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6일 금요일

새 펜, 올해의 마지막 펜

 


스테인레스 닙 펠리칸을 한 개 더 사고 싶어서 그동안 몇 번 거래를 시도했었다. 사고 싶은 색상은 품절이었고 간혹 중고로 M200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닙 사이즈가 아니었다. 당근마켓에서 드디어 한 개 거래할 수 있게 되어 약속을 하고 나갔더니, 펜에 판매자의 이름이 각인되어있던 적도 있었다. 한 개 더 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해외에서 주문을 하기엔 반 년 사이에 환율이 너무 나빠져 있었다. 이미 만년필은 여러 개 있으니까 급한 일도 아니어서 가을 쯤 부터는 검색해보는 일도 그만 두고 있었다.
수요일 아침에 펜가게에서 알림 문자가 왔다. 이게 웬일, 모르는 사이에 펠리칸 한정판 M205가 새로 나왔다는 것이다. 새벽에 월드컵 경기들을 보느라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서둘러 주문을 했다. 내가 원하는 F닙만 남아있었고 다른 닙들은 이미 품절이었다.
헐레벌떡 주문,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조금 느긋하게 방금 내가 산 것이 어떤 모델인지 살펴봤다. 이미 구월에 펠리칸에서 발표를 했고 유명한 분들이 소개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매는 지난 달에 시작, 이제서야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 내가 만년필에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 읽어보지 않은 것이 대략 여름이 지날 무렵부터였구나.
펜을 쥐고 불빛에 이리저리 비추어보았다. 나는 데몬스트레이터 모델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직접 내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이것이 매력이 있는 모델이라는 것을 알았다.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모델은 처음엔 판매 영업사원이 펜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보았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색상으로 스페셜 버젼이 나와있다.
이 펜은 에델슈타인 잉크에 맞춰 색상을 정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Caran D'Ache Blue Alpin 잉크를 넣어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잉크와 펜의 색상이 서로 잘 어울려서 재미있어했다.
올해의 마지막 펜이다. 진짜 더는 안 사려고 하는데, 장담하진 못한다.





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눈이 내렸다

 



지난 밤에 바람이 습하더니 아침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로는 미끄러웠고 눈은 하루 종일 날리듯 내렸다. 날씨가 잘 어울리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일찍 출발하여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워셔액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워셔액을 사려고 했는데 망설이다가 사지 않았다. 차에서 잠시 내려 후드를 열고 닫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 양을 많이 줄였다. 일부러 집에서 커피를 내리지 않고, 그대신 빈 텀블러를 들고 나왔다. 새벽에 모로코와 프랑스가 벌인 월드컵 4강전 경기를 보느라 잠이 조금 모자랐다. 커피는 학교에 도착하여 로비에 있는 커피집에서 샀다. 그 커피가게 커피는 맛있었다. 그동안 고맙게 잘 마셨습니다, 라고 마음 속으로 인사했다. 텀블러 뚜껑을 열어 커피를 식히면서 눈이 쌓이는 모습을 구경했다.
집에 돌아올 땐 워셔액이 바닥나버려서 조금 고생스러웠다. 어제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해있다는 소식에 즐거운 마음으로 눈길을 달려왔다.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생일 케이크

 


아내의 생일이었다. 나는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일 케이크를 샀다. 지나다니면서 봐두었던 '베이커리 카페'들이 팔당대교 부근에 몇 군데 있었다. 빵이라는 말도 외래어인데... 강을 따라 주욱 베이커리 카페들만 있었다. 빵카페는 없었다. 그 중 한 군데에 들렀더니 하루 전에 주문을 하면 케이크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곳엔 케이크로 보이는 것이 있긴 했지만 너무 단 것들로 만들어져서, 한 입 베어 먹는 즉시 신장의 부신 시스템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았다. 날은 저물었고 동네는 가까와져서 할 수 없이 어떤 빵집에서 케이크를 샀다. 불매운동이 계속 중이어서 빵집엔 손님이 없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미역국과 케이크와 샐러드를 먹었다. 이상하게 보이긴 했겠지만 꽤 조화로운 조합이었다. 물론 나만 그렇게 먹었고 아내는 밥과 국을 먹었다. 나가기 전에 볕이 드는 곳에서 고롱거리며 자고있던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었더니 두 앞발로 내 손을 살며시 잡고 핥아주었다. 시계를 보며 고양이들을 어루만져주다가 집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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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7일 수요일

한 해를 마치는 공연

 


화요일에 올해의 마지막 공연을 했다. 2019년에 이곳에서 송년 공연을 한 뒤에 판데믹 두 해 동안 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다시 연주할 수 있었다.

악기를 두 개 가져가서 리허설을 해보고 한 개만 사용하기로 했다. 패시브 악기의 네크 상태가 약간 안좋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에 악기를 다시 가져다 두고 오는 나를 함께 갔던 아내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쓰지도 않을 것을 무겁게 왜 들고 온 건가, 했는가 보다.

연주를 하지 못하고 지냈던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줄은 몰랐었다. 다시 공연을 하러 한 해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는 일은 피로했지만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리허설을 하면서 우리가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에 돌아올 때에 어딘가 정신이 멍해져서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