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병원


지난 달에 자전거의 뒷 드레일러가 갑자기 비뚤어져서 변속을 아무리 해도 소음이 나고 있었다. 알고보니 행어가 휘어있었다. 한참 언덕 오르는 일에 무슨 사활을 건 사람처럼 지랄 열중을 하던 때 였다.
정비해주시는 분이 '도대체 얼마나 힘을 주고 타셨던 건가요'라고 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십여년 전 이야기.
재미없고 흥미없다는 군 시절 이야기.
짐을 싣고 내리는 트럭 위에서 무거운 상자가 떨어져 그 모서리에 무릎을 맞았었다. 많이 붓고 아팠었는데 미련한 천성으로 그냥 대충 뭔가를 발라두고 낫기를 기다렸었다.
공교롭게도 그 후에 단단한 물건이라든지 쇠 같은 것에 하필 그 아픈 무릎이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며칠 후에는 금세 아물고 괜찮아져서 잊고 지냈다.

몇 년 전 부터 그 무릎이 이유없이 아팠다.
병원 가는 것을 아주 무서워한다는 핑계로 파스나 붙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그 때 마다 그냥 넘겼었다. 조금만 운전을 오래 하거나 하면 점점 통증이 심해졌는데, 아내가 병원에 가지 않을테냐고 말할 것이 두려워 웬만하면 참았다.

부산 공연 전날, 한 두 시간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유유히 돌아와 집 앞에서 멈췄을 때에, 딱 신호가 왔다. 바르게 편 상태에서 조금만 무릎을 굽혀도 심하게 아팠다. 통증 참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건 정말 심한 통증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엄살을 보태면 걸을 수 없이 아팠다.

더운물로 찜질을 했다. 구멍난 옷을 덧대어 꿰메듯 파스를 덕지 덕지 붙였다. 그 상태로 사흘 동안 공연을 하고 왔더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발로 병원에 갔다.
이미 오래 전 부터 병원에 가자는 아내의 말을 못들은체 하며 지냈었기 때문에 칭찬도 못받고 특별히 위로도 못받는 상태이지만, 어쨌든 솔선(?)하여 병원으로...


방사선 촬영에는 (잘생긴) 뼈만 예쁘게 나왔는데, 특별한 소견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잔뜩 들었지만 하여간 정상은 아닐테니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 약도 사 먹고 물리치료도 시작했다.

역시 자전거 때문일까요, 라고 여쭸더니, '무슨 선수도 아니라면서... 그 정도로 갑자기 무릎이 아프지는 않아요'라고 하셨다. 약간 찔림.
하여간 뭐든지 적당한 정도로 하는 걸 아직도 못배웠다.
겨우 몇 십년 사용했다고 잔고장이 나는 사람의 몸이라니, 내구성 빵점이다...라며 투덜거리고 있는 중이다. 아직 많이 써야하니까, 치료를 잘 받고 관리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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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부산 공연.

악기를 미리 차편으로 보낼 수 있었던 덕분에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지하철을 타보았다. 갈아타거나 출입구를 찾아야 할 때에 바짝 긴장을 했다. 스스로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 지레 겁을 먹는다. 그만큼 조심하게되 된다.

리허설을 위해 공연장에 도착했더니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다.
완벽한 음향, 악기와 앰프와 모니터의 위치, 연주하는데에 필요한 것이 다 갖춰진 상황이었다. 이런 때에 매우 고맙다.

공연장에는 이런 것이 펼쳐져 있던 모양이었다. 다른 분이 찍어주신 사진이었다.

무대 위의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첫날의 리허설도 좋았다.


이번 부산행은 밀면집 투어를 했다.
첫날 도착 후 저녁을 밀면으로 먹었다. 공연 후 저녁은 냉면을 먹었다. 둘째날에도 두 끼 식사 중 한 끼는 밀면을 먹었다. 귀가하는 날 부산역으로 가는 길에 남천동에 들러 또 밀면을 먹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끝났다. 공연을 마친 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끝난 것을 늦게 알았다.
일하느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며 지낸다.

첫날의 공연을 마치고 나왔더니 공연 시작 즈음 사직구장에서 지고 있던 롯데자이언츠가 그 사이 역전승을 했다고 했다. 부산 전체가 신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도 많았고 렌트카도 있었어서 부산 시내를 돌아다닌다거나 심야 드라이브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급히 휴식이 필요했다. 호텔로 기어들어와 쓰러져버렸다.
다음날에도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값 비싼 호텔 사우나에서 급찜질을 했다. 맥을 못추고 침대에 쓰러져있다가 일어났더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두번째 날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의 하늘. 하늘에 구름들이 흩어지고 모이길 반복했다.

공연을 잘 마쳤다.
성취감이 있었다. 이번 공연은 만족스러웠다.
두어 시간 공연 중 한 시간 반을 플렛리스로 연주했다.
개운한 기분이었다.

콘트롤룸에서 찍어준 사진이었다.
어쩐지 공연 후에 내 얼굴이 좀 그을린 것 같았다. 사진을 보니 아예 조명으로 태닝을 시켜줬던 것이었구나.

부산역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멈추어 바람소리를 들었다.
이틀 동안의 공연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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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산책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제밤에 하다가 말았던 일을 마쳤다.
창문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그런데 햇빛이 밝고 하늘은 맑았다.
세수하고 옷을 챙겨 입고, 자전거 바퀴의 공기압을 체크하고 가방을 등에 메었다.

지난 밤에 들렀던 능내역에 다시 도착.
조용한 역사 담벽에 햇빛만 요란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여름 내내 몇 번이나 지나다녔던 곳.
이제는 슬슬 동네 골목 돌아다니듯 산책 삼아 들러보는 곳이 되었다.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세트와 같은 장소라고 해도 뭐 어떤가 싶었다.
자전거로 달려와 편안한 마음으로 쉴 곳이 있는 것을 고마와했다. 벽에 기대고 앉아 쵸코바 한 개를 먹고 물을 마셨다.
그래도 된다면 볕을 받으며 앉은채로 잠깐 졸았으면 좋겠을 정도로 따사로왔다.


따사로운 볕, 푸른 하늘, 그리고 조용한 의자.
집에 돌아오니 한 시가 넘었다. 잠깐 산책삼아 다녀오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뭐가 조금 아쉬워서 집에 돌아와 아내의 자전거를 타고 또 동네 한 바퀴.

한적한 나홀로 자전거 산책을 마쳤다.

이제 금요일, 토요일에는 부산에서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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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1일 목요일

합주


금요일, 토요일에 부산에서 하게될 공연 준비를 했다.
마지막 연습이었다.
특별히 준비한 노래들이어서 시간이 걸렸다. 멤버들이 한데 모여 연습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합주의 기간이 길어졌다. 오늘의 소리도 괜찮았다. 어서 공연장에 가서 리허설을 하고 싶어졌다.

이번 공연에서는 플렛리스 프레시젼을 주로 쓸 예정이다.
악기의 상태도 최상이다. 모든 준비가 잘 되었다.


공연 음향팀의 배려로 공연에 쓰일 악기들을 음향팀에게 맡기고 우리는 간편하게 기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연습을 마친 후 악기들을 모아 내 차에 싣고 음향팀에게 전달했다. 자동차에 가득찬 악기들을 보니 (전부 내 것도 아니면서) 뭔가 배가 불러진 느낌이어서 한 장 찰칵.

어제 여주에서 어쿠스틱 기타 강의를 하다가 떠올랐던 노래가 입에 붙어서 오늘도 집을 나서며 계속 그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개에 대한 노래였는데... 연습실에 도착을 했을 때에 마중나와줬던 개들이 있었다.


'백구'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눈앞에 갑자기 백구가 한 마리 쨘.
햇빛을 즐기고 있었구나. 먼지 많지 않은 곳에서 놀으려무나.
차 조심하고.
주차하고 있는데 뒷 바퀴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바람에 진땀을 흘렸다.

연습 후 돌아올 때에는 다른 녀석이 큰 길 까지 따라나와서 배웅해줬다.
이런 바람직한 개들을 봤나. 어쩐지 네가 제일 잘생겼더라 했다.
다음에 올 때엔 뭔가 먹을 것이라도 사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초저녁에 악기를 실어 나르느라 하남에 들렀을 때에 거기에서도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이 개의 집 앞에 (마음 속으로 양해를 구하고) 잠시 주차... 맘씨 좋게 생긴 개는 짖지도 않고 창문 열려있던 내 차를 봐주고 있었다.

오후 내내 무척 심심했으니 웬만하면 좀 놀아주고 가라는 꼬리짓을 못본체 하고, 손 흔들어 인사만 해주고 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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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바삐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갔다. 일요일 이후 일하느라 자전거를 탈 시간이 없었다.
금요일 부터 돌아오는 일요일 까지는 부산에 다녀와야하니까 또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뭐 어떠랴, 하며 자전거 타고 서쪽으로 내달렸다. 무슨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 빛이 하도 고와서, 달리다가 사진을 한 장 찍어볼까 하고 잠시 멈췄는데, 아뿔싸 아이폰을 집에 두고 나갔었다. 전화야 뭐 잠시 없어도 되지만 아까운 광경이었는데 하는 수 없이 그냥 마음 속에 남겨뒀다.
능내역 까지 달릴 때에는 맨얼굴로 가는 바람에 길목을 지키고 날던 하루살이 떼들을 얼굴로 들이 받으며 달렸다. 먹고 싶지 않아서 입을 앙다물고 페달질... 그야말로 하루살이의 소나기를 맞았다.
깜깜하고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능내역에서 되돌아 집으로 올 때엔 가방에서 고글과 버프를 꺼내어 얼굴을 칭칭 감싸고 어디 한 번 다 덤벼보라는 듯 달려왔다. 집에 오니 아주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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