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7일 금요일

울산에서 공연.


이 날은 공연장에 도착하여 처음 소리를 내어볼 때부터 뭔가 좋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소리를 바꾸어 보았다. 어쩐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스트링을 교환했다. 공연시작 두 시간 전이었다.
줄의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새줄로 바꾸어 나의 기분이라도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두 시간 동안 연주를 할 때에 소리가 좋지 않으면 세 배, 네 배로 피로를 느낀다. 필요없는 힘이 들어가 손끝을 다칠 수도 있다.
그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객석이 관객으로 메워졌던 때문이었는지 편안하게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덥고 습한 공기가 코 안에 들어왔다.
울산에는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2017년 7월 6일 목요일

금요일.


내 의자에는 바퀴가 있다.
고양이 까미는 항상 의자 바로 옆에서 자고 있거나 그루밍을 하고 있다.
의자를 무심코 밀며 일어나면 고양이의 꼬리나 발을 의자의 바퀴로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언제나 염려되어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의자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까미는 까만 고양이여서, 한 밤중에는 바닥에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쉽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고양이가 잘 보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이미 잠을 깬 고양이가 기지개를 펴더니 소란스럽게 칭얼대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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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4일 화요일

마포에서 공연.


그 극장이 개관하던 때에 그곳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사이 몇 번은 연주를 하러, 몇 번은 다른 공연을 구경하러 갔었다.
10여년 밖에 안되었는데 내부가 많이 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누군가가 무관심하거나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인가 보다, 했다.

공연에서 연주할 곡들은 열 여섯 곡이었다. 긴 시간일 줄 알았는데 끝나고 보니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

염리동길에서 저녁식사 후 들렀었던 커피집의 커피가 아주 좋았다. 그 근처에 가게 되면 다시 찾아가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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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목요일

목요일.



순이가 떠난지 11개월이 되었다.
밤중에도 생각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생각했다.
그렇다고 순이의 재를 담아놓은 단지를 꺼내어 손으로 문질러본다거나 새삼 사진을 열어 하염없이 보고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루도 어김 없이 고양이 순이를 생각하고 그리워 한다.

아침에 소음을 내는 사람들은 지난 해에 이어 매일 정확한 시간에 다시 음악소리와 괴성 지르기를 시작했다. 읍사무소의 공무원에게 다시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마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보지만 다른 수가 없다. 만일 그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여름이 끝날 때 까지 내가 아침 시간을 망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국도를 달려 운전을 오래 했다. 애플 뮤직에서 새로 나온 음악들을 들었다. 리마스터를 거친 옛 음반들도 들었다. 재즈를 무작위로 틀어놓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날 했어야 했던 일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내지 못한다. 언제나 마음의 짐이 있는 것을 감당하기 싫은 날도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조용한 길을 달리고 달렸다. 그 평화로움이 낯설게 여겨졌다.

컴퓨터와 전등을 끄고 자려고 누웠을 때 검은 고양이 까미가 내 발 곁에 오더니 발목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 불편할텐데 항상 내 곁에서 자다가, 아침이 밝으면 아내의 곁에 가서 선잠을 잔다.
어린 고양이 덕분에 순이를 잃은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생명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은 양쪽 모두 불성실하고 불합리하다.
어린 고양이를 살짝 들어올려 침대의 푹신한 자리에 눞혔다.
고양이가 그르릉 거리며 편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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