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일 화요일

어린 고양이와 순이.


무척이나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꼬마 고양이 녀석은 소유의식이 없다.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과 잠자리는 근본적으로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므로 온 세상이 편하다.
재미있게도 어른 고양이들은 녀석을 심하게 나무라지도 않고 까탈을 부리지도 않는다. 밥이 되었든 잠자리가 되었든, 쉽게 양보를 해준다.
옆구리의 종양으로 수술도 받았고, 살집도 없었던 녀석이 몇 주 사이에 부쩍 몸집도 커지고 건강해졌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이제는 걱정이 될 지경이 되었다. 낯선 방문객이 현관 앞에 서있어도 즐거워서 달려나간다. 호기심은 너무 많고 주의와 경계는 부족하다. 곤란한 일을 겪으면 어쩌지라는 따위의 두려움도 없다.

순이의 배에 기대어 코를 골며 잠을 자거나, 검은 고양이 쿠로의 꼬리를 베고 잠들거나 하는 일도 다 제멋대로이고 자기 맘대로이다. 어른 고양이들은 꼬마 녀석을 특별히 귀여워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괴롭히거나 두들겨 패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는 고양이들의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순이의 겨울오후.


집 옆에 강이 있어서, 강바람이 심하다.
부쩍 쌀쌀해져서 종일 집안에 보일러를 켜놓았다. 조금 춥게 지내야지...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점점 따뜻한 구석을 찾아 드러누워 뒹굴고 싶어한다.
따뜻한 곳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집안이 뜨뜻하니 표정이 밝다.
고양이 순이는 길게 뻗은채 누웠다가, 쬐그만 녀석이 몰래 다가와 못된 장난을 시작할까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안의 고양이들은 따뜻한 구석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가, 가끔씩 자기들끼리 자리 교환도 한다. 약속에 의한 순서라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불 속에 들어가 눕고 싶다던가 따뜻한 담요 위에 앉고 싶다던가 할 때엔 언제나 바닥을 조심해야만 한다. 나는 바닥에 누운채 깜박 잠이 들었다가, 쿠션으로 착각하고 순이를 잡아당겨 베게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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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펙터 페달.



연말의 공연들에서는 가지고 있는 이펙터를 모두 사용했다.
페달보드의 내용물들을 전부 사용했던 공연은 아직 없었었다.
이번엔 오히려 이펙터가 부족했다. 공연 전에 몇 개를 구입해서 준비해둘까 망설이다가 그만뒀다.
공연들이 끝나고 난 뒤 시간이 좀 생기니까, 자주 악기장터를 뒤져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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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대.



그해 겨울의 공연. 뭔가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추위와 고질적인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고, 밥은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말거나 했었다.
그래서 고양이 순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집을 지키고 지내야했었다.
순이에게 그점이 언제나 미안했다.

그 즈음을 지나 작년이 되어버렸고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버리게 되었다.
평소에는 거의 잡아보지도 않는 악기 한 개를 오랜만에 소리내어보다가 이날의 공연이 생각났다.
인생은 묘한 일들의 연속일 수가 있다. 따분할 틈이 없다.
해가 밝았다. 뭔가 재밋거리가 그득한 한 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