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4일 금요일

영천 임고에서

웬지 시간이 충분한데도 더 일찍 출발하고 싶더라니, 군위를 지나는 길에 긴 시간 정체가 이어졌다.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는 도착 예정시간이 한참 늘어났다가, 정체 구간을 지나면서 다시 줄고 있었다. 전광판에 '사고 처리 완료'라고 안내문이 나오고 있었다. 응급차가 지나가는 일은 없었으니 누군가가 다치거나 한 일은 아니었는가 보다.

약속 시간 삼십 분 전에 도착했다. 왜란 중에 부래산에서 불에 타 없어졌던 서원을 새로 지으면서 저 은행나무를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오백 살 나무 주변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모여 있었다. 조용한 곳을 찾아 좀 더 걷고 싶었는데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몸살 기운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리허설을 할 때엔 볕이 있어서 덜 했지만 공연 시간이 되어서는 손이 시렵고 많이 추웠다. 기온 탓이 아니라 내가 추위를 더 느낀 것이었겠지. 할 수 없이 외투를 입고 둔한 모양으로 연주했다. 중간에 모니터 수신팩이 꺼져버리는 일이 생겼다. 귀에서 인이어를 빼고 앰프 소리를 들으며 연주했다. 작은 가설 무대였기 때문에 대충 드럼과 기타 앰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도 왕복 여덟 시간 운전했다. 차에서 짐을 내려 챙기면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으로 이 달의 일정을 끝냈다.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忌日


봉안담 앞에 서서 작은 문을 여는데 문에 남은 압축기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유리문엔 빗방울이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차에 가서 물티슈와 타올을 가져와 그 땟자국을 닦고 지웠다. 일년 전 벌어졌던 일들을 조각조각 떠올려 보았다. 뒤돌아서 걸으며 시계를 보았더니 한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그렇게 오래 그 앞에 서있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수 없이 많이 다녔던 길을 따라 북한강을 건너 달렸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후엔 속도를 유지하며 음악을 들었다. 고음질 파일을 USB 저장장치에서 재생하니 듣기 좋았다. 음색이 좋다, 라고 생각하다가 사십여 년 전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아침에 아버지 차에서 내려 학교 문을 향해 걷고 있으면 조금 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가 순서대로 외워지곤 했었다.

나는 감기 몸살 증상이라기엔 좀 특이한 것을 겪고 있다. 냄새를 못 맡고 있는 중이다. 밤중에 뉴스에서 요즘 독감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섞여서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쩐지 이렇게 오래 낫지 않고 있더라니, 했다. 몸이 아프지만 힘들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판데믹 기간 동안에 여러 번 노인과 병실에 함께 있었다. 운 좋게 나는 그 기간 동안에는 한번도 COVID-19에 감염되지 않았었다. 감기도 걸리지 않았었다. 지금은 내 몸 하나만 간수하면 되니까 이 정도 아픈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2025년 11월 9일 일요일

인천 공연

 

낙엽이 구르고 있는 공연장 뒷쪽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한 시 반, 그 장소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듣고 있던 Steve Kuhn 트리오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자동차 창유리를 열고 조금 더 앉아있었다. 차에서 내릴 때에 바닥에 바사삭거리며 낙엽이 밟혔다. 낯익은 장소. 여기에 네번 쯤 왔었나, 하면서 악기를 꺼냈다.

공연 시작 1분 전. 낫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몸살 기운이 남아 있었다. 습관처럼 손가락, 손목을 주무르며 무대 쪽을 보고 서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 밤공기를 쐬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출발하는데, 공연 전에 먹었던 약기운 때문인지 한동안 흐리멍텅해진 채로 운전을 했다.


2025년 11월 7일 금요일

감기 몸살


 오랜만에 감기 몸살에 걸려 밤새 신음하며 앓았다. 언제나 결과를 놓고 하는 말일 뿐이지만, 이번엔 뭘 잘못하여 몸살에 걸렸는가를 자다가 깨었다가 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에 이틀 연속 공연을 하고 장례식장에 들렀다가 올 때에 바람을 맞았던 것이 나빴나. 열 한 시간 반 동안 운전을 하고나서 푹 쉬지 못했던 것이 이유인가. 이틀 뒤에 시골집에 가서 무거운 것들을 좀 들어 옮긴 것이 안 좋았던가. 그 다음날에 사람이 많은 대형마트에 다녀온 것 때문이었나. 내 딴엔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겨울 외투도 꺼내어 가지고 다녔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피로가 쌓인 채로 잠을 충분히 못 잤던 것이 아마 직접적인 원인이었을테지.

새벽에 깨어 이부프로펜 한 알, 비타민 한 알을 먹고 탄산수를 몇 컵 마셨다. 점차 오한이 줄면서 땀이 많이 났다. 일부러 물을 많이 마셨다. 고양이 깜이는 이른 아침 아내가 일어날 때까지 내 베개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지쳐서 잠들거나 몸이 아파서 누워있으면 깜이는 언제나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감기가 고양이에게 옮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쓰다듬어 줬다. 아내가 사다 준 약을 고분고분 받아먹고 이제 오후가 되었더니 좀 움직일만 하게 됐다. 감기 몸살로 이렇게 고생한 것은 5년만의 일이다.

2025년 11월 2일 일요일

함평에서, 그리고 장례식장

 

새벽에 깨어난 후 다시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깨어있는 채로 누워있는 것보다는 아예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공연장 근처에 가서 쪽잠을 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욕실에서 씻고 나와서 짐을 챙기는데 전화기에 김규하의 이름으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고 금세 알 수 있었다. 급히 전화를 해보았다. 그의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벽 내내 혼자서 일을 겪은 그의 목소리에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공연을 마치는대로 장례식장에 가겠다고 말했다. 운전 중에 한 번 더 통화를 했다.

행사장 앞에 일찍 도착하여 근처 한적한 장소를 찾아 주차를 하고 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은 꺼둔 채로 노이즈 캔슬링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소음이 들리지 않은 덕분에 잘 잤던 것인지, 너무 잠이 부족하여 쉽게 잠들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두어 시간 동안 푹 잤다.

기상예보에 함평 지역엔 센 바람이 불고 있다는 내용이 따로 표시되고 있었다. 기온이 아니라 바람 때문에 더 춥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얼어버렸던 것은 지난번 파주에서와 같았지만 이번엔 오후 네 시에 공연을 시작하여 그 때보다 연주하기에 덜 어려웠다.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다가 이상한 춤을 추고 있던 사람 때문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찬 바람에 추워하며 연주를 한 후에 따스한 시트 위에 앉아 운전을 하고 있으니 자꾸 졸음이 왔다. 해가 진 후엔 피로와 졸음을 쫒기 위해 휴게소와 졸음쉼터에 몇 번 더 멈추어야 했다.
밤 열 시 반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 절을 하고 나보다 몇 배 피로해 보이는 김규하를 만났다. 장례식장 주차장에는 한번씩 쌩 하고 얄미운 바람이 지나갔다. 나는 이날 열 한 시간 반 동안 운전했다.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화성 공연

화성 장안대학교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에 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아직 옷을 꺼내어 놓지 않고 있는 중인데 이제 그런 것 따질 일이 아니다. 겨울 외투를 꺼내어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가본 공연장은 특이한 구조인 건물 지하에 있었다. 무대에 드나드는 경로가 간단하고 효율적이었다. 사운드 체크를 하는데 높은 천장에 닿아 돌아오는 소리가 좋게 들렸다.

이날 공연에서는 새 노래 한 곡을 처음 연주했다. 몇 주 동안 밴드 멤버들은 리더님의 새 노래들을 작업하고 녹음하고 있다. 공연 중에 처음 연주한 곡은 그것들 중 제일 앞서 완성된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