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12일 토요일

호기심.


새 악기를 구입했다.
빈 집에 악기를 들고 들어와서 구석에 놓아뒀다.
몸은 많이 지쳤고 머리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차있었다.

케이스를 열고 악기를 꺼냈더니 순이가 재빨리 들어가 앉아버렸다.
뚜껑을 닫지도 못하게 하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한건지 밥그릇도 쳐다보지 않은채 저 안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꼭 내 새 악기에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우스웠다.
하는 수 없이 하드케이스 안에 사료 그릇을 놓아주고 저절로 닫혀버리지 않도록 책을 받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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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즈베이스.


원래 사용하고 있던 모델은 소리에 한계가 있었다. 처음부터 네크가 뒤틀려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십여년 동안 그대로 쓰고 있었다.
나는 더 좋은 소리를 위해 별짓을 다해봤었다. 시간과 돈을 소비하며 결국 제법 괜찮은 악기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좋은 소리를 가진 악기를 만났고, 그냥 사버렸다.

옛 악기는 어서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 당분간은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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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4일 금요일

열이 많이 났다.

몸이 너무 아파서 오늘도 누워있었다.
승려 지율의 단식중단 뉴스를 보았다.

환경이니 도룡뇽이니 그런 말을 쓰지 않기로하고 말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를 위해 싸우고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승려의 다소 상습적인 단식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대형 사찰과 산 밑에 있는 여관과 식당들이 친환경적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도 일단 접어둬도 된다.
사람들은 농담따먹기하듯 말 할수 있고 비구니 한 사람이 과연 굶어 죽을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떠들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일 세상의 무엇인가가 변화한다면, 맘 편히 떠들던 사람들이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게 될 때 대신 싸우던 사람은 이미 곁에 없을 수도 있다.
옳은 일은 언제나 그래왔다.

집안이 초토화되고 고문으로 몸뚱이가 걸레가 되도록 싸우던 사람들은 죽어버리거나 고생하더라도, 그들 덕분에 사회가 얻어낸 변화의 혜택은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다수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 저열하기 짝이 없는 댓글들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답답하였다.
최소한 누군가가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신념대로 행동하고 있다면, 동감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예의 정도는 갖춰줘야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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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았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처분하고 있다.
오늘은 언제나 가지고 다녔던 것을 한개 또 팔았다.
한 번 구입했던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가지고만 있을뿐 쓰지 않게될 때도 많다.

이 물건과는 즐거웠던 연주기억이 많았다.
아쉬워서 사진은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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