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일 월요일

산꼭대기에서 연주를 했다.


신불산 간월재에서 연주를 하고 왔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하루, 공연을 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고 왔다.
억새가 가득한 아름다운 능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악 자전거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은 5년 전에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두고 반대의 의견이 많았던 장소였다.
능선에 올라가 보니 이미 매점과 휴게소와 전망을 볼 수 있는 데크가 다 지어져 있었다.
당시 시민단체가 반대했던 이유가 기억 났다. 아름다운 능선이 인공 시설물들로 망가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산꼭대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공연을 구경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사업으로 삼아 아름다운 능선의 고요와 스산한 바람소리를 어지럽혀야 할 이유는 없다. 구조물들이 없었고 등산객이 적었던 시절의 간월재는 지금의 모습 보다 더 아름다왔을 것이다. 나는 직업을 핑계로 그곳에서 잔뜩 소음을 내어버리고 온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탓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기에는 가슴 속이 떳떳하지 못했다.
이런 것은 하지 않을 수록 좋다.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철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아마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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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일 일요일

연주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2016, Oct. 1. with J-Brothers. (trimmed image)

지난 봄에 친구들의 밴드에 참여하여 함께 녹음했던 음반이 나왔었다.
그 후 우리들은 각자의 바쁜 일상을 보내며 서로의 시간을 모아 연주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블루스 밴드 J-브라더스와의 열 두 번째 공연을 했다.
언제나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빨리 흘러 간다.
조금만 더 연주하고 싶었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오십 분.
이제 두어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울산 울주군으로 갈 것이다.
도착하면 김창완밴드의 리허설을 하고, 다음 날 오후에는 아름다운 곳에서 공연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9월 30일 금요일

가을이 되었다.


새벽, 창문을 지나가는 바람이 서늘했다.
가을이 되었다.
나는 웃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불러 하기도 하며 매일을 산다.
고양이 순이가 없는 첫 가을을 보낸다.
이 해의 여름은 고약했다.

볕이 고왔던 오후에 고양이 이지가 창문 앞에서 졸고 있었다.
작은 고양이의 숨소리가 행복하게 들렸다.
나는 셔터 소리에 잠을 깨어버린 고양이를 살며시 들어서, 꼭 껴안아 보았다.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말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몽골로 우리를 초대하셨던 분은 관광지를 안내하고, 말을 타 본다거나 양고기를 맛 볼 수 있게 해주시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나는 평소의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을 즐기고 싶지 않았다.
매번 정중히 사양할 때 마다 죄송스러워했다.

거듭 권유하는 말씀과 신경 써 주시는 마음 때문에 나는 더 사양하지 못하고 결국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일행과 동행하여 초원에 함께 갔었다. 물론 말을 타거나 양고기를 먹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단지 넓은 땅을 걸어 보았을 뿐이었지만 나름 한적하게 쉬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평야를 걷다가 뼈와 가죽이 일부 남아 있는 말의 시체를 만났다.
반쯤은 땅에 묻혀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주변에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말들은 관광객의 유희를 위해 사람을 태우고 뚜벅 뚜벅 걷고 걷다가 생을 마친다. 고단하지 않은 삶이 없고 짐승으로서 고통스럽지 않은 생이 있겠느냐만, 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점점 삼가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말들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에 행복한 얼굴의 말을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지켜보았던 적이 있었다. 행복한 개와 말들은 허세를 부리거나 자존심을 세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힘들어하는 동물들을 보면 한참 동안 마음이 좋지 않아서 괴롭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쉬려 하는 말의 뺨에 손을 대어 어루만지고 싶어했는데, 주변에 흩어진 말의 똥 무더기를 피하려다가 넘어질 뻔 했다. 따분한 낮 시간을 보내던 말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올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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