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8일 수요일

올 여름의 사치


십 년이 넘게, 나는 휴가를 가져보거나 놀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운동을 한다며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사치로 여기고 지냈다.
그 결과 휴가라는 이름을 붙인 시간을 마련한 적은 없지만 결국은 피곤해서 쉬어야했고, 만성 스트레스로 괴팍한 성격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운동으로 땀을 흘린 것 보다는 몸살과 위경련으로 식은땀을 흘린 횟수가 더 많았다.

올 여름의 사치는 어느 공연장 대기실에서 상훈씨의 기습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자전거 이야기에 늘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내가 그날 아주 솔깃하게 상훈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상훈이라는 인물이 아무래도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 날 부터 시작되어서, 자전거에 대하여 검색하고 읽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3주 만에, 아내의 손목을 잡고 끌다시피하며 함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아내 것 까지 두 대를 덜컥 사왔고, 그날 밤 일을 마친 직후 부터 야간 라이딩을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비가 종일 내렸던 며칠을 제외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쏘다녔다.
밤중에는 보통 이런 모습을 하고 출몰하여, 불꺼진 남양주 도로를 벗어나 한강의 다리 갯수를 세어보며 돌아다녔다.

강을 건너다니며 잠시 쉬기도 했고,


집에 돌아올 때 즈음이면 해가 떠오르는데, 서울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보이는 일출 장면에 눈을 빼앗겨 녹조 가득한 강물에 몸을 담글뻔 하기도 했다.

올 여름의 사치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몇 주 만에 몸의 컨디션이 항상 좋아진 상태가 되었다. 보상을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체중도 조금 줄고 뱃살도 제법 없어졌다. 뭐 이런 재미있는 것이 다 있었냐며 계속 좋아하고 있는 가운데, 악기 연습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어서 겨울이 와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베이스 초보자가 될 지도 모른다.

악기 연습을 게을리했던 대신에,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때에 더없이 몸이 가벼워졌다. 피로해서 픽 쓰러져 잠드는 일은 점점 없어졌고, 조금 격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후 깊이 단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핑계를 더 길게 쓸 수도 있으나 군색하고 궁색해지므로... 아무튼 위와 같은 타당한 핑계로 한 달 반 만에 덜커덕, 이번엔 로드 자전거를 사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십여 킬로미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체감 기온 40도라는 요즘의 날씨에, 대낮에 어지러워하며 돌아다니기도 하는 생활을 하고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올 여름의 이변이고 나의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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