가 저절로 사라졌다. 수술한 부위는 뻐근한 정도의 느낌이더니 마취가 풀린 후부터는 신나게 통증이 밀려왔다. 얼굴은 한쪽만 퉁퉁 붓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나고 춥게 느껴졌다. 욱신거리는 느낌을 잊기 위해 머리맡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두고 음악을 들으며 한참 누워 있었다.


2021년 2월 11일 목요일

섣달 그믐.

 


새벽에 깨어 계속 뒤척이다가 거의 못 잤다.

무슨 꿈을 꾸었었고 꿈 속에서 나는 아주 고된 일을 겪었었다. 밤중에 잠들기 전에 우연히 16년 전 고양이 순이의 동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의 순이는 몸집이 작은 어린 고양이였다. 순이는 화면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천진한 표정으로 장난을 치고 카메라에 얼굴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 그 영상을 찍고 있었을 때의 기억이 살아나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작년에 고양이 꼼이가 세상을 떠나고, 벌써 순이가 죽은지도 5년째가 되었다. 잊고 지낼만 한데도 하루에 몇 번씩 더 이상 곁에 없는 고양이 생각이 난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종일 맑지 못한 정신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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