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8일 목요일

5월말에 했던 공연.


사람 많았던 낮 공연과 소박했던 새벽 공연.


낮은 온도와 높은 습도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차라리 새벽의 공연이 더 소리가 좋았다.
음향장비는 낮 공연에 사용되었던 것들이 훨씬 비싸고 좋았다.
소리가 왜곡되고 있는 연주자도 가엾지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채 입장료를 지불하는 관객들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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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7일 수요일

Time To Rock 공연.


퉁퉁 부은 얼굴로 갔었던 타임투락 공연.
그리고 그날 밤 출발하여 새벽안개를 맞으며 춘천으로 갔었다.
춘천의 공연장 뒤에서는 연주를 하러 오셨던 광석형님을 만나 반가와했다. 그런데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했다.
몇 년만에 드러머 재욱이도 그곳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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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4일 일요일

그림이 담긴 티셔츠를 얻었다.


흰 옷 위에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하기에, Jaco Pastorius Big Band의 음반 일러스트를 내놓았더니 정말 그려줬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곁에서 힐끔거리며 엿보다가 그림이 완성되자마자 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자코 셔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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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9일 화요일

길어질 유월.


지난 23일 이후, 블로그에 글을 쓴다거나 메일의 답장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지냈다.
하고 싶은 말은 입속에서 꾸물거리다가 쉽게 삼켜지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 새삼 싫어졌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던 그 시간에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아서 이것 저것 낙서처럼 글을 올리고 있었다. 하필 그 때에 사진을 올려두고 신변잡기의 글을 적고 있었다는 것도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보름 남짓 타이핑을 할 줄 아는 세상의 온갖 듣보잡분들이 듣보짓을 벌이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상관하기도 싫고 그냥 신경을 쓰기도 싫었다.

그리고 영결식날에는 다음날 공연을 위한 리허설로 분주히 움직여야했다. 다시 무대가 있는 곳을 오가며 공연하고 연주하는 생활이 되었다. 야외무대의 한쪽 구석에 앉아 개인사정을 이유로 삼아 공연에 참가하지 않은 어느 밴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살면서, 나의 개인사로 힘들었던 날에도 연주할 일은 다 했었다. 새삼 민감한 체, 예민한 체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대개 방관자의 입장으로 살아가기 쉽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사태에 대해서도 그저 남의 일인듯 하고 있는 작가, 연출가, 연극인, 음악인들의 글과 말을 읽고 보고 있었다. 그런 것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유없이 욕설이라도 들은 모양으로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창피해졌다. 나도 어찌해보았자 방관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어서 그렇다.
어쨌든 계속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러 다닌다. 그리고 시간과 졸음을 이길 의지가 허락하는한, 세상의 일들을 많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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