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일요일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점점 더 무거워졌다.
몇 년 동안 써왔던 MXR의 컴프레서는 떼어냈다. 그 자리에는 Moollon의 컴프레서를 놓아두기로 했다. 이가 빠진듯 비어버린 자리에 임시로 고양이 순이가 그려진 양철통을 올려두었다. 연주하러 다닐 때 가방이 더 무거워지고 있다.
아직도 필요한 것들이 더 있는데,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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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2일 금요일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Hollywood Bowl
공연 리허설을 마친 후 관객이 입장하기 몇 분 전, 멤버들과 함께 객석의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보았다.
어느 노인이 노란 옷을 입은 스탭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인솔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며 숨가쁜 목소리로 인사를 해줬다. '오랫동안 아주 많은 음악인들을 여기에서 보셨겠군요'라고 물었더니, 잠시 뒤돌아 함께 무대를 내려다보며 얘기를 해줬었다.
어느 노인이 노란 옷을 입은 스탭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인솔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며 숨가쁜 목소리로 인사를 해줬다. '오랫동안 아주 많은 음악인들을 여기에서 보셨겠군요'라고 물었더니, 잠시 뒤돌아 함께 무대를 내려다보며 얘기를 해줬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많은 음악들을 들었지. 젊을 때의 내 첫번째 일거리는 이 꼭대기에서 무대로 돌진하는 녀석들을 막는 일이었다네... '
웃음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이 잡히면서 두 눈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노인과 마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그의 추억 속엔 관객석의 의자들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가득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웃음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이 잡히면서 두 눈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노인과 마주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그의 추억 속엔 관객석의 의자들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가득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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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가득했다.
명동의 어느 곳, 서대문의 거기, 대학로의 그곳이라는 식으로 약속을 하고 그 장소에 도착을 하게 되면, 어느 쪽이든 서두를 것 없는 처지였으므로 자리에 뭉개고 앉아 음반을 골랐었다. 돈이 없었으니 가게를 나올 때에 손에 집어든 것은 언제나 한 두 장 뿐이었다고 해도.
음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재촉해야하는 여행객의 심정은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았다.
이제 내 나라에서는 없어져버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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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0일 수요일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2009년 5월 16일 토요일
2009년 5월 14일 목요일
2009년 5월 4일 월요일
2009년 5월 2일 토요일
전주에 다녀왔다.
지난 밤에는 옮겨 적을 것도 많고 읽을 것도 많았다.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 겨우 잠들었다.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 열 시 조금 넘어서 고속도로를 향해 출발했다.
엄청난 정체 끝에 오후 세 시가 되어 전주에 도착했다. 오래 전 가봤던 전주의 모습은 다 어디가고, 낯선 거리와 생소한 건물들이 보였다.
국제영화제의 공연이라고 하기엔 소박한 무대, 용량이 작은 PA 시스템을 보고 리허설을 할 때엔 걱정을 했었다. 역시 부족한 사운드와 엔지니어링 덕분에 연주하는데에는 애를 먹었다.
그러나 나름 성의껏 준비해준 앰프들과 열심히 일해준 스탭들의 힘으로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전주에서의 콩나물국밥과 돌솥비빔밥은 정말 정말 정말 맛있었다. 그 음식들을 생각하니 지금 이 시간에 갑자기 몹시 배가 고파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식값이 너무 비싸졌다는 느낌과, 맛과 모양이 화려해져버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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