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9일 화요일

길어질 유월.


지난 23일 이후, 블로그에 글을 쓴다거나 메일의 답장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지냈다.
하고 싶은 말은 입속에서 꾸물거리다가 쉽게 삼켜지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 새삼 싫어졌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던 그 시간에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아서 이것 저것 낙서처럼 글을 올리고 있었다. 하필 그 때에 사진을 올려두고 신변잡기의 글을 적고 있었다는 것도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보름 남짓 타이핑을 할 줄 아는 세상의 온갖 듣보잡분들이 듣보짓을 벌이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상관하기도 싫고 그냥 신경을 쓰기도 싫었다.

그리고 영결식날에는 다음날 공연을 위한 리허설로 분주히 움직여야했다. 다시 무대가 있는 곳을 오가며 공연하고 연주하는 생활이 되었다. 야외무대의 한쪽 구석에 앉아 개인사정을 이유로 삼아 공연에 참가하지 않은 어느 밴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살면서, 나의 개인사로 힘들었던 날에도 연주할 일은 다 했었다. 새삼 민감한 체, 예민한 체 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대개 방관자의 입장으로 살아가기 쉽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사태에 대해서도 그저 남의 일인듯 하고 있는 작가, 연출가, 연극인, 음악인들의 글과 말을 읽고 보고 있었다. 그런 것을 읽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유없이 욕설이라도 들은 모양으로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창피해졌다. 나도 어찌해보았자 방관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어서 그렇다.
어쨌든 계속 연습하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러 다닌다. 그리고 시간과 졸음을 이길 의지가 허락하는한, 세상의 일들을 많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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