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4일 토요일

잉크 넣기


 만년필들을 매일 고루 번갈아 쓰고 있으니까, 잉크를 새로 넣는 주기가 비슷하게 되었다. 배럴의 크기에 따라 M200 펜들이 매달 첫 주, M600 펜들은 40여일 정도에 한 번씩이다. 컨버터 방식의 펜들도 엇비슷하게 잉크를 넣는 주기가 겹친다. 

아무리 귀찮아도 펜에 잉크를 넣을 때엔 물로 세척하고 펜을 물에 담그어 두었다가 잘 말리는 과정을 꼭 지킨다. 중고로 샀던 펜 한 개는 집에 가져온 다음 아주 오래 청소하고 닦아야 했었는데, 피스톤이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잘 세척하고 닦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머지 않아 펜을 분해하여 배럴 안에 실리콘 그리스를 발라야 할 것 같다.

전 주인이 그 펜을 평소에 잘 세척하기만 했어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유일하게 중고로 샀던 그 M200 을 겪은 뒤에 다른 잉크를 넣을 때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말끔하게 세척하고 잉크를 새로 담는다. 이틀 전엔 골든 베릴을, 오늘은 카페 크렘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다.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깜이는 여덟살이 되었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언니 고양이 두 마리를 보살피느라 아무래도 덜 신경을 썼더니, 깜이는 그것이 섭섭하였는가 보다. 자주 떼를 쓰고 더 투정이 많아졌다. 깊은 밤엔 내 곁에 와서 훼방을 놓으며 야단을 친다. 그 때마다 못 본 체 하지 않고 놀아주고 달래어 주고는 있지만, 나도 여기저기 아프다. 좀 편안히 앉아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것을 고양이에게 설명하기엔 약간 구차하기도 하고, 고양이가 내 사정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아서 뭐라고 말하진 못했다. 모든 응석을 다 받아줄 수는 없으니까 눈을 맞추며 쓰다듬어 주면서 내 마음을 알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안성에서 공연


 토요일 공연은 몸이 아픈 상태로 해야 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허리에 주먹을 대고 문지르거나 두드렸다. 파스를 두 장 붙이고 있었지만 통증이 낫진 않았다.

공연 직전에 커피를 한 컵 가득 마셔버렸다. (맛있는 커피였다) 그 때문에 서너 곡 지날 무렵부터 오줌이 마려웠다. <둘이서>는 본래 처음부터 끝까지 베이스가 멜로디를 연주해야 하는 곡인데, 밴드리더님은 그 노래를 단순한 기타 반주로만 하길 원했다. 그 노래가 막 시작되었을 때 나는 느릿느릿 무대 뒤로 빠져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기실 화장실에 다녀왔다. 볼일을 보면서 지금 무대에서 흐르고 있을 노래를 머리 속에서 따라 가고 있었다. 그 곡의 2절이 끝난 뒤 간주에서부터는 베이스 연주를 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무대로 돌아갔을 때 여유롭게 필요한 순간에 잘 맞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공연의 절반 뒷 부분은 가벼운 악기를 메고 거의 전부를 피크로 연주했다. 통증을 참느라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껴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힘을 빼고 연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음악


 스물 한 살 어느 봄날 아침에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제 2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나는 내 인생의 그 시간이 허비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푸념만 차창 유리에 뿌옇게 끼고 있었다.

자주 가던 레코드 가게에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클래시컬 음악 카세트 테이프를 한 개 샀었다. 니콜로 파가니니 현악 4중주라는 것 정도만 알아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카세트테이프의 비닐포장을 벗기고 처음 들어보았다. 그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자마자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무심하게 보면서 지금 이 시간이 그렇게까지 쓸모 없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난 몇 주 동안 애플뮤직에서 파가니니 쿼텟의 음반을 여러 장 듣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