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0일 목요일

미안하다, 고양이.


나는 온갖 종류의 미신이나 영험함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런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어떤 현상을 선입견 없이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소 보다 늦은 시간에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다녀온 아내가 말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집 층 번호를 누른 후 문이 닫혔는데, 엘리베이터가 출발하지 않고 잠시 후 저절로 다시 문이 열렸다고.

나는 기계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며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는 말지 그러느냐고 했다. 생각해보면 흔한 오작동일 수도 있다.
기계의 단순 오작동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거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내가 겪은 하루의 끝 무렵에 일어난 그런 사소한 현상으로 부터 아내는 아마 약간의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예쁘다.


어제 새벽에 미안한 마음을 안고 겉으로는 투덜대기도 하면서 24시간 동물병원에 갔었다.
당장 오전에 주말 공연을 위한 합주 연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를 원했다. 지난 주의 피로도가 다 풀리지 않았고 잠도 모자랐다.
그렇지만 밤중에 아내가 안절부절 할 때에 서둘러 일찍 병원에 갔었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뒤늦게 죄책감이 들었다.



일주일 전에, 아내는 갑자기 두 마리의 새끼 길고양이를 맡아 번갈아 돌보아야 했다. 다른 구역에서 길고양이의 밥을 주는 분의 도움을 받아 상태가 좋지 않은 어린 고양이들을 정성껏 살피고 병원에 데려가며 돌보았고, 한 마리는 건강해져서 장난치며 뛰어다닐 정도가 되었었다. 그런데 다른 한 마리는 갑자기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

지난 주에 내가 일 때문에 종일 밖에 있을 즈음 아내는 아내대로 집안의 일들과 위태로운 어린 고양이를 돌보는 일로 거의 잠을 못잤었다.

그랬던 고양이가, 지난 밤에는 상태가 더 나빠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동물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아내의 느낌을 믿을 수 있는 나로서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서둘러 채비를 하고 심야 동물병원으로 차를 달렸다.

병원에 가자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속내를 늦게 알아차렸다.

새벽 세 시가 넘었던 시간이었다.


손바닥 보다 작은 고양이의 상태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지 않았다. 심한 빈혈과 탈수가 계속되고 있었다. 설사를 하지 않는데도 탈수가 심한 상태였고 오히려 변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어 더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입원을 시켰다. 쬐그만 몸에 수액을 몇 번이나 맞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두어 시간 자고, 오전 일찍 나는 공연 연습을 하러 갔다.
아내는 거의 밤을 새운채로 낮 시간에 병원에 갔던 모양이었다.

고양이에게도 치명적인 몇 가지의 질병이 있고, 몇 가지의 나쁜 상황들이 겹쳐지면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분리불안이 상태를 악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어미 고양이가 돌보는 새끼 고양이를, 불쌍하다고 덥썩 데려오는 일이 그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 고양이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습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울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단다.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에 우리가 다니던 동물병원에 한 번 더 데려가 보려는 중이라고 했다.

비 내리는 날, 마음처럼 답답하게 막힌 도로를 기어가듯 달려 동물병원에 도착했더니, 역시 그 병원에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결론.

어쩔 수가 없어서, 꺼져가는 생명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가려고 할 때 였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제에 작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고함이라도 치듯이 입을 크게 벌려 큰 숨을 내쉬고, 어린 고양이는 곧 발을 뻗으며 눈을 감았다.



태어난 지 오십 일을 겨우 넘겼을 것 같았던 어린 고양이, 살려보기 위해 보듬고 쓸어주고 있던 아내의 손 안에서 큰 숨 한 번 뱉고는 죽었다.
낮에 전화할 때엔 울고 있던 아내는, 고양이가 죽은 후에는 차분하게 뒷 정리를 했다.
빈 손으로 집에 돌아오자 마자 아내는 집안을 소독하고 버릴 것들과 살균할 것들을 나눠 놓고는 평소 보다 늦었지만 우의를 덮어 쓰고,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남겨진 약 봉지, 음식과 물을 먹일 때에 쓰던 주사기, 미처 먹이지 못하고 남아 있던 사료들을 한데 모아 담아 놓은 모양이어서, 나는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가 그것을 버리고 돌아와 마루바닥에 누워버렸다.

생명이니까, 도와보려고 하고 살려내어 보려 애를 쓰기도 하는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생명이기 때문에 살거나 죽는 일이 바라는대로 되어지지만은 않는다.

죽음이 나쁘거나 슬픈 일은 아닌 것이다.
떠난 새끼 고양이가 가엾고 안타까왔던 것은 너무 짧은 동안 예쁘게 숨쉬다가 너무 심하게 고통을 겪고 떠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꼭 살려내고 싶었는데, 많이 미안하다. 아기 고양이에게도, 아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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