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에 작은 공간에서 짧은 연주를 했었다. 극장이나 야외무대가 아닌 장소에서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었다. 나는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하고 먼 곳에서 공연을 마친 후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다. 이 날엔 공연 장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분량도 길지 않았으니 피곤할 일이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사운드 체크를 위해 그 동네에 도착할 때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집에서 출발 할 때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아버지가 입원과 수술을 위해 진료를 받는 날이어서 부모 두 분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날이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두 분을 데려다 준 다음 한강을 건너 약속 장소로 가도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길이 막혀 모든 게 늦어졌다. 병원에 노인들을 내려주고 나는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서둘렀던 덕분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기운이 없어서 시트를 눕히고 잠시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리허설을 한 후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잘 돌아오셨는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긴 시간 대기하다가 연주를 하고, 사람이 가득한 건물을 겨우 빠져나왔다. 짧은 거리를 악기를 메고 걷는데 더위와 습도가 무슨 무거운 짐처럼 몸을 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고단했던 것인지.유난히 더 덥게 느껴졌던 여름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조금 나태해지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잊고 말 것처럼 몽롱했다.
내일은 공연을 하러 대전으로 간다. 뉴스에서는 추석연휴 동안 고속도로 정체가 가장 심한 날이 내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휴일이 지나간 후엔 고단했던 여름도 그만 떠나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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