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밤 열 시 반에 집에 도착했는데, 또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에 살다보니 '퇴근'을 할 때마다 힘이 든다.
이른 아침에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고양이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난 후 아내는 이지를 소중히 끌어안고 집안을 거닐고 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진지 이제 일주일 쯤 지났다. 베란다에 얇은 이불처럼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고양이 깜이는 내 머리맡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 보니 어느새 간식을 얻어먹고 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나를 보며 작은 소리로 아침인사를 했다. 나는 그 소리는 듣지 못하고 고양이의 입 모양만 보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을 깨려고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추석 연휴의 첫날, 대전에서 공연했다. 알람을 듣고 깨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곧장 출발, 정체 심한 고속도로에서 평균 시속 54킬로미터로 대전에 도착, 리허설, 도시락 먹고 오후 다섯 시에 공연 시작, 저녁 일곱 시 이십 분에 집으로 출발하는 하루 일과를 보냈다.
열흘 전 짧은 행사를 할 때부터 페달보드 대신 멀티이펙트 페달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지고 다니는 짐을 줄이게 됐다. 이번엔 악기도 한 개만 가져갔다. 디지털 페달의 음색을 저장할 때 그 베이스에만 맞춰 놓았기 때문이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저장해둔 패치 번호를 셋리스트의 곡명에 맞춰 적어 놓았다. 무대가 어두워졌을 때에 그것을 제대로 읽지 못할까봐 안경을 쓰고 연주했다.
지난 달부터 밴드는 모니터를 위한 스피커 대신 인이어 장치를 쓰고 있다. 나는 캐비넷에서 나오는 소리와 관객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열심히 적응하고 있다. 몇 가지 좋은 점 중에서 무엇보다도 리더님의 수고를 덜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완전히 익숙해지면 좀 더 정교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열흘 전에 작은 공간에서 짧은 연주를 했었다. 극장이나 야외무대가 아닌 장소에서 오랜만에 하는 공연이었다. 나는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하고 먼 곳에서 공연을 마친 후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다. 이 날엔 공연 장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분량도 길지 않았으니 피곤할 일이 없었어야 했다. 하지만 사운드 체크를 위해 그 동네에 도착할 때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집에서 출발 할 때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도로 정체가 극심했다. 아버지가 입원과 수술을 위해 진료를 받는 날이어서 부모 두 분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날이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두 분을 데려다 준 다음 한강을 건너 약속 장소로 가도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길이 막혀 모든 게 늦어졌다. 병원에 노인들을 내려주고 나는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서둘렀던 덕분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기운이 없어서 시트를 눕히고 잠시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리허설을 한 후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잘 돌아오셨는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긴 시간 대기하다가 연주를 하고, 사람이 가득한 건물을 겨우 빠져나왔다. 짧은 거리를 악기를 메고 걷는데 더위와 습도가 무슨 무거운 짐처럼 몸을 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고단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