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22일 수요일

여행 준비.



늦은 시간에 짐을 정리하여 싸놓았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운다.
고양이 순이를 맡겨 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벌써 고양이를 보고 싶어하고 있다.
여행에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고양이 순이를 위해 어서 갔다가 돌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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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있다.




연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짐을 꾸리고 준비를 하여야 할텐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양이 순이가 곁에 앉아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일을 제의받았다.
다소 과장되어보이는 설명을 들었다.
돈벌이를 위해 하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일을 진행하는 방법이 영 정상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밤에 급하게 연습을 해서 다음날에 연주를 해야한다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 정도의 일이야, 피로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미덥지가 않게 느껴진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때에, 코앞의 이익때문에 수개월 수년동안의 일을 그르쳤던 경험이 이미 있었으므로,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고민하게 한다.
그렇지않아도 부담이 가득한 계절에 떠나는 타의에 의한 여행인데, 마음이 더 무거워진채 떠나게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열 두 시간을 날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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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8일 토요일

프레시젼 베이스.


벌써 그렇게 오래 되었나.
8, 9년 전에 이태원에서 미국에서 온 어떤 베이스 연주자를 만났었다.
흑인이었던 그는 내 악기를 직접 쳐보더니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오후였고 창문 밖에는 따스한 햇빛이 가득했었다.
그는 그 때 나에게, "precision is hotter than jazz"라고 했었다.
그런데 혹시 hotter가 아니라 harder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중에야 해봤었다. 나는 우리말도 가끔 못 알아듣기 일쑤이다. 한국영화를 볼 때에 자막이 있으면 아주 편안해 한다.

재즈베이스만 사용해보았던 나는 프레시젼과의 차이라고는 그저 픽업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요즘 연주할 때에 프레시젼을 사용해보고 있었는데, 이제 그 두 베이스들은 아주 다른 악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주방법도 달라야 하고, 음색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했다. 같은 악기의 다른 모양일 뿐인데 제법 큰 차이를 느꼈다. 소리의 질이 어떻다느니 하는 것은 훨씬 나중의 문제였다.
프레시젼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나에게는 지금 더 어렵다. hotter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harder 는 맞다고 생각했다.

지난 며칠 동안 존 디콘의 연주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제임스 제이머슨의 음색과 프레이즈도 많이 들었다.
친구가 피노 팔라디노를 좀 들어보라고 권했지만 어쩐지 잘 듣게 되지 않았다. 그는 수천 곡의 세션을 했으니 나중에 내 취향에 맞는 그의 연주를 찾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 나를 매료시키고 있는 것은 이제와서 새삼 존 디콘의 연주이다.
재즈베이스와 프레시젼은 반드시 한 개씩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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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일 수요일

Gerry Mulligan, Night Lights


(2006년 3월 1일)


음반의 표지 그림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담긴 재즈 앨범들이 많다. 제리 멀리건의 이 음반이 바로 그렇다고 늘 생각했다. 아직 이 음반을 들어보지 않으신 분들, 어떤 음악일까 하고 궁금하다면 그냥 저 음반의 표지그림을 들여다보면 된다. 저런 심상이 가득 담긴 재즈음반이다.

모던 재즈를 어떻게 듣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재즈팬들로부터는 '뭐야 완전히 이지리스닝이잖아'라고 핀잔을 들을 가능성도 많은 음반이다. 정말 쉽게 들리고 쉽게 음악에 젖게 되는, 눅눅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이유불문하고 역시 좋은 음악은 '잘 들린'다.

이 음반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과 같이, 소위 말하는 '재즈의 이미지'에 충실한 분위기 때문에, 작심하고 감상에 젖을 때에 들으면 좋다거나 심신이 지쳐있을 때에 듣게 된다거나 와인이니 커피니 등등과 곁들이면 좋은 음악들이 담겨있다. 내 경우엔 최근에, 무서운 꿈을 꾸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앉았을때에 유효하게 사용했다.

첫 곡 Night Lights는 낭만적인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피아노의 테마가 시작되는 순간 자세를 뭔가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질 정도이다. 1분 안에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이다. 이 음반에서의 피아노 연주는 Gerry Mulligan 자신이 직접 했다. 참 재주도 많았던 사람이었군.

바리톤 색소폰의 연주를 직접 구경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 음반을 듣고 난 후엔 바리톤 색소폰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이것'으로 규정되어버려서, 자꾸만 이 음반을 기준으로 바리톤 색소폰 연주를 점수 매기게 되어지기도 했었다. 심지어 Gerry Mulligan의 다른 앨범 마저도. 사실을 말하자면 이 음반만으로는 Gerry Mulligan의 색소폰 연주를 다 들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들려준 음악들은 정말 대단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 짐 홀 아저씨의 Jim Hall and Friends, 데이브 브루벡과의 트리오 음반들, 벤 웹스터와의 음반, 스탄 겟츠, 쳇 베이커, 애스터 피아졸라, 몽크와의 연주들, 빅밴드에서의 연주들......

보사노바로 연주한 쇼팽의 Prelude E Minor를 듣고 있을 즈음이면 벌써 음반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게 된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마이너 블루스인 Festival Minor에서의 짐 홀의 기타 솔로를 듣게 되면 이미 음반은 마지막이다. 여섯번째의 Tell Me When까지 듣고 음반이 끝나면 반드시 한 번 더 처음부터 들어보고 싶게 된다.

대단한 연주자들이 모여서 단 한 사람도 지나치게 튀어나오는 순간이 없이 조화롭게 절제되어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음반은 많지 않다. 너무나 듣기 편안하고 쉽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말 무서운 경지들이다. 모두가 침착하고 모두가 고요하다. 지적이면서도 인텔리인척하는 허세가 전혀 없다고 표현하면 비슷할까. 앙상블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해, 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1963년에 녹음되었고, 나는 LP로는 들어보지 못했다. 적어도 이런 음반은 턴테이블을 돌리며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LP를 들어보지 못한 주제인데도 나는 쉽게 동의했다.

Gerry Mulligan 바리톤 색소폰, 피아노
Art Farmer 트럼펫, 플루겔혼
Bob Brookmeyer 트럼본
Jim Hall 기타
Bill Crow 베이스
Dave Bailey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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