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6일 토요일

우리는 겨울을 무사히 보냈다.

아내가 내 방안에 새로 세탁하여 솜을 풍성하게 넣어준 이불을 들여놓았다. 당연하지만 고양이 순이의 자리가 되어버렸다. 폭신하고 보송보송한 것을 몹시도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따뜻함을 찾는 포유류들의 유대감을 느낀다.
배경으로 악기들이 가득 보이는 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길래 아주 조용히 다가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길에는 따뜻하게 하루 하루를 지낼 수 없는 고양이들도 살고, 사람들도 산다.
아내는 겨우 내내 감기에 걸리고 상처를 입은 동네의 길고양이들을 보살피고 먹여 살렸다. 그러느라 손이 얼고 자주 다치고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나는 밤마다 은신처를 찾아 숨어 들어가는 수상한 사내라도 되는 것 처럼 집으로 기어들어와 고양이들과 함께 보송보송한 이불 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며 겨울을 무사히 보냈다.
차가운 길의 냉정한 바닥에는 고양이들도 살고 사람들도 살텐데, 우리는 겨울을 무사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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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5일 금요일

멍청해지기

(내가 좋아하던 텍스트큐브와 티스토리가 좋은 아이폰용 앱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또 이사를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장소에 가면, 나는 거의 쉬지 않는다.
왜냐면 쉬면 더 힘이 드니까.
몇 년 동안 익숙하게 해왔던 일이라고 해도 마음을 놓으면 안된다. 그러다가는 쉽게 망치거나 갈피를 못잡고 허둥댄다. 일터에 도착해서 준비를 하고 의자에 앉으면 집으로 돌아갈 때 까지 계속 해야한다.
가끔은 지치기도 하고 정말로 뭔가에 가로막혀 더 이상 계속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엔 앉거나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숨을 쉰다. 말도 안하고 가능한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숨을 쉰다. 생각해보니 그것이 쉬는 것이었군...

지난 주엔 내가 그렇게 멍청한 상태로 있을 때에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가 문을 아주 조용히 닫고 나가버렸다. 나를 이상하게 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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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4일 목요일

지난 달의 공연

그동안 연주가 많이 있었다.
일로 바쁘고 공연이 많았던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적절하게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대범한 면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쪼잔한 내 성격에, 공연의 내용이 좋지 않게 되면 그 기억이 몇 년을 괴롭힌다. 그리고 겁을 낸다. 늘 좋은 연주만 해왔다고 거짓말하고 뻐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테면 혼자 느낄 수 있는 평균수준이라는 것이 있는거니까.

컨디션이라고 하거나 건강이라고 하거나 간에, 그런 것은 다 최근 살아온 내 생활의 결과물이다. 몸뚱이는 좋은 것 먹이고 강제로 잠을 재워서 어찌해볼 수 있어도 머리 속의 것은 그런 방법으로는 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습을 백 시간 해보았자 생활의 태도가 망가져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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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8일 금요일

비 내린 날

쿤스트할레에서의 공연을 마친 직후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건물 밖에서도 탁하고 더웠던 실내 공기를 닮은 비릿하고 습한 냄새가 코에 들어왔다.
리허설 때에 가운데 손가락, 연주 중에 검지의 손톱을 다쳤다. 다쳤던 것이 다 낫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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